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은(시인) (문단 편집) === [[한용운]] 비난 === >고은 씨가 ‘평전’이라는 이름 아래 만해의 불교 정신과 독립운동과 문학 세계를 사정없이 짓이기고 있음에 분노를 느껴야 했다. 고은 씨의 눈을 통해 비춰지는 만해는 시종일관 편협하고 이기주의적이며 최남선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영웅주의]]의 표본에 불과했다. > >고은 씨는 먼저 '''만해의 독립 정신에 대해 비꼬기''' 시작한다. 국권을 상실하고 민중이 처참하게 죽어가던 시대에 분연히 일어선 만해의 뜻이 고은 씨 앞에서는 단지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었던 하나의 계기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중략) 고은 씨의 논리대로 하자면 만해 등 서명을 했던 인물들은 '''장래가 없는 사람'''이나 교단의 임무가 없던 사람들이다. > >고은 씨는 만해에 대한 '''기존의 연구 결과를 완전히 무시'''하고 '''악의적으로 만해 스님을 왜곡'''하고 있다. 그럼 고은 씨는 왜 이렇게 평전이라는 이름 아래 만해를 철저히 짓밟고 있는 것일까? 아마 그것은 고은 씨의 '''만해에 대한 콤플렉스'''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단계까지 고은 씨의 행적은 만해와 닮아 있다. 출가했었다는 점도 그렇고, 문학을 했다는 점도 그렇고, 독립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에 주력했다는 것도 비슷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는 한 사람은 한때의 고통이 '''문화 권력을 쥐는 계기'''가 되었지만, 한 사람은 일평생 고난의 세월을 걷다가 영양실조로 죽었다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 >이번에 고은이 만해의 평전을 낸 것은 '''질투심'''의 발로다. '''자신의 작품이 30~40대 만해가 썼던 작품에 못 미친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에서 비롯된 것. 고은이 2001년 미당 [[서정주]]가 사망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미당의 친일 문제를 끄집어내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처럼 만해를 자신의 구미에 맞춰 난도질해 '''그의 사상과 문학 세계를 깎아내리고 자신을 높이는 의도'''로 해석된다. > >- 법보신문 편집국 차장 이재형 [[http://www.budreview.com/news/articleView.html?idxno=501|#]]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1640|#]] [[http://www.pressian.com/ezview/article_main.html?no=26472|#]] [[http://pressian.com/m/m_article.html?no=26472|#]] * 고은은 <이상 평전>을 완성한 이듬해인 1975년 <[[한용운]] 평전>을 저술했다. 고은은 자신이 지은 한용운 평전에서 만해 한용운을 극렬히 비난했다. 책에서 고은은 만해 한용운이 "'''순수한 승려가 아니라 정치 선동가'''였다"고 말한다. 또 일제강점기 때 만해가 지조를 지킨 것에 대해서 "(만해는) 어떤 사람보다 '''지배 본능이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폄하했다. [[http://www.pressian.com/ezview/article_main.html?no=26472|#]] [[https://www.google.co.jp/search?newwindow=1&source=hp&ei=kUuaWvmRCMjQ8wWUqbigBA&q=%EA%B3%A0%EC%9D%80%2C+%ED%95%9C%EC%9A%A9%EC%9A%B4+%EB%B6%80%EC%A0%95%EC%A0%81+%EB%AC%98%EC%82%AC+%EB%85%BC%EB%9E%80&oq=%EA%B3%A0%EC%9D%80%2C+%ED%95%9C%EC%9A%A9%EC%9A%B4+%EB%B6%80%EC%A0%95%EC%A0%81+%EB%AC%98%EC%82%AC+%EB%85%BC%EB%9E%80&gs_l=psy-ab.12...299.299.0.1089.1.1.0.0.0.0.186.186.0j1.1.0....0...1c.1.64.psy-ab..0.0.0....0.2kqICG92SZc|#]] [[http://pressian.com/m/m_article.html?no=26472|#]] * 고은은 평전에서 만해를 '''소영웅주의자'''로, 시종일관 '''편협'''하고 '''이기주의적'''이며 [[최남선]]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로 묘사했다. * 고은은 만해는 "'''이기적'''인 성정, 늘 '''원한'''이 살아 있는 감정적인 품성 때문에 사찰의 덕망의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하루도 견디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그는 사랑을 가진 일이 없고, '''대중'''을 '''이용'''했으며, 대중을 극단적으로 '''모멸'''했다"고 주장했다. > “(만해 한용운의) 시집 '''‘[[님의 침묵]]’은 어떤 의미에서 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설명문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설명문조차 모든 암시의 힘을 믿지 않는 사설체의 '''요설(饒舌)'''로 넘쳐 흐르고 있다.” > - 고은 저, 한용운 평전 (301페이지) * 고은은 또 만해의 신체시 '심'에 대해서도 ''''비속'''한 해설'이나 '붓장난', '승려들이 '''걸핏하면 지껄이는 정도'''의 사어(死語)'라고 폄하했다. * 만해의 대표작으로 수많은 학자들이 탁월한 저서로 평가하는 ‘조선불교유신론’에 대해서도 '''현실 인식이 부족한 치기어린 작품'''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 * 만해가 불문(佛門)에 든 직후 시베리아와 만주를 주유한 것은 ‘'''허영'''’에 불과하며 폄하했다. * 고은은 만해가 온 힘을 기울였던 잡지 <유심>에 대해서도 "'''공허한 배설물'''인 논설과 수필"이라며 최악의 평가를 내렸다. * 독립선언서에 추가한 ‘공약삼장’은 [[최남선]]에 대한 '''시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 고은의 한용운 비판은 교수 시절에도 유명했다고 한다. 수업 시간 때마다 걸핏하면 열폭해서 한용운을 까댔다고 한다. * 고은은 자신의 창씨개명 사실을 스스로 옹호하면서 한용운이 그의 딸 영숙을 창씨개명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면서 한용운을 까기도 했다. 당시 논란의 인터뷰가 페미니즘 열풍이 불기 이전인 2012년 2월 17일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한국 문단에서 이를 공론화하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했다. 공론화했더라면 2012년에 좀 더 일찍 제명될 수 있었던 것을 한국 문단에서 방관한 것이다. * 고은의 한용운 평전은 불교계에 큰 논란을 일으켰다. 법보신문 편집국 차장 이재형은 "고은 씨는 만해를 정치적인 선동가로만 바라보고 있다.", "이 책은 만해의 본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http://kiroro1956.egloos.com/8856718|#]] * 고은은 1988년 제1회 만해문학상을 받았고, 만해축전대회장, 만해마을 명예총재를 맡은 바 있다. * 서울시는 만해 한용운을 비판하고 3·1운동을 이끈 [[민족대표 33인]]을 '''장래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폄훼한 고은을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 중 주요 사업으로 선정하여 2017년 11월 서울도서관(옛 서울시청사) 3층에 고은 기념관 '만인의 방'을 개관하고 그곳에 3·1운동 관련 유물을 전시했다. 그리고 2018년 초 성추문 사건이 터지자 2018년 3월 12일에 문을 닫았다. 결과적으로 시 예산을 자신의 명예욕만을 드높이기 위해 낭비한 것이라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곱게 넘어가지 못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