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곽성호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문일고등학교 시절 고교축구에서 손꼽히는 유망주로 평가되었고, 당시 문일고 1학년 시절부터 팀의 에이스 공격수로 활약했다. 이러한 활약상 덕분에 1980년 AFC U-19 챔피언십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되었고, 일본전에서 골을 넣는 등 활약하며 대한민국의 무패우승을 이끌었다. 이 우승으로 [[1981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호주]] 대회에서도 출전하여 [[최순호]]와 함께 공격라인을 구성, 이탈리아전 4-1 충격적인 대승 때 한 골을 추가하는 등 활약했다. 대회가 끝난 이후 한양대학교에 진학했고, 간판 공격수로 활약하며 3차례의 국내대회 우승, 1984년 태국 퀸스컵 우승 등 숱한 우승컵을 쓸어담으며 대학 최대 유망주로 차기 [[K리그 드래프트]] 1순위급 선수로 거론되었다. 1985년 시즌을 앞두고 벌어진 스카우트전에서 당초 [[할렐루야 독수리]]가 곽성호의 지명을 목전에 두었으나 결국 최종적으로 [[문정식]] 감독의 [[현대 호랑이]]의 선택을 받고 K리그에 입성한다. [[문정식]] 당시 감독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겸임하고 있었는데, 대표팀의 과감한 리빌딩의 일환으로 현대 호랑이의 신인급 선수들을 기용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에 곽성호, 최광지 등이 핵심이었고,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아시아 예선 1차전 말레이시아전에서 곽성호 선수는 A대표팀 데뷔전을 가진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0-1 충격패를 기록하였고, 곽성호 선수도 뚜렷하게 두각을 나타내진 못하면서 [[문정식]] 감독이 해임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결국 문정식 감독과 함께 대표팀에 데뷔했던 곽성호 선수도 후임 [[김정남(축구인)|김정남]] 감독의 계획에서 배제되며 다시는 A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 이 충격의 여파가 컸는지 K리그 데뷔시즌이었던 1985시즌, 곽성호는 시즌 9경기 출장에 무득점이라는 최악의 기록을 내며 결국 프로에서 사라졌고 2군 생활을 전전하다, 이후 [[전국실업축구연맹전]]으로 자진해서 내려간 [[할렐루야 축구단]]에 입단해 3시즌을 더 뛰고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