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주시 (문단 편집) == 개요 == ||<-2> {{{#fff {{{+1 '''경주시의 경관'''}}}}}} || ||<-2> {{{#!wiki style="color: #FFF; margin: -0px -11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7px -1px -11px"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경주 양동마을 전경.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첨성대2.jpg|width=100%]]}}} || || '''[[양동마을|{{{#fff 양동마을}}}]]''' || '''[[첨성대|{{{#fff 첨성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경주_옥산서원_외삼문_(촬영년도___2015년) 문화재청.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전경.jpg|width=100%]]}}} || || '''[[옥산서원|{{{#fff 옥산서원}}}]]''' || '''[[동국대학교/WISE캠퍼스|{{{#fff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황리단길.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한국수력원자력 본사2.jpg|width=100%]]}}} || || '''{{{#fff 황리단길}}}''' || '''[[한국수력원자력|{{{#fff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사옥}}}]]'''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보문관광단지.pn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불국사.png|width=100%]]}}} || || '''[[보문관광단지|{{{#fff 보문관광단지}}}]]''' || '''[[불국사|{{{#fff 불국사}}}]]'''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문무대왕릉2.pn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오류고아라해변.jpg|width=100%]]}}} || || '''[[문무대왕릉|{{{#fff 문무대왕릉}}}]]''' || '''[[오류고아라해변|{{{#fff 오류고아라해변}}}]]''' ||}}}}}}}}} || [[경상북도]] 동남부에 있는 [[시(행정구역)/대한민국|시]]. 동쪽으로 [[동해]], 서쪽으로 [[영천시]] 및 [[청도군]], 남쪽으로 [[울산광역시]], 북쪽으로 [[포항시]]와 인접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역사가 가장 [[고도(도시)|오래된 도시]] 중 한 곳으로, 고대 한반도에 존속했던 국가 [[신라]]의 [[수도(행정구역)|수도]]인 [[서라벌]](금성)으로서 약 천 년간 발전하였다.[* 신라는 건국부터 멸망까지 천도(遷都) 한 번 하지 않고 경주가 계속 수도였기 때문에 특히 의의가 크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 김부가 고려의 태조 왕건에게 항복한 후 서라벌이 경주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57년]] [[6월 8일]]에 첫 [[성읍국가]]인 [[사로국]]이 [[계림|경주 계림]] 일대에 세워졌는데, 비슷한 시기[* 기원전 108년.]에 [[고조선]]의 [[왕검성]]이 함락되었으니 경주시는 도시 전체가 고풍스럽고 역사적 무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경주시는 매년 6월 8일을 '경주 시민의 날'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경주 일대는 [[남북국시대]]에 이미 수십만 명의 인구가 정주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사기]]의 19만 호(戶)라는 기록에서 유래했는데, 연구자 중에는 인구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人이 戶로 잘못 기록된 거 아니냐고 보는 경우도 있다. 사실 19만명이라 해도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대도시다. 동시기 유럽에서는 10만이 넘는 도시도 드물었다.][* 고대 세계의 대표적 대도시였던 [[로마]]와 [[장안]]의 경우, 로마는 지중해 세계에서 생산된 식량을 해로를 통해 날라서 외항인 오스티아항을 통해 공급받았고 장안은 강회지역에서 생산된 식량을 대운하를 통해 공급받은 반면 경주는 이러한 인프라가 전무하다.], [[고려시대]]에도 삼경(三京)의 하나로서 명성을 유지했으며, [[고려]] 후기에 [[무신정권]]에 대항하는 반란이 일어나고 나서는 3경에서 제외되고 이어서 몽골의 침략으로 황폐화되었다. 그러나 다시 동경으로 복권이 되어 [[고려시대]] 내내 중요한 도시로서 기능했다. 또한 [[조선시대]]에도 그 위상은 여전해서 [[경상도]]의 '경'자가 경주에서 따왔고, [[부(행정구역)|부]](府)로 지정된 동시에 수장인 부윤(府尹)이 종2품으로 [[관찰사]]와 동급이었던 것에서 보듯이 현대의 [[광역시]]급 지위는 되었을 정도로 경상도에서 가장 큰 도시였고, 동시에 [[이언적]]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 및 [[옥산서원]]을 위시하여 [[안동시]]와 함께 [[영남]] [[남인]]의 구심점이자 대표적인 [[양반]] 도시였다. 즉 신라 멸망 이후로도 주요도시라는 명성은 잃지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는 얘기이고 이러한 경주의 위상과 규모는 경제개발기 이전까지 경상도 내에서 수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오늘날엔 문화유적이 많고[* 즉 인터넷 등지에서 보이는 "경주는 어디든 땅 파면 문화재 나오는 동네"란 말이 어느 정도는 '''진짜로 맞는 말이다.'''] 이로 인해 시가지 개발과 (바다와 접하지만) 대규모 항만 조성이 어려워 발전이 미흡해 바로 이웃 도시인 [[포항시]]와 [[울산광역시]]가 대신 성장하였고, 또한 인접해있지는 않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부산광역시]]와 [[대구광역시]]가 있었기에[* 구 [[경주역]]을 기준으로, 차량으로 대구는 동대구역까지 한 시간, 부산은 한 시간 반이면 남포동/해운대에 도착한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신경주역]]에서 KTX를 탈 경우 이 시간은 30분 이내로 줄어든다.] 지금은 소도시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시 중 면적이 2번째,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5번째로 넓다.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에서 [[서울특별시]], [[고양시]], [[부천시]], [[광명시]]를 통합한 면적과 비슷한 수준이다. 참고로 시 중 면적 1위가 [[안동시]](기초자치단체 기준 3위), 3위가 [[상주시]](기초자치단체 기준 6위)인데 1~3위가 전부 [[경상북도]] 소속이다. 사실 경상북도가 산하 시군 중 무려 7개가 면적이 1,000㎢를 넘을 정도로 큼직큼직한 면적을 가진 지자체가 매우 많은 편이기는 하다. [[동해]]와 접한 도시이지만 일반 대중들은 경주가 해안도시란 걸 잘 모른다. 그 이유로는 아마도 바다와 접해 있는 인근의 해안도시들([[울산광역시]], [[포항시]], [[부산광역시]])과는 달리 여기는 시가지가 바다와 한참 떨어진 내륙에 있는데다 문화유적이 워낙 많아서 관광도시란 인상이 강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경주시에서 바다를 접한 부분이 그렇게 크지는 않다.] 또한, 경주시내에서 동해로 가려면 [[토함산|산]]을 하나 넘어야 해서 거리감이 꽤 있기도 하다.[* 실제로 경주시내에서 [[감포읍]]까지는 산길도 타야 하는 탓에 한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 먼 거리다.] 알고 보면 [[해수욕장]]도 제법 많은데 사실 [[문무대왕릉]](대왕암)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면 답이 나오며[* [[문무왕]]은 장례를 화장으로 하고 그 뼛가루를 바다에 뿌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래서 바다에 수중릉이 있다.] 문무대왕릉과 접해있는 곳이 바로 봉길해수욕장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월성 원자력 발전소]]'''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