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성제국대학 (문단 편집) === 해방 박사 === 경성제국대학 관련 통계를 찾다보면 [[1945년]]에 유독 많은 [[박사]] 졸업자를 볼 수 있는데, 이때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을 '해방 박사'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일제 패망 이후 경성제국대학이 경성대학으로 개편되고 미군정 교육 당국이 학교를 접수했지만, 학교 내에서 중요한 업무를 취급하거나 학교에서 중요 보직을 담당하고 있는 일본인 교직원들은 여전히 출근하면서 조선인 교직원들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있었다. [[미군정]]은 11월 5일 대학의 모든 [[일본인]] 교직원을 파면하였는데, 이 [[파면]] 직전에 교수들은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던 사람들에게 모두 박사 학위를 내주었다. [[일본인]] 교수들이 이제 일본으로 아예 돌아가야 하는 마당에 지도하던 학생들에게 학위나 주고 가자고 하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 당시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논문]]의 형식만 갖추어 제출하면 요식적인 디펜스 토의 과정을 거치는데 내용의 질적 수준과 관계 없이 [[논문]]이 바로 통과 되었다고 한다. [[논문 디펜스]]를 사실상 전혀 거치지 않은 것. 특히, 의학부의 경우에는 논문 심사에서 탈락한 이들까지 소급해서 학위를 주었기 때문에 조선인 75명을 포함해서 156명에게 박사 학위를 남발했다.[* 의학부가 유독 학위 남발이 심했는데, 가장 심한 케이스는 연구생으로 들어온 지 10년이 넘도록 논문을 쓰지 못해서 이름만 걸어 놓고 개업의로 일하고 있던 사람한테도 지도 교수가 불러다 놓고 갈궈서 보고서 수준의 논문을 급조하게 한 뒤 박사 학위를 준 점이다. 그래서 실제로 당시 해방박사 학위를 받았던 사람들은, 자신이 박사 학위가 있다는 것은 이야기해도, 어디서 언제 박사 학위를 받았는지 잘 밝히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당시 해방 박사 학위를 받았던 대표적인 인물이 [[건국대학교]]의 설립자 겸 초대 총장인 상허 [[유석창]] 선생인데, 유 박사 본인도 뒷날 '자신의 논문은 미완성품이며, 쓰자키(津崎) 교수가 베풀어준 선물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자신의 박사 학위를 높게 평가하지 말 것을 당부한 바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