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험 (문단 편집) == 경험은 중요하지만 만능은 아니다 == > "A mule, though he should have made ten campaigns under prince Eugene, would not have improved in his tactics." > "어떤 노새가 [[사부아 공자 외젠|오이겐 공]] 밑에서 전투를 열 번이나 참가했다 한들, 전술 능력을 함양하지는 못했을 걸세." >---- >― [[프리드리히 대왕]]의 어록으로 전해지는 경구[* 1789년에 등장한 최초의 판본에 따르자면 대왕이 프랑스군의 [[샤를 루이 오귀스트 푸케]] 원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다른 판본들에서는 [[모리스 드 삭스]] 원수의 어록이라고도 한다. 어느 판본이든지 간에 이론에 대한 학습과 논리적 사유 없이 경험만 아무리 쌓은들, 발전은 없을 것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노새]]'는 이론적 지식을 갖추지 못한 이들을 빗댄 단어이다.] 경험은 개인의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는다면 변질된다. 또한 경험에 의존하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현실부정|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경험만이 무조건 옳다고 고집부려 싸움을 일으키는 경우도 잦다. 예를 들어, 이를 바탕으로 남의 우위에 서려고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책을 팔아, 돈을 벌어, 먹고 살기 위해 지식을 뻥튀기하거나 날조하는 행위를 들 수 있다. * [[내가 해봐서 아는데|"내가 그걸 해봤다. '''그러니 내 말을 들어라.'''"]] ↔ [[낙하산 인사]], [[무능력한 상사]] 등의 문서로. 역사적인 사례라면 [[타이타닉]] 등이 있다. * [[대실 해미트]]는 [[핑커톤 탐정 사무소]]일을 한 적이 있다는데, 열린책들 버전 [[몰타의 매]]의 [[역자 후기]]에 의하면 '''많이 부풀려져 있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뜻이 달라 한 사람이 한 가지 뜻을 가지고 있어, 열 사람이 있다면 열 가지 뜻, 백 명이 있다면 백 가지 뜻, 천 명이 있다면 천 가지 뜻이 있게 될 것이며, 사람의 수가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되면 곧 그 이른바 뜻이라는 것도 역시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모두 자기의 뜻은 옳다 하고 남의 뜻은 그르다고 하게 된다. 그러므로 심한 자는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심하지 않은 자도 다투는 일이 흔하게 된다. >---- >― 《묵자》 상동편 이러한 단점 때문에 개인적인 경험을 [[위키위키]]에 적는 행위는 [[독자연구]]로 변질될 우려가 높아서, 거의 다 [[뻘문서|등재 거부 대상]]이 된다. 예외라면, '''유명 인사가 [[기자]] 상대로 [[인터뷰]]를 하거나 [[기자회견]] 등 공식 석상에서 하는 발언'''밖에 없다. 이쪽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기록이 변질되지 않고 오래도록 정확하게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서 내에 [[출처]]를 제시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경험이 많을수록 다양한 상황을 겪어봤을 확률이 높고 경력이 길수록 그 긴 기간 동안 여러 변화를 접해봤을 확률이 더 높으니, 경력이 길고 경험이 많은 베테랑들이 오히려 훨씬 돌발 상황이나 시대적 변화에 능숙하게 대처할 뿐만 아니라, 변화의 중요성을 잘 아는 경우도 많고, 반면에 경험이 적은 사람은 돌발상황이나 변화를 겪은 적이 없거나 적을 가능성이 높으니 오히려 더 경직된 태도를 가지는 경우도 많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오히려 경험의 양이 많을수록 경험에 집착하기도 쉬워지고, 그에 따라 지식을 철저히 배제한 채 해당 경험만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경험만을 가지고 고집을 부리며 관점의 다양성과 변화를 배척하고, 경험을 강요하는 태도로 이어지면, 그 경험이 검증된 이론에 의해서 완벽하게 논파되었거나, 변화가 찾아왔을 때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 개인이라면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이런 태도를 지닌 사람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반면에 경험이 적더라도 해당 경험에 구애받지 않고 다각도로 접근할 수 있어 오히려 새로운 방안을 적극적으로 내놓기도 한다. 경험주의는 경험을 통하여 지식을 얻고 또 판단한다. 그러나 경험에 의한 방법은 필연성을 지니지 못하여 문제가 생긴다. 풍부한 예를 통해 그 개연성은 높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필연적이라고 볼 수 없다. 경험을 통해 관찰된 어떤 현상이 항상 그렇게 보일지라도 성립하지 않는 한 예에 의하여 그 판단이 뒤집어질 수 있다. 또한 인간의 감각 능력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표면적인 현상 역시 잘못 관찰될 수 있다. 이와 같이 경험주의는 한계를 지니기 때문에 그 보완책이 필요하며, 그 대안으로 이성에 의한 합리적인 사유 과정이 있다. 경험은 현상을 파악할 수 있지만 본질을 꿰뚫어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고, 이성[* 정확히는 체계화된 이론과 같은 지식이다.]은 본질을 간파하는 특성이 있다. 즉 경험주의의 한계는 이성에 근거한 사고에 의하여 보완될 수 있다.[* 반대로 이성을 통한 사고 역시 경험에 의한 지식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진다.] 이성과 경험이 조화를 이루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예는 역사 속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경험만큼 좋은 스승은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경험이 만능이 아닌 것은 이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