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은(시인) (문단 편집) === 명사(名士) 사냥꾼 === >힘이 없는 악은 의미가 없다. 악이 악다워지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권력이든 물리적 폭력이든 재력이든, 지식이나 기술 혹은 특수한 재능이든 상대를 강제하거나 마비시킬 수 있는 힘을 지녀야만 악은 악답게 자랄 수가 있다. 그의 악이 의지해 자란 힘은 말과 글을 다루는 재능이었다. 말의 재능은 그의 ‘명사(名士) 사냥’ 시절에 이미 충분하게 발휘되었다 - [[이문열]]의 소설 [[사로잡힌 악령]] 중에서 고은은 젊은 나이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당시 불교계 내외로 상당한 존경을 받고, 가장 유명한 고승이던 [[효봉]][* 사실은 아니었지만 판사 출신으로 알려져, 그 당시 불교계 내외로 상당한 존경을 받았다.]의 상좌가 되었다. 상좌의 직함을 단 그는 이후 법조계, 문화계, 예술계 여러 사람들과 교우하였는데 그의 타고난 말재주와 언변으로 유명 명사들이 쉬이 그를 함부로 대접하지 못하게 했다, 나중에 명사들이 사망하자 낸 고은의 자서전에서는 자신과 명사들이 '피를 나눈 것처럼 절친한 사이', '둘도 없던 벗'이라고 포장했다. * 예: 효봉의 상좌 → 문인들과 교류 → 문인들의 추천으로 등단 → 미당 서정주와 교류 → 서정주 사후 그의 문단 위치를 물려받음 위와 같이 이어지는 명사 사냥 테크트리로, 고은은 특별한 시재(詩材)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문단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추었다. 이후 자기 어필과 꾸준한 대내외 활동, 그리고 민주화 투쟁과 수감이라는 그의 이력이 삼박자로 맞아 떨어져 나중에는 [[노벨문학상]]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듯 명성을 날렸다. 고은의 명사 사냥은 이후 대통령에게까지 발을 넓혀 김대중과는 각별한 사이가 되었고, 그의 사후 묘비에까지 시를 써 주었다. 노무현과도 친분이 있었다. 막연한 민족주의 정서[* 아랫문단 참조.] 때문에 고은은 북한을 일방향적으로 동경했고, 김정일을 지나치게 훌륭한 사람으로까지 평가하며 실제로 김정일을 만나기에 이르렀다. 그의 명사 사냥꾼의 자질은 한반도 내외에 걸쳐 끊임없이 발휘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