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지전 (문단 편집) == [[6.25 전쟁]] 당시 == [include(틀:6.25전쟁 전투 및 작전 목록)] [[파일:고지전1.jpg]] [youtube(aowISV3gVR8)] [[폭찹힐 전투]]를 다룬 1959년 영화, 폭찹힐에서의 모습. 산지가 많은 [[한반도]]의 특성상 전쟁의 전개도 대부분 고지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그리고 50년 겨울 중공군의 참전으로 37도선까지 내려간 전선이 다시 38도 이북으로 올라갈 즈음 휴전 협정이 양측에서 조율되었다. 이유인 즉슨 이미 [[1.4 후퇴]]와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 및 이에 대응한 반격 등을 거치면서 양측 모두 상대를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낼 힘 없이 사상자만 계속 속출하는 [[소모전]] 상황이 되었음을 인지했기 때문.[* 그리고 필요 이상의 자극과 확전을 피하기 위한 분위기도 조성되어 1951년 4월 미8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밴플리트 장군의 [[맹조의 발톱 작전]] 제안이 취소되기도 했다. 그나마 격전 속에서 북쪽으로 돌출된 전선을 완만하게 만들고 전선을 10~20km 올리려는 제한적인 목적의 대규모 공세는 그와 수뇌부 모두 공감했기 때문에 이를 여름과 가을 사이에 실행해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협정이 진행될 동안 양측이 싸움을 멈추기로 합의한 건 아니었기에 보다 전략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휴전을 맞이하기 위한 대대급 수준의 고지 쟁탈전이 51년 하반기부터 간헐적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는 모험을 피하기 위한 찔러보기식 전투로, 병력을 일제히 투입하면 당장은 머릿수=화력에서 앞서지만 이들이 전멸시 그 공백을 메우기가 힘들기 때문.] 일단 고지를 확보하면 그 위에서 주변 전황을 두루 둘러볼 수 있을뿐더러, 일대의 적들을 향해 사격 및 포격을 보다 멀리, 더 정확히 가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도 [[저격능선 전투]]에서 중공군 저격수가 고지 위에서 미군들을 자꾸 저격해댔고, 이에 고지 이름도 그렇게 지어졌다.] 더군다나 고지를 보다 많이 확보해 거기에 진지와 기지 등을 지어놓으면 향후 전쟁이 재개될 시 방어 측에선 시간벌이, 공세 측에선 그만큼 시간절약, 기동에 유리했기에 너도 나도 고지 쟁탈전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몇몇 고지는 계속된 쟁탈과 포격, 폭격 속에 곳곳이 화약과 피 냄새 진동하는 [[민둥산]]이 되었으며,[* 이것의 극단적인 예가 [[수도고지-지형능선 전투]]로, 아예 민둥산이 된 것도 모자라 모래폭풍 수준의 먼지까지 일어 소총을 내팽개치고 수류탄만 가득 챙겨 돌격했다.] [[가칠봉 전투]]에선 아예 시체들을 모아 진지를 구축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