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조다 (문단 편집) == 생애 == '''고추대가'''([[古]][[鄒]][[大]][[加]])[* 왕족 가운데서도 최상위의 호칭으로 고구려가 [[졸본성]]-[[국내성]]의 도시국가에서 영토국가로 성장하면서 합병한 세력들의 호칭들을 왕 아래에 일원화시키면서 등장했고 태자가 겸직했다. [[태자]]라는 공식 직위와는 또 별도로 붙는 타이틀로서 영국의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비슷하게 볼 수 있다.] 벼슬을 지냈는데, 하필이면 아버지인 [[장수왕]]이 90세가 넘도록 [[장수]]하는 바람에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 왕위를 잇지 못했다. 심지어 조다 역시 기록상 70세를 넘겨 당대 기준으로 장수한 인물이었다. 다만, 장수왕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고추대가로서 장수왕 재위 후반기에는 실질적인 국정업무를 대행했을 수도 있다. 끝내 장수왕이 97세로 승하하자 이미 세상을 떠난 조다를 대신하여 조다의 아들인 나운이 왕위를 이었는데, 그가 바로 [[문자명왕]]이다.[* 그래서인지 [[삼국사기]] 장수왕 본기에서는 안 나오고 문자왕본기에 나온다.] 조다의 행적이라고 볼 수 있는 기록이 있는데, 바로 [[충주 고구려비]]이다. 내용을 보면 [[신라]]와 외교를 맡은 고구려 태자 공(共)이 보이는데, [[충주 고구려비]]를 세운 장소인 국원성을 방문한 적이 있는 듯하며, 태자 공은 신라 매금과 함께 꿇어앉았다거나 그에게 적추를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 태자 공이 고추가 조다와 동일인물이라는 설이 있다. 태자 공(共)이 고추가 공(古鄒加 共)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조다와 동일인물이라는 가능성이 있다. 다만 충주고구려비의 성립연대를 문자명왕 대로 보는 견해도 있어서 확정짓기는 어렵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