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교야구 (문단 편집) === 역사 === 조선 시절, 야구가 최초로 전해진 1905년 [[경기고등학교|한성고등보통학교]]에서 야구를 처음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아울러 같은 해 [[인천고등학교|관립한성외국어학교 인천지교]]에서 학생들이 야구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 때문에 인천고등학교 측은 1905년부터 야구부 활동이 시작됐다고 주장하지만 정식으로 야구부가 활동을 시작한 시점은 1917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물론 이것도 매우 오래 된 역사다.] 다만 우리나라에 야구가 보급된 이후 [[중등교육기관]] 최초의 정식 야구부 창단 사례는 지난 1907년 [[휘문고등학교 야구부|휘문의숙 야구부]]로 기록돼 있다. 이후 [[배재고등학교 야구부|배재고등보통학교]], [[중앙고등학교 야구부|중앙학교]], [[인천고등학교 야구부|인천일어학교]] 등 다른 학교에도 야구부가 생기며 학교간에 경기를 가졌다. 일제강점기에도 야구는 계속되었고, 1920년 조선체육회 발족기념으로 [[배재고등학교|배재고등보통학교]] 운동장에서 1회 전조선야구대회(현 전국체육대회)가 열렸다. 1921년부터는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일본 전국중등학교우승야구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되어 조선지역 예선이 생겼다. 이 당시 조선지역 예선을 통과해서 본선에 진출한 학교는 [[휘문고등학교 야구부|휘문고등보통학교]]와 [[인천고등학교 야구부|인천공립상업학교]] 등이 있다. 해방 이후 1946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전국중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여러 신문사에서 고교야구 대회를 주최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는 준결승전이나 결승전이 휴일에 열려야만 관중이 거의 차는 수준이었으나 어느 정도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올라오기 시작한 1970년 즈음부터는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 당시에는 대회 초반부터 [[동대문야구장|서울운동장 야구장]]이 거의 만원을 이루고, 준준결승부터는 아예 매진이 나오는 초인기 컨텐츠가 되었다. 1981년에 [[박노준]]이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홈 슬라이딩을 하다 부상을 당하자 방송국에서 병원에 찾아가 인터뷰해 뉴스에 방영했을 정도. 무엇보다 [[이촌향도]] 현상이 뚜렷해졌고 그에 따른 영향으로 전국 각지의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 각 지역의 팬들이 애교심과 애향심으로 뭉치면서[* 특히 [[부산고등학교 야구부|부산고]], [[경남고등학교 야구부|경남고]],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광주일고]], [[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군산상고]],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동산고등학교 야구부|동산고]], [[인천고등학교 야구부|인천고]] 등 각 지역을 대표하는 팀들이 1개씩은 꼭 4강 이상에 진출해서 비단 그 학교를 나오지 않았더라도 고향 후배들을 응원한다는 마음으로 경기장에 찾아와 응원하는 팬들이 많았다. 학교 간의 대결을 넘어 일종의 지역 대항전 성격이 된 셈이다.] 대성황을 이뤘는데 이 열기는 [[한국프로야구]]의 탄생 동력이 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고교야구의 인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게 된다. 매 경기마다 동대문으로 향하던 구름 관중은 어느새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야구장]]과 각 연고팀 경기장의 프로야구 경기로 향했고 고교야구 경기 관중석에는 각 학교의 나이 지긋한 동문들이나 선수들의 학부모, 각 학교에서 동원된 재학생 응원단 외에는 누구도 찾지 않는 리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본프로야구|NPB]] 창설 이후에도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고시엔 본선]]이 여전히 전국적 인기를 구가하는 일본과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사실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의도적으로 고교야구를 죽인 면도 커서[* 2006년 창간된 월간 야구 창간호 머리말 컬럼에서조차 나오던 말이다. 당시 고교야구가 너무 인기가 크면 프로야구가 불리하니 고교야구 중계를 줄이고 신문보도도 축소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는 야구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프로 스포츠를 급하게 이룬 [[전두환 정부]]의 막가파식 [[3S정책]]도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프로축구도 [[할렐루야 축구단]] 같은 종교구단까지 억지로 넣어서 급하게 만든 탓에 초창기부터 문제가 크게 비화된 바 있다.] 야구계에서는 프로야구의 폭발적 인기가 오히려 고교야구를 죽인 꼴이 된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이렇게 인기는 줄었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며 프로팀에서 고교선수 위주로 지명하기 시작하며 오히려 대회 수는 9개로 증가했다. 하지만 대회가 너무 많다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였다. 1986년에 59개교가 역대 최고 기록이었지만, 2013년 11월 21일에 파주 율곡고등학교가 야구부를 창단하며 60개교를 돌파했고 2015년에 고양 백송고, 송탄제일고, 고창 영선고, 양산 물금고, 2016년 진영정보공업고등학교가 5월에 새로 창단하여 2016년 4월 기준 70개교까지 늘어났다. 현재 2023년 기준으로 총 95개까지 늘어났다. 이러한 고교야구 팜 확대와 더불어 그동안 선수들의 혹사와 대회가 평일에 열려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 등의 문제가 불거지며 2011년 [[고교야구 주말리그|주말리그]]가 도입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