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립주의 (문단 편집) === [[일본]] === [[헤이안 시대]]에 894년의 견당사를 마지막으로 동아시아와 일절 교류를 하지않고 '''국풍'''의 시대로 들어선다. 1271년 [[원나라의 일본원정]]으로 쇄국이 흔들렸고, 1401년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의 요청으로 명과 국교가 성립되어, 500여년 간의 쇄국을 마지고 동아시아권에 재편입한다. [[에도 막부]] 시절이었던 1641년부터 1853년까지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쇄국정책을 실시한 바가 있다. 물론 전통적인 교류국이었던 [[조선]], [[청나라|중국]], [[류큐]] 등지와는 간헐적이나마 지속적으로 교류 관계를 이어나갔으며, [[데지마]]를 통해 서양인과도 접촉을 가지는 등[* 1년에 한번씩 [[쇼군]]이 [[네덜란드]]에서 건너온 상인들과 접견을 가지기도 했다. 물론 (통역사, 게이샤를 제외한)일반인들이야 네덜란드 상인들과 만날 기회가 없었지만.] 철두철미하게 문을 걸어 잠근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말하면 데지마 이외에 장소에서 서양인과 접촉시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얄짤없이 사형이다. 하지만 페리 내항 이전 [[사쓰마|사쓰마번]]에서 중국과 서양 상인과의 밀무역으로 부를 축적하고, 그 돈으로 번주가 서양식 문물과 공장을 지어 유신의 기초를 다졌다.] 물론 이후 [[1853년]], [[매튜 페리(군인)|매튜 페리]] 제독에 의하여 [[쿠로후네 사건|강제 개항]]되며 쇄국정책은 종료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반 시민들의 인식은 꽤나 고립주의적이지만, 정부 차원에선 1990년대 부터 '세계 진출', '적극적 평화주의' 등을 운운하며 미국을 따라 자위대의 해외 파병을 열심히 하며 세력 확장에 힘을 쏟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