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공가 (문단 편집) == 역사 == [[헤이안 시대]]부터 중앙 집권적인 [[율령]] 국가를 구성하기 위해 통용된 명칭으로 그 이전부터 귀족 세력은 존재하긴 했지만, 이 시기부터 공가 안에서도 귀족의 격식 및 지위의 고하가 고착돼서 똑같은 공가라 할지라도 하위에 위치한 공가는 상류층으로 편입되기가 불가능해졌고 각 가문의 격에 따라 맡을 수 있는 관직의 상한선이 정해졌다. 귀족이면서 공경에 오르는 집안이 한정되고 [[후지와라]] 가문에 의한 섭관 정치 확립에 따라 가문의 서열이 고정되어 가마쿠라 시대 전기까지 공가 사회가 형성되었다. 여기서는 가문의 서열에 따라 승진할 수 있는 관직이 한정되었다. 어찌 보면 신라의 [[골품제]]와도 비슷한 부분. 천황의 권력이 약해지면서 이 공가의 전신에 해당하는 귀족들을 중심으로 섭관 정치가 이루어졌으나, [[가마쿠라 시대]]가 개막되고 사무라이들이 권력을 가지면서 군권을 가지고 일본 동부 지방의 통치를 담당하는 무가 정권([[가마쿠라 막부]])과 조정의 일반 업무 및 일본 서부 지방의 지배를 관장하는 문신 정권(조정)이 서로 협조, 제휴하면서 정무에 임하였다. 천황 및 공가는 정치적 식견을 상당 부분 갖춘 계층으로 나름대로 뛰어난 정치적 감각을 지니면서 '''호시탐탐 막부 타도를 구상'''하곤 했다. 예를 들어 [[가마쿠라 막부]] 초기 [[고토바 덴노]]는 막부로부터 실권을 되찾고자 [[조큐의 난]]을 일으켰다. [[고다이고 덴노]]는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도움을 받아 가마쿠라 막부를 멸망시켰고, 이후 자신을 배신한 다카우지가 [[무로마치 막부]]를 수립하고 새 천황을 옹립하자 바로 탈출하여 새로운 조정을 수립하여 [[남북조시대(일본)|남북조시대]]를 만들었다. [[에도 막부]] 말기에 [[고메이 덴노]]는 막부가 무능한 쇼군의 재임과 [[쿠로후네 사건]]으로 인해 권위가 실추된 틈을 타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막부를 크게 흔들었다.[* 다만 고메이 덴노의 목적은 막부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굴복시키고 자기 뜻대로 굴리는 것이었다. 때문에 [[카즈노미야 치카코 내친왕|여동생]]을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에게 시집보내 혼맥을 만들고 막부를 적대하며 폭주한 [[조슈 번]]의 정벌을 명하는 등 친막부 행보도 보였다.] 가마쿠라 막부 시기까지는 공가가 정치적 실권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지만, [[무로마치 시대]]부터는 점점 공가의 권한이 약해져서 유명무실해지고 사무라이 계층인 [[쇼군]], [[다이묘]]들이 실제 일본 각지를 지배하게 된다.[* 특히나 [[오닌의 난]]은 덴노고 공가고 입지를 추락시키는데 기여했다. 본부격인 교토가 아작났기 때문. 덴노조차 생계를 알아서 꾸려가야 했을 정도로 비참했으니 그 아래는 오죽할까. 그래도 공가는 장사하든 사무라이의 가신이 되든 사무라이들에게 예절을 가르치든 어떻게든 일이라도 할 수 있었고 극단적으로는 자신도 칼을 들어 다이묘가 된 자도 있었지 덴노나 최고위 공가인 [[고셋케]]는 그것도 못했다.] 따라서 공가 역시 천황처럼 세력을 잃고 정치적 실권 없이 오직 가문의 명예와 신분만으로 먹고 사는 집단으로 전락했다. [[에도 시대]]에 들어서면 공가 사회는 막부에게 보호받았지만, 천황과 공가를 규제하는 법도가 확립되어 이를 바탕으로 에도시대의 공무관계가 규정되었다. 그러나 무로마치 시대와는 달리 에도 시대에 공가는 굉장히 높은 대접을 받아서, [[고셋케|오섭가]]에 속하는 가문들은 황족들과 함께 대대로 딸을 [[쇼군]]에게 시집보내면서 권세를 누렸고, 그보다 낮은 직위의 가문도 사무라이들에게 예법이나 [[다도]]를 가르치면서 부를 쌓았다. 그 유명한 [[추신구라]] 사건도 쇼군이 천황과 공가가 보낸 사절을 대접하는 도중에, 대접 업무를 담당한 사무라이들끼리 쪼인트를 까다가 벌어진 사건이었다. 이렇듯 정치적 실권은 전무하나 어느 정도 일본 역사에 적지 않게 개입을 해 왔던 집단이라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 [[파일:Kuge-machi_map.jpg|width=100%]] || || [[막말]]의 [[교토고쇼]] 주변 [[구게마치]]([ruby(公家町, ruby=くげまち)]) || 남북조시대부터 공가가 지속적으로 벌여온 근왕주의 운동은 뒷날 [[사쓰마 번]]이나 [[조슈 번]] 출신의 사무라이들로 구성된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과 함께 공가가 일본의 개화 운동을 주도하고 막부를 타도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결국 메이지 유신 이후로 공가의 절대다수는 [[화족]]으로 변신하여 [[고노에 후미마로]] 같은 [[총리대신]]도 배출하면서 '''천 년''' 만에 실권을 되찾는 데 성공한다. [[막말]]까지 유지된 문신 사회는 메이지 유신 때 해체되어 공가의 대부분이 [[화족]]에 흡수되었다. 하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쇼켄 황후]]와 [[데이메이 황후]], [[쇼와 덴노]]의 [[황태자비]] 후보 중 [[오섭가]] 씨를 보면 관습은 한동안 남았던 모양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