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주문화방송 (문단 편집) == 역사 == 1964년 6월 13일 한국문화방송(주)광주국이 라디오로 개국했으며 1970년 8월 29일 호남텔레비전주식회사가 개국했다. 그 뒤 1971년 10월 1일 호남텔레비전주식회사가 한국문화방송(주) 광주국을 인수하면서 현 사명으로 개칭했다. [[파일:attachment/광주MBC/20100518_GwangjuMBC_1.jpg]] [[1970년대]] 후반 궁동 사옥의 모습. [[파일:external/archives.518.org/m_20121009144917.jpg]] 사진출처 : 5.18기록관 이 궁동 사옥은 [[5.18 민주화운동]]이 한창 진행중이던 [[1980년]] [[5월 20일]] 밤 8시 40분경, 왜곡방송을 내보낸 데 분노한 시위대에 의해 불타버렸다. 이날 사람들은 사옥 앞에서 "계엄군 물러가라", "관제언론 MBC를 불태워라"라고 외쳤다. [[황석영]]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서 해당 상황을 아래와 같이 서술했다. >시민들은 혹시나 자신들의 운명에 관한 새로운 소식이 TV를 통해 방영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모두 열심히 시청했지만, TV에서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연속극이나 오락 프로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들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한쪽에서는 죄 없이 같은 동포가 절규하며 죽어가고 있는데, 저 텔레비전의 다리를 흔들어대는 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배신감이었다. 시민들은 이제 어느 누구도 이 싸움이 더 이상 젊은 학생들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절감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감정들이 다음날 문화방송국을 불질러 버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 >-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1985년판 77쪽의 내용 중에서. 개정판에서는 서술이 조금 다른데, 다음과 같다. >텔레비전에서는 평소처럼 연속극이나 오락 프로그램만 방영되고 있었다. 나라의 한편에서는 '집단적인 인간사냥'이 벌어지는데, 텔레비전에서는 다리를 흔들어대며 춤을 추는 출연자의 모습만을 내보내고 있었다. 광주시민들은 배신감과 타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이러한 감정들이 다음날 시위대가 문화방송국을 불태워버릴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 >-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2017년판 119~120쪽의 내용 중에서. 그러나 위와 같은 언급과는 달리 광주MBC의 최초 방화 원인에 대해선 시위대에 의한 집단방화인지, 아니면 제3의 의도적인 방화자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현재도 진상규명이 안 되고 있는 상태이다. 왜 여지껏 방화로 알려진 사건이 의문이냐 하면, 당시 가두방송자인 전옥주 씨와 목격자인 서채원 씨의 [[http://blog.naver.com/memo/MemologPostView.nhn?blogId=samswlee&logNo=110053372342&parentCategoryNo=19¤tPage=10|증언]] 때문이다. 전씨와 서씨의 증언을 종합해 보자면, 이날 약 4백여 명의 시민들이 방송국으로 들어가 광주의 진상을 있는 그대로 공정히 보도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오히려 방송국 측은 이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1층 입구 셔터를 내려 시민들의 접근을 막았다. 이러던 와중에도 시민과 방송국 측과의 입씨름이 벌어지고 있는 사이 방송국 전원장치에서 갑자기 '펑'하는 폭발음이 들려와 불이 났고, 이때 시민들이 목공소에서 큰 나무기둥을 가져와 문을 부수려고 하는 사이 화재가 이미 난 상태였다.[* <정사(正史) 5.18(상)> 광주매일 특별취재반 엮음. 사회평론. 1995. P. 269~270.] 위와 같은 사건으로 인해 1980년 6월 9일 금남로 5가 흥국생명빌딩에 임시연주소가 설치되기도 했다. 1981년 4월 6일 궁동 사옥으로 복귀했지만 이후 1988년 10월 29일 월산동 현 사옥으로 이전한 이후[* 사옥 이전을 기념하여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가 광주에서 생방송으로 제작된 적이 있었다.] 1989년 7월 24일 궁동 구 사옥을 매각처분하였고, 현재는 ~~대국적인~~ [[김재규(동명이인)#s-3|경찰 공무원 입시학원 건물]]로 쓰이고 있다. 즉, 흔히 언급되는 것과 달리 다행히 헐리지 않았다는 얘기.[* 방송국 사옥으로 쓰이던 시절에 활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이크로웨이브 송수신용 안테나가 아직도 이 건물 옥상에 남아 있다.] 궁동 구 사옥은 [[5.18 사적지 목록|5.18 사적지 제7호]]로 지정되었다. 사적지 안내 조형물은 이 건물 바로 앞에 있다. ||<:> [[파일:attachment/광주MBC/MC1201102181044420.jpg|width=100%]] || ||<:> {{{+1 {{{#FFFFFF '''옛터임을 알리는 표지석''' }}} }}} || 다름아닌 MBC에서 방영한 [[공화국 시리즈]] 중 [[제4공화국(드라마)|제4공화국]]과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 광주문화방송이 불타버리는 사건이 나왔다. 제4공화국에서는 어디 방송국인지 모호하게 표현했지만 제5공화국에는 정확하게 '불타는 광주MBC'라는 자막과 함께 실제 자료화면을 첨부했으며 나레이션이였던 [[안지환]] 성우의 단호한 목소리로 당시 MBC를 디스했다. [[https://youtu.be/gYuShATwe70?t=7m8s|실제 방송장면]] >이날 밤, 언론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충격과 분노가 '''광주MBC'''를 불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도통제로 재갈이 물린 언론은 광주의 진실을 은폐하고 있었고, 광주시민은 언론의 거짓말을 용서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는 시위대에 의해 불타오른걸로 표현했다. 마찬가지로 5.18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에서도 이 화재 사건이 나온다. MBC 방송국이라고 명확하게 묘사하지만, 화재가 일어난 이유에 대해선 묘사하지 않았다. 자료화면만 나왔던 공화국 시리즈와 달리 작중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이 직접 불타는 MBC 인근에서 생생하게 사건을 경험한다. 또 소설 [[봄날]]에도 등장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