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곽광 (문단 편집) === 유일 권력자 === [[파일:곽광3.jpg]] 곽광의 벼슬은 대장군 대사마 그대로였지만 이젠 거칠 것이 없는 권력자가 됐다. 유일 권력자면서도 공손했던 몸과 마음가짐은 소제의 총애를 누리는데 지장이 없었으며 두연년, 전연년(田延年)이 문무 양쪽에서 곽광을 보좌했다. 또 무제시대 유명한 혹리 장탕의 아들 장안세(張安世)[* 곽광과 혼인으로 연결됐을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선제가 믿고 곽광의 집안을 멸족한 후 장안세에게 군권을 맡겼다. 장안세는 죽을 때까지 말과 행동을 엄청나게 조심했다고 한다. 장씨 집안은 전한에서 대대로 권세를 누렸다.]도 거기장군이 되어 곽광 속하에서 지지대 역할을 했다. 최고 권력자에는 반드시 반대파가 생기기 마련인데 이후 곽광은 기원전 68년에 죽을 때까지 12년 동안 아무런 태클도 받지 않고 권력을 쥐고 흔들었다. 이쯤이면 곽광은 사랑과 존경을 동시에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곽광의 위세는 한나라를 진동했다. 신하들은 일이 있으면 왕을 만나기 전 곽광을 만나 먼저 관백(關白)했다.[* (곽광을)거쳐(關) 아뢰었다(白).] 천하의 일이 곽광의 판단에 의해 처리됐다. 훗날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직책인 [[간파쿠|관백]]이라는 표현이 여기서 나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