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계몽사 (문단 편집) === 설립과 전성기 === 창업주는 [[경상북도]] 안동 출신의 구정(龜亭) 김원대(金原大, 1921~2000.02.09.)로, 그는 원래 [[만주]] 덕흥상점에서 7년 간 생활하다가 [[1945년]] [[광복]]을 맞아 귀국했다. 김원대는 [[대구역]]에서 [[최현배]]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작해 [[신문]]과 함께 판매했는데 그 수익금 6만 원으로 [[미군정]] 시절인 [[1946년]]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대구부]] 포정동 6번지[* 현재의 [[대구광역시]] [[중구(대구)|중구]] 경상감영길 135(포정동). [[1949년]]에 대구시, [[1981년]]에 직할시로 승격되다가 [[1995년]]에 [[대구광역시]]로 승격과 동시에 [[달성군]]과 통합되었다. 현재 [[중앙로역(대구)|중앙로역]] 3번 출구에서 나와 경상감영길에 위치한 한 양복점 자리가 당시 계몽사 서점 자리이다.]에서 설립한 계몽사 [[서점]]을 모태로 한다. [[1947년]]부터 출판사로 등록하여 출판사업을 개시하여 이듬해에 이설주(1908~2001) 시인의 《방랑기》를 처음 냈고, 학습 참고서와 사전도 펴냈다. [[1950년]] [[6.25 전쟁]]이 터진 후 그가 설립을 주도했던 한국출판물판매(주)가 파산하면서 위기를 맞았고, 이후 서울로 본거지를 옮겨 참고서와 사전을 냈지만 적자를 메꾸기 어려웠다. [[1959년]]에는 사운을 걸며《세계소년소녀문학전집》(전 60권)을 펴내면서 사업 방향을 아동도서로 전향했으며, [[1963년]]에는《현대여성교양강좌》도 펴냈다. [[1976년]]에는 주식회사로 법인 등록하였다. [[1980년]]에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월트 디즈니 프로덕션]]과 계약하여 디즈니 캐릭터가 나오는 동화책《디즈니 그림명작》(전 60권)[* 원판은 "Disney's Wonderful World of Reading"이라는 도서였다.]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이후《학생백과사전》이나 《학습그림과학》등 사회, 과학 분야 교육 서적 등도 다수 출판하였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 즈음에는 이러한 서적들을 재편집하여 《__최신__컬러학습대백과》, 《__최신__학습그림과학》, 《__최신__학습그림사회》등의 이름으로 출간하기도 하였다. [[1985년]]에 계몽아동연구소를 세우며 일본 쿄이쿠샤와 출판계약을 맺어 과학 월간지 [[뉴턴 한국판|뉴턴의 한국판]]을 출간했으며[* 당시엔 '월간과학'이란 제호로 출간됐으며 《Newton》이란 영문 제호를 같이 표기했다. 이후 계몽사가 뉴턴 출간에서 손을 뗀 이후 뉴턴이란 제호 그대로 현재도 출간 중.], [[1988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신사옥 겸 어린이 문화센터 '계몽문화센터'를 세웠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10220028910301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10-22&officeId=00028&pageNo=3&printNo=139&publishType=00010|계몽사 사옥 이전 저희가 가장 먼저 옮길 짐은…(1988년 10월 22일 한겨레 신문 지면 광고)]]] [[1989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상장하며 자회사 '계몽사종로학원'[*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종로학원]]과 합작하여 만든 회사이다.]을 세워 학습지 사업에도 손을 뻗었다. [[1990년]] [[경기도]] [[용인시|용인군]] [[기흥구|기흥읍]]에 전집 및 학습지용 창고를 건립하고 [[1992년]] 충남 온양에 있는 연수원 건물을 사들인 뒤, '계몽아트콤'도 세웠다. [[1994년]]에 서울 [[송파구]] 문정동 창고 건물도 사고 CD-ROM 시장에도 진출했으며, 계몽사종로학원으로부터 국민학생 및 중학생 학습지의 저작권을 넘겨받았다. [[1995년]]에는 만화영화 제작 및 상영업에도 진출하고 [[1996년]] 계몽문화센타로부터 놀이방 '짐댄디' 사업도 넘겨받았다. 같은 해 복사지 사업에도 진출하고 [[1997년]]에는 연수원을 팔며 컴퓨터 하드웨어 및 주변기기, 음향기기 도소매업에도 손을 뻗고 고려원과도 독점판매권 계약을 맺었다. 더 나아가 자회사 계몽다이린의 원적외선 제품 판매를 도맡았다. [[전성기]]에는 강남에 계몽문화센터(계몽아트홀)[* 참고로 대구에 있는 [[계명아트센터]]와 헷갈리면 곤란하다. 계몽아트센터는 후에 [[웅진그룹]]이 웅진씽크빅 아트홀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하였으나 [[2011년]] [[3월]]에 [[Why?]] 교육만화 시리즈로 유명한 [[예림당]]에 운영권이 넘어가 현재는 예림당아트홀로 운영 중.]이 있었는데 [[1988년]] [[11월]] 강남구 역삼동 개나리 1차 아파트[* 1980년 5월 12일 완공. 2012년에 재건축되어 현재는 개나리래미안아파트로 명맥을 잇고 있다.] 건너편(강남구 언주로 337), 규모는 지하 4층, 지상 10층으로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출판 빌딩 및 문화 센터였으며 [[1990년대]] 초, 중반까지 명맥을 이어오다 [[1996년]] 경영 악화로 어린이궁전, 꿈동네 등 어린이 놀이 시설과 [[수영장]], 문화센터, 클래스 등이 폐장했다. 약 8년 동안 25만 명의 어린이가 이용했으며[* 그 시절에 서울 및 서울 근교 거주 유치원생이었던 사람은 계몽문화센터에 단체로 소풍가본 추억이 있을 것이다.] [[1996년]] [[3월]] 폐장했다. 이듬해에 계몽문화센터는 성인들이 이용하는 스포츠 클럽으로 재전환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 등 경제 위기와 회사의 경영난 등으로 매각되어 동영문화센터가 들어섰다. 그 밖에 [[1973년]] [[6월 20일]]에는 육영 교육 사업에 뛰어들면서 학교법인 계몽학원을 창설하였으며, 이후 [[1974년]]에는 [[경상북도]] [[안동시]][* 후술하였듯이 창업주 김원대 회장의 출신지가 안동이었다.] [[안막동]]에 [[길원여자고등학교]]가 개교하였으며, [[1978년]] [[10월 25일]]에는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시|온양읍]][* 현재의 아산시. 1986년에 [[온양시]]로 승격되었다가 [[1995년]]에 아산군과 통합되었다.]에 [[http://onyangmuseum.or.kr/|온양민속박물관]][* 김원대 창업주의 차녀 김은경이 관장으로 있다.]을 개관, 운영했다. '''그러나 이렇게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던 이 출판사의 앞날에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