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광화문광장 (문단 편집) === 1960년대 이후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970년대 광화문.jpg|width=100%]]}}} || || {{{#fff ''' 광화문 아치와 중앙청[* 구 조선총독부](1968년~1982년) '''}}} || 1968년, 서울시는 [[이순신|이순신 장군]]의 동상[* 조각가 [[김세중(조각가)|김세중]]의 작품]을 세우면서 동시에 철골 아치를 설치하였다. 이후 1971년에는 이전의 일시적으로 설치되었던 폭 20m 정도의 아치를 폭 50m 정도의 아치로 넓혀 설치하였다. 7년 후인 1978년, 20m 정도 더 폭이 늘어나 70m 정도의 아치가 되었다. 다만, 사진처럼 철골로 유지되던 시기는 많지 않았으며, 대부분 "질서와 안정 속에 국가 발전 이룩하자"나 "국민화합 이루어 정의사회 이룩하자"라는 선전성 문구가 상시적으로 자리를 채우고 있었고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떠날 때나 새로 취임했을 때, 다른 나라의 대통령들이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했을 때 환영 문구도 이 아치에 새겨졌다. 1979년 [[10.26]]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 국장을 다룬 《대한뉴스》나 1980년 전두환 전 대통령 취임을 다룬 《대한뉴스》 영상 등 옛 영상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다 1981년, [[1988 서울 올림픽]] 유치 이후 '외국인들이 볼 서울에 저런 흉물스러운 철골 구조물은 안된다!' 라는 의견에 따라 1982년 결국 철거되었다. 이후 1990년대에는 [[조선총독부 청사]]도 해체한 덕택에 육조거리와 광화문통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오늘날의 세종로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