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곽거병 (문단 편집) == 가족 관계 == 곽거병 부모의 복잡한 관계는 집안 내력 참조. 곽거병의 아들 곽선은 자가 자후(子侯)였는데, 아버지가 24살밖에 안 됐으니 곽거병이 죽었을 땐 아직 어렸다. 하지만 한무제는 곽자후를 아끼고 귀여워했으며, [[태산]](泰山)에 봉선할 때도 오직 곽자후 한 명만 대동하였다. 한무제는 곽선을 장수로 삼을 계획이었지만, 기원전 110년 곽선이 죽고 만다. 그에겐 애후의 시호가 내려졌는데, 곽선의 자식이 없었기에 대가 끊어져 봉국은 사라졌다. 곽거병의 배다른 동생 [[곽광]]은 제조시중(諸曹侍中: 궁중에서 상소를 분담)이 되었고, 곽거병이 죽은 후엔 봉거도위(奉車都尉)[* 천자 측근에서 수레에 배승(陪乘)하는 무관직이다. 황제를 바로 앞에서 모실 수 있는 것.]에 광록대부(光祿大夫)를 겸한다. 그는 [[한무제]]가 죽기 직전에 자신의 실정을 반성하고 훗날의 일을 부탁하는 고명대신 중 한 명이었다. 곽광은 그 후 권신이 되어 [[폐제(전한)|황제]]도 폐하고 [[선제(전한)|새로운 황제]]를 세울 만한 힘을 가지지만, 흔들리는 한나라를 잘 지탱했다는 이중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곽광의 전횡이 결국은 화가 되어 곽씨 일족은 곽광 사후 모반을 일으켰다 멸족되는데, 여기에 곽선의 조카들도 연루되어 함께 멸망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