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성제국대학 (문단 편집) == 대학원 == 1886년 제1차 제국대학령 제2조 그리고 1919년 개정 공포된 제2차 제국대학령 제3조는 '[[제국대학]]에 [[대학원]]을 둔다'고 규정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각 제국대학에는 [[대학원]]이 설치되어 있었다. 연구과에 그친 여타 [[구제대학]]과 달리 제국대학에는 복수의 연구과가 통합된 대학원이 존재했으므로[* 제국대학 이외의 대학들을 규율하는 대학령(1918)은 제3조 제1항에서 "학부에는 연구과를 설치한다."고 규정하고 제2항에서 "수 개의 학부를 설치한 대학에 있어서는 연구과 간의 연합협조를 위하여 종합하여 대학원을 설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을 뿐이다. 실제로 대학원이 설치된 대학은 제국대학뿐이었다고 한다.] 경성제국대학에도 대학원 과정을 두었다. '[[석사]]' 학위가 없었던 [[일본제국]]의 구학제에서[* 일본에 도입된 유럽식, 특히 [[독일]] 학제의 영향으로 보인다. 독일의 경우 유럽연합의 볼로냐 프로젝트에 따라 EU가맹국가와 대학학제를 통일하기 이전에는 9년제 김나지움을 졸업하고 아비투어를 통과하면 3~4년 연한의 학부를 졸업한 뒤 마이스터학위를 취득하고 곧바로 대학원 박사학위과정으로 진학하였다. 일본은 이와 같은 독일의 학제를 모방했기 때문에 전쟁 전에 석사학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참고로 마이스터학위 자체가 석사학위에 상당하니, 일본의 구학제 학사학위는 신학제 기준으로는 수사(석사) 학위인 셈이다.]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학부를 졸업해 [[학사]] 학위를 받고 나서, 연구실에 '[[연구생]]'으로 등록하여 연구하고 소정의 절차를 밟아야 했다. 연구생 자격은 학부 졸업자뿐만 아니라 그와 동등한 학력을 가진 것으로 인정된 자라고 하여 [[구제전문학교]] 졸업자도 쌍방 추천[* 졸업한 전문학교의 교수와 입학할 제국대학의 교수]을 받으면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시 조선 내에서는 관립 전문학교와 제국대학 교수진 간에 인적 이동이 잦았고, 학교들도 같은 동네에 몰려 있었기 때문에 인적 네트워크가 상당히 강했다. 덕분에 관립 전문학교 출신이라면 경성제국대학 박사 과정에 등록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경성제대의 사례는 아니지만 [[우장춘]] 박사도 학사 학위 없이 박사학위를 딴 사람이다. 구레중학교 졸업 후 (원래는 [[교토제국대학]] 공학부에 가고싶어 우선 [[구제고등학교]]를 가려 했으나) 총독부에서 장학금 수여 조건으로 전문학교에 상응하는 [[도쿄제국대학]] 농학부 실과 진학을 지시하여 별수없이 농학부 실과로 갔었는데, 졸업 후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근무하다가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도쿄제국대학 대학원을 다니며 농학박사를 취득하기도 했다. 다만 박사 취득 전에는 농학부 본과 학사 출신이 아니라 실과 출신이며 무엇보다도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별로 우대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 악조건을 딛고 세계적인 농학자가 된 것이다. 농학부 실과는 이후 도쿄제국대학으로부터 분리되어 도쿄고등농림학교로 독립했으며 현재는 [[도쿄농공대학]]이 되었다.] 다만, [[구제대학]] 졸업자와 [[구제전문학교]] 졸업자의 [[연구생]] 신분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는데 [[학사]]를 가진 대학 졸업자는 부수(副手)에 임했지만, 학위가 없는 전문학교 졸업자는 부수보(副手補)에 임했다. 참고로 연구생이 소속되는 연구실은 복수의 강좌로 이루어진 전공의 경우는 한 강좌에만 연구실이 있는 등 모든 강좌마다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연구생이 되면 무보수 박사과정생으로 공부를 했는데,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까지 보통 5~7년 가량 소요되었다. 경성제국대학의 경우, 이러한 [[박사]] 과정을 통해서 학위를 받는 사람들은 각 학부마다 매해 50~60명 정도였다. 그 중 [[조선인]]의 경우에는 각 학부 별로 1~5명 정도가 박사 학위를 받았고 10명이 넘는 해는 드물었다. 참고로, 의학부의 박사 학위 논문 대부분은 현재 한국의사학회(醫史學會)에 소장 중이며, 특정 절차를 거쳐 열람할 수 있다. 2010년대의 관점에서 볼 때 당시 논문들은 학부 레포트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들이지만, 당시 일본 본토 의학계에서 주목한 논문도 있었다. 오늘날의 잣대가 아닌 당시의 학문 발달 수준의 기준에 볼 때 상당한 수준의 것들이었다. 경성제국대학 명의 박사학위 수여자의 학위논문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데이터베이스([[https://ndlonline.ndl.go.jp/#!/|해당 링크, 일본어]])에서 검색 되는 경우가 있다.[* 지금도 일본 소재 대학 명의로 발급되는 박사학위 수여자의 박사학위논문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 가능하다.] 그 중에서 창씨개명한 이름으로 검색되는 경우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