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립주의 (문단 편집) === [[중국]] === 역대 왕조에 따라 조금씩 양상이 변하기는 했지만, 가장 유명한 사례는 [[명나라]]. 초대황제였던 홍무제 때부터 아예 [[왜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금정책(海禁政策)을 실시했을 정도.[* 아이러니하지만 해금정책 때문에 오히려 왜구들은 견제를 덜 받게 됐고, 그 덕에 더더욱 날뛰게 된다(...).] 명나라 초기에는 환관 [[정화]]를 원정보내기도 했지만 정화의 원정 이후로는 나라의 문호를 걸어잠그고 고립주의를 취했다. 이후 [[청나라]] 역시도 큰 틀[* 한국에서는 [[마테오 리치]]를 비롯해 청 시기 베이징에서 활동한 선교사들 때문인지 청나라가 굉장히 활발히 대외교역을 한 것 같은 인식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명나라의 그것과 큰 틀에서 차이는 없었다는 견해도 존재한다.]에서는 명나라의 대외정책을 유지한다. ~~그리고 아편전쟁 이후 반 식민지화 크리~~ 또한 전근대적인 의미의 고립주의의 경험만을 가진 한국/일본과 달리, 중국은 현대적인 의미의 고립주의를 외교노선으로 채택하기도 했는데 [[죽의 장막]]이 바로 그것. 죽의 장막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고립주의는 [[1949년]]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를 수립함과 동시에 채택됐으며, 1960년대 [[문화혁명]] 시기를 거치며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후진타오]] 집권부터 유소작위, 대국굴기를 명분으로 고립주의 노선을 바꿨고, 시진핑 집권부터 고립주의 노선을 포기하고 [[일대일로]]를 적극 추진하고있다. 중국 공산당의 인터넷 검열도 일종의 고립주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