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찰 (문단 편집) ==== [[영국]]에서 설립된 최초의 근대적 경찰 ==== [[1829년]] 세워진 [[런던광역경찰청]]은 현대적인 경찰제도의 뿌리가 되었다. [[영국]]의 다른 [[경찰청]]들은 물론 [[미국]] 최초의 [[경찰청]]인 '''[[시카고 경찰국|CPD]]'''[* 시카고 경찰로 [[1835년]] 창설.]와 [[BPD(보스턴)|BPD]], 가장 거대한 경찰청인 [[뉴욕 경찰국|NYPD]]와 [[워싱턴 광역 경찰청|MPDC]][* 엄밀히 말하면, NYPD가 MPS의 체계를 따라 만들어졌고, 이후 MPDC가 다시 NYPD를 따라했다.], 그리고 [[일본]]의 [[도쿄]] [[경시청]]이 런던광역경찰청을 모방해 설립되었다. [[1829년]], 광역경찰법이 처음 통과되기 전까지 영국의 치안은 선출된 교구 경찰(Parish constable), 이후 치안판사(Justice of the peace)가 담당하고 있었다. 둘 다 소수였기 때문에 대규모 범죄를 상대할 때는 [[영국군|군대]]의 힘을 빌려야 했으며, 의용기마대(Yeomanry)도 동원되었다. 대충 봐도 굉장히 주먹구구식이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치안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를 느꼈는데, 처음 행동으로 옮긴 사람은 [[1748년]] 치안판사에 임명된 헨리 필딩(Henry Fielding)[* 근대 영문소설의 개척자 중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이었다. 이 사람이 [[1753년]]에 도입한 것이 영국 최초의 경찰 조직인 Bow Street Runner였다. 이름의 유래는 당시 재판소가 있던 [[런던]]의 보우 거리에서 자주 보이는 놈들이라고 했다. 보우 스트리트 러너는 최초엔 6명, 이후 8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의용경찰들이 보고하는 범죄를 수사하는 영국 최초의 [[경찰수사관|형사]]이기도 했다. 러너들은 들고 다니는 지팡이로 알아볼 수 있었는데 지팡이 위엔 왕관 장식이 있고 내부엔 정식 신분 증명서를 말아넣는 공간이 있었다고 한다. [[1798년]]에는 또다른 경찰 조직이 생겼는데, 영국 최초의 수상경찰대이다. [[템스 강]] 일대 [[항만]]에 들끓는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창설되었으며, 치안판사에게 월급을 받는 220명의 경찰관으로 구성되었다. [[월급]]으로 생계를 꾸리는 전업 경찰관들이 대규모로 딸린 경찰 조직이었기에 수상경찰대는 세계 최초의 근대적인 경찰로 인정받고 있으며, 현재의 런던광역경찰청 도심기동대 예하 수상경찰대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역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수상경찰대가 발족 첫해에 2,000명의 범죄자를 체포하자 이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을 명하는 수상경찰법(Marine Police Bill)이 제정되면서 이들은 치안판사 개인이 운영하던 조직에서 [[정부]]가 통제하는 영국 최초의 경찰기관이 되었다. [[형사]]였던 러너들이 범죄 수사하기 바빠 순찰을 못 돌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1805년]]에는 보우 스트리트 기마순찰대(Bow Street Horse Patrol)가 창설됐다. 러너가 최초의 형사라면 이들은 최초의 [[경찰기동대|기동대]] 겸 생활안전경찰로 [[1837년]] 광역경찰법에 따라 런던광역경찰청에 합병되었다. 물론 여전히 런던 전체를 완벽히 통제하기엔 러너나 기마순찰대나 너무 규모가 적었기 때문에 사설[[탐정]]들도 활개를 쳤다. 이들은 피해자의 돈을 받고 범인을 찾아내 재판소로 넘겼는데, 영미권에서 요즘에도 탐정업이 성행하는 건 이런 오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런던의 치안 시스템은 구멍이 많았다. 결국 의원들도 런던에 살면서 몸으로 직접 겪었기에 문제의식에 공감하여 [[영국 의회]]가 직접 나서서 경찰행정의 개선 방안을 연구했으며, [[1822년]] 내무장관이 된 [[로버트 필]] 경(Sir Robert Peel)은 이런 기류에 힘입어 자신이 직접 조사위원회를 꾸리고 거기서 얻은 결론을 의회에 전달했다. 그가 제안한 경찰행정 개선안은 체계적인 경찰기관의 확립, 수상경찰대의 선례에서 확인했듯 월급 지급을 통한 전업 경찰관의 운용을 통한 전문인력 확충이었다. 영국 의회는 필 장관의 개선안을 받아들여 [[1829년]] 광역경찰법을 최초로 제정했다. 마침 [[산업혁명]]이 영국 전역에서 진행 중이었는데, 이로 인해 사회가 급변하면서 범죄도 늘었기 때문에 기존의 지역단위 경찰 조직은 힘을 쓰기가 힘들어졌고, 이에 의회는 필 장관에게 수도 경찰을 조직할 전권을 주었다. '''그리하여 [[9월 29일]], [[런던광역경찰청]]이 탄생했다.''' 필 장관이 처음 한 일은 [[영국군|군]]의 국내 경찰 업무 배제였다. 여러 차례의 [[혁명]]과 사회 혼란에 매번 군이 개입하여 시민들의 군에 대한 불안감이 큰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새 경찰기관이 최대한 [[군대]] 냄새가 나지 않도록 애썼다. [[런던]]을 비롯한 [[영국의 법 집행|영국 경찰]]의 [[제복]]이 파란색인 것도 당시 [[군복]]이었던 [[레드 코트]]와 정반대의 색깔을 찾다보니 파랑이 선택받은 역사에서 비롯된 일이다. [[무장경찰]] 항목에 나오는 영국 경찰의 경찰관 비무장 원칙도 이때 탄생한 것으로, 시민들에게 친근감을 주기 위해 일선 경찰관들이 [[경찰봉]] 이상의 무장을 자제하는 것이었다. [[경사(계급)|경사]](Sergeant)를 제외하면 영국의 경찰 계급은 군 계급과 완전히 다른 것도 군대 느낌 없애기의 일환. [[경무관]] 정도에 해당하는 Commander라는 계급이 [[영국 해군]]의 [[중령]]과 이름이 같지만 이 계급이 도입된 건 [[1946년]]이라 광역경찰청 창설 당시와는 사정이 달랐다. 필 장관은 아예 꽉 막힌 사람은 아니라 경찰의 무장을 완전히 금지하진 않았고, 광역경찰청장이 비상시에 대비해 50정의 [[플린트락]] [[권총]]을 구매하도록 허락해주었다. 이후 이것들은 폐기되고, [[리볼버]]로 무장이 교체되는데, 이는 당시 들끓던 [[강도죄|강도]]들이 대부분 무장하고 돌아다녔기 때문. [[권리장전]] 7조에 보면 '신교를 믿는 국민은 상황에 따라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자기방어를 위해 무장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악한 인간들은 이걸 악용해 개나 소나 총을 들고 다녔다. 경찰관이 피격되는 일도 잦았기에 당시 광역경찰청장이었던 리처드 메인 경(Sir Richard Mayne)은 필 장관에게 애들한테 총 좀 쥐어주자고 건의했고, 이에 장관은 상급자가 보기에 믿을 만한 경찰관에 한해 무기 휴대가 가능하다고 지시했다. 결국 [[1952년]] 데렉 벤틀리 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눈치보지 않고 총기를 휴대했던 경찰관은 [[왕실]]이나 정부 고관들의 경호경찰관들 뿐이었다. [[무장경찰관(영국)|무장경찰]]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