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괴담 (문단 편집) == 죽음과 괴담 == 납골당에서 특정한 고인을 오래 쳐다보면 귀신이 붙는다는 괴담이 있다. 하지만 그 고인들도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 이들은 오히려 고인을 귀신이든 꿈에서든 봤으면 좋겠는데 안나타난다고 속상해하기도 한다. 고인이 유명인일 경우 팬들은 고인에 대해선 이미 잘 알고 있으니 무서워하지 않기에 고인이 귀신 붙었다는 사람들은 없다. 하지만 납골당에서 고인을 모르는 사람은 사진 좀 쳐다봤다고 귀신(?)이 되어 달라붙어 괴롭히는 이유는 '요시키 티셔츠 심리'처럼 '''정체를 모르는 두려움''' 때문이다. 막상 그 사람도 자신의 자녀가 고인이 됐을 땐 안무서울텐데, 제3자가 자녀 사진을 쳐다보더니 귀신 붙었다며 저 아이가 날 괴롭힌다고 호들갑 떨면 '''막장 추태'''처럼 느껴지며 귓방망이 한대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도 있다. 더군다나 그 아이의 아버지가 무서운 조폭인데 옆에서 그러다간 본인도 납골당에 바로 봉안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게다가 세월호 추모관, 이태원 추모관 등으로 인해 그런 괴담 자체가 무색해졌다. 이런 추모관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모두 동정심에 아이들 사진을 오래 보며 눈물까지 흘리는데 다들 멀쩡하다. 이들이 고인은 몰라도 왜 죽었는지는 잘 알고 있으며, 남의 일 같지가 않기 때문에 무섭다기보다는 슬프기 때문이다. 고인을 모르고 왜 죽었는지도 모를 때 다소 무서울 수 있으며 이때 강박증이 생겨 시달릴 수는 있는데, '''그 고인에게도 가족이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가족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세월호 추모관, 이태원 추모관 등의 방문 후기를 살펴 보면, 자신의 꿈에 추모관에서 본 여성이 나타났다며 자신에게 반해서 쫓아온 것 같다는 변태오타쿠스런 괴담들도 있다. 자칫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으며 그냥 '뇌내망상'이라는 해석이 과학적이다. 실제 어느 저질 괴담방송에서는, 어떤 사람이 납골당에 방문했다가 어린 소녀가 죽은 것을 보고 딱하게 여겨 동정심에 오래 봤더니 그 소녀가 자신에게 붙어서 쫓아와서 계속 괴롭힌다는 황당무계한 방송을 했는데, 시청률(돈)에 눈이 멀어 고인의 예우 따위를 집어 던지고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이들이 악마보다 더 무서운 공포의 존재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도 있다. 그 소녀의 가족들은 자기 딸이 어린 나이에 죽은 것도 원통한데, 웬 삼류무당과 저질방송, 정신이 온전치 못한 제보자의 삼위일체 추태(...)로 인해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납골당 직원이든 방문자든 한창 나이의 어린 사람이 안치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게 여기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러면 그 고인이 달라붙는다며 인간으로서의 연민의 감정조차 갖지 말라고 무서운 표정으로 괴담을 말하는 무당이 귀신보다 더 무서운 존재일 수도 있다. '''[[건강염려증|무당의 말이 씨가 되어 '혹시 달라붙는거 아니야' 의식하면 불안신경증에 피해망상과 강박증]]'''이 생길 수 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0067932|#]] 실제 4라는 숫자에도 강박증이 생겨 괴로워하는 예민한 사람들도 있는데, 4에 대한 안좋은 말을 마음 속에 담아뒀기 때문이다. 불교식 추도식인 사십구재 전에 지인들의 꿈에 고인이 저승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인사하려고 나타난다는 괴담도 있다. 문제는 사십구재 후에는 꿈에 안나타나냐는 것이다. 심지어 죽은지 수십년이 된 친구가 꿈에 뜬금없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것은 친구가 아직도 이승을 떠나지 않은 증거인가? 또 살아있을 때도 꿈에 나타나는데, 오랜만에 친구가 꿈에 나타나 혹시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안부차원에서 전화했다가 "개꿈 꿨냐(...)"는 일갈을 듣기도 한다.(우연히 맞으면 예지력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대개 꿈에는 충격적이거나 인상적인 일들이 나타나니, 고인이 죽고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일인지라 장례식 후 한달 반 사이에 꿈에 나타날 확률이 높다. 대개 한달 정도 지나면 충격이 처음보다는 완화되니 그 즈음에 추도식으로 고인을 마음에서 놓아주는 것인데, 그러다보니 충격이 큰 한달 안에 꿈에 나타날 확률이 높은 것이다. 더군다나 지인의 꿈에 나타나는 고인의 모습은 아이때부터 성인까지 다양하다. [[영웅본색]]의 꽃미남 스타 [[장국영]]은 2003년에 사망했는데, 2023년에도 장국영 꿈을 꾼다는 팬들도 있으며 팬들이 꿈에서 본 모습은 각자 인상깊게 기억하는 영화나 방송에서 본 모습이다. 하지만 장국영처럼 추락사한 시신을 본 사람들은 팔이나 다리가 골절되어 기괴하게 틀어져 있다든지, 끔찍한 얼굴을 보고 충격을 받아 그 모습 그대로 악몽에 시달리는 괴담도 있다. 일종의 '트라우마'가 된 것이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오히려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들은 '''꿈을 통해 고인의 근황이 아닌 그 사람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기도 한다. 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고인에 대한 꿈도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고인이 좋은 곳에 갔다고 믿는 사람은 꿈에서 고인이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작별인사를 하지만, 고인이 뭔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꿈에서 고인이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며 울기도 한다. 이걸 무당들은 고인이 억울해서 이승을 못떠난다고 해석하기도 하나, 심리학자들은 반대로 그 사람이 고인을 잊지못하고 못놔주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실제 이런 사람에게 최면클리닉 의사가 최면을 걸거나, 혹은 무당이 퇴마의식을 통해 무의식으로 들어가 보면 환자 본인이 더 펑펑 울며 억울해하기도 하는데, 고인에게 집착하며 잊지 못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라도 고인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그런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다.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므로, 트라우마가 자꾸 꿈에 나타나며 악몽을 꿀 수도 있기에 꿈을 단서로 그 사람의 심리상태를 추적하고 분석하여 치료하기도 한다. 사십구재를 포함하여 모든 종교 추도식의 미덕이라면, 고인이 좋은 곳으로 잘 떠났을 것이라고 믿게 해줘서 놓아주게 해준다는 점이다. 고인을 잃게 된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아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다. 장국영 사망 소식을 접하고 자살하는 팬들도 있었다. 고인을 잃어 당황스럽고 허망하여 현타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런 추도식은 고인이 좋은 곳에 갔을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준다. 마치 소설 '[[마지막 잎새]]'의 노인 화가처럼 자연스럽게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마지막 잎새가 진짜냐 가짜냐가 중요한게 아닐 수 있듯이, 고인을 잃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는 추도식의 의식을 통해 다소나마 치유가 될 수 있다면 가치가 있을 수는 있다. 다만, 일부 사기꾼들은 유족들에게 굿을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부풀리거나 고인이 아직 못떠난다는 식으로 이런저런 명목을 붙여 자꾸 굿을 요구하는 등 '''고인을 잃고 나약해진 마음을 이용해서 등쳐먹는 사기꾼들에게는 팩트폭행이 필요할 수도 있다.''' 물론 추도식도 공짜는 없기에, '''저승길마저 빈부격차'''에 따라 다르기에 죽음마저 돈벌이 수단이 되었다며 이런 의식 자체를 혐오하는 사람들의 명분이 되기도 한다. 사치스러운 의식을 통해 고인이 만족한다는 증거는 없고, 사기꾼만 호구 잡아 돈방석에 앉으며 만족한다는 증거들은 많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유일한 평등이라면 바로 '죽음'일텐데, 부자 유족들은 고인을 최고급 황금길 저승코스로 모시며 [[우월의식]]을 느끼는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정작 고인이 정말로 럭셔리한 레드카펫을 밟으며 간건지 확인할 길은 없으니 '괴담'일 뿐이다. 고인이 좋은 곳으로 떠났다거나 환생했다는 추도식 이후에도 태연히 무덤이나 납골당에 찾아가 고인에게 반갑게 인사하기도 한다. 직관적으로 고인의 유해가 있는 곳에 여전히 고인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아무래도 어디로 갔네 환생했네 같은 말들은 엄청 믿지 않는 이상 증거가 없다보니 다소 괴담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어쨌거나 유해가 있는 곳은 확실하니 대개 유해에 고인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공동묘지나 납골당 괴담도 이미 가족들이 각자의 의식으로 고인을 보냈을텐데도,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단지 유해가 거기 있으니 유해에서 고인을 느껴 무서워하다 귀신을 보기도 한다. '''똑같은 고인을 두고도 각자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다.''' 특히 고인의 사진이 없으면 그냥 무심코 넘기다가도, 괜히 사진을 보면 그 사진 속 사람이 거기에 있다가 자신과 눈을 마주치자 쫓아온 느낌에 피해망상에 빠져 괴담이 탄생되나, 정작 그 고인의 가족들은 천도제를 통해 고인이 좋은 곳에 있을 거라 믿고 편안할 수 있다. 물론 천도제 이후에도 고인에 미련이 많이 남고 집착하는 사람들을 노리는 사기꾼들은 고인이 구천을 떠돌고 저승으로 못갔다는 괴담으로 돈을 뜯어낸다. 이런 사기꾼들이 묘사하는 고인의 모습은 '''임종할 때 의연하던 고인의 모습'''이 아닌, 저승으로 가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면서 돈을 구걸하는 모습이다. 즉 고인이 아닌 돈을 몹시 갈구하는 사기꾼의 또다른 자아이거나, 그저 돈이 필요해 '고인 코스프레(흉내)'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고인을 두고 각자의 종교 문제로 제사를 지내네 마네, 사십구재를 하네 마네 다투다 갈등이 커져 이혼하거나 칼부림까지 나기도 하는데, 죽으면 다 부질없다는 것을 고인을 보고도 깨닫지 못했는지 각자의 믿음에 목숨걸기도 한다. [[진중권]] 교수는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3&aid=0003542401|"신은 안 믿는 사람에겐 존재론적으로 슈퍼맨, 아이언맨과 크게 다르지 않은 허구에 불과하다"]]며, 성경을 들이대려거든 '''인간의 해석이 아니라 그분의 뜻임을 입증할 녹취를 따서 공증받아 오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고인에게 제삿밥 배불리 잘 먹었다거나 사십구재로 좋은 곳에 갔다는 공증이라도 받아오지 않는 이상, 가족과 다투면서 거액의 돈을 굿이나 제사, 사십구재 같은데 쓰면, 말로는 고인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은 본인의 만족을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정작 '''고인은 말이 없는데''', 산 사람들끼리 이걸 해야 고인이 좋아하네, 마네 각자의 믿음을 내세우며 싸우는 것도 다소 부질없고 이기적인 행동일 수도 있는 것이다. 김태영의 [[https://www.youtube.com/watch?v=TPZK4efeNSM|'세상을 더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개나리는 이렇게 말했다']]란 노래의 가사에서, '''개나리는 노란색인데''' 서로 다른 색깔의 썬그라스(색안경)를 낀 사람들이 개나리 색깔 가지고 싸우는 것을 지적한 것처럼, '''각자 자신만의 추모방식 역시 고인과는 무관할 수 있기에''' 본인만 조용히 믿으며 위안한다면 몰라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 수도 있다. 진중권 교수 말마따나 믿지 않는 사람에겐 그저 단순한 괴담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고인의 지인들은 자기만의 추모방식으로 고인을 위해 거액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끔찍이 아끼는데, 고인을 모른다고 잡귀 취급하는 것은 비매너를 넘어 사자 명예훼손(범죄)에 걸릴 수도 있다. 무덤을 지나가다 귀신을 봤다는게 괴담의 단골 클리셰이나, 천도제로 떠난 고인이 무덤 옆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뜬금없이 테마파크 '귀신의 집' 스텝 마냥 쫓아와서 놀래킨다는 것 자체가 그냥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렇게 느껴지는 피해망상인 것이다. 고인이 모르는 사람과 귀신놀이하며 술래잡기할 만큼 한가하지 않을 수도 있다. [[플라시보 효과]]는 [[확증편향]]으로 이어진다.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지라, 한국 대표팀이 패하는 날 비가 오면 패한게 슬퍼서 '하늘이 울었다'고 느껴지나, 그날이 제삿날인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제사를 지내는 고인이 우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과학자 [[칼 세이건]]의 저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는 한국의 제사를 저격한 부분이 나오는데, 단순히 고인 추모 의식을 넘어 제사상 차려 놓고 조상한테 이것저것 해달라고 빌거나 제사를 안지내면 조상이 노하여 벌을 받는다는 괴담이 있는 제사가 조상'신'을 모시는 기복신앙적인 종교적 속성이 있다고 한 것이다. 이미 소원을 빈다는 것 자체가 제사상을 힘들게 차린 것이 결국 고인 추모보다는 마치 종교에 헌금이나 시주하고 기도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일 수 있다. 사람이 단순히 죽었다고 '신'과 같은 능력을 얻어 [[예수천국 불신지옥]] 마냥 후손에게 고작 제삿밥 안차려줬다고 삐져서 벌을 내리거나(고인모독) 복을 내리는 존재로 신격화하여 '안되면 조상탓'이라고 괜히 조상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래서 제사문화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힘들게 살다간 고인이 조용히 영면하도록 내버려두고 마음 속으로 조용히 추모나 할 것이지, 어차피 굶어죽을 걱정이 없는 귀신이 얼마나 사람들처럼 먹는 것에 집착한다고 굳이 죽어서도 밥에 집착하는 귀신 취급하여 며느리들 고생시켜 요란하게 제사상을 차려 바치냐고 하는데, 거기다 소원까지 빌면 외국인들의 눈에는 다소 기이해보일 수도 있다. '''살아서도 자기 앞가림 하기 바빴던 고인이라면 설사 사후세계가 있다해도 자기 앞가림하기 바빠서 이승에 신경 쓸 여유가 없을 수도 있으니''', 사후세계를 믿는다면 이기적으로 자기 소원을 빌게 아니라 고인이 좋은 곳으로 가서 쉬도록 비는게 진정 고인을 위한 추모일 수도 있다. 고인이 사망하는 순간에 의식이 혼미해지며 헛것을 본다는 괴담도 있다. 물론 임종 때에도 담담하고 의연하게 평정을 잃지 않고 조용히 삶을 마치거나 잠을 자듯 편안히 임종하는 고인도 있으나, 실제로 뭔가를 보는듯한 고인도 있긴 하다. 그런데 그것은 그 사람이 평소 믿어왔던 것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나 천사를 보기도 하고, 제사에 집착하며 조상신을 섬기는 노인들은 조상들 얼굴을 다 기억하는지 조상들이 밖에 보인다고 하거나, 심지어 저승사자가 밖에 서 있다는 사람들도 있다. '저승사자'라고 이마에 써붙인 것도 아닐텐데, 보자마자 저승사자인 것을 안 것은 이미 그 사람의 잠재의식에 저승사자란 이미지가 뿌리깊게 각인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밖에 조상님들이 보인다는 환자를 보고 '평소 제사에 큰 의미를 두신 분이구나'라고 역으로 유추해낼 수도 있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마지막 순간 뇌가 깜빡거림을 멈추면 그 이후엔 아무것도 없다고 하니, 마지막으로 뇌가 깜빡거리는 순간 뇌에 각인된 각종 환영들이 보일 수 있다. 물론 호킹에 따르면, '''뇌가 멈추는 순간이 고인이 완전히 떠나는 순간'''이다. 고인의 유품도 마음가짐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다. 고인을 아끼던 사람들에겐 그 유품이 행운의 상징이나, 고인을 모르던 사람에게는 공포의 대상이 되어 중고품에 얽힌 괴담이 탄생하기도 한다. 고인이 유명인일 경우에는 고인의 유품이 경매에서 엄청난 금액에 낙찰되기도 한다. 고인에 대한 추모방식도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종교에 따라 제사를 아예 안지내는 경우도 있고, 무교인들 중에는 '못먹어서 굶주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먹지도 않고 버릴 음식을 상다리 휘어지게 차리고 내다버리는 것이 무슨 짓이냐'며[* 애초 죽은 사람에게 살아있는 사람의 음식을 바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인간중심적인 1차원적인 생각이다. 귀신도 증거가 없지만 물질적인 존재도 아닌 귀신이 그걸 먹는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고 오직 상상일 뿐이다. 설사 인간처럼 식사를 하는게 가능하다면 똑같이 하루 3끼 대접해줘야지, 특정한 날에만 줘도 된다는 건 너무 인간편의적인 발상이다. 사람도 한달만 안먹으면 소화기능이 퇴화되고 죽는데, 어차피 육체란 껍데기에서 벗어나 장기간 식사 안해도 살 수 있는 고인이라면 더 이상 먹을 것에 집착할 이유가 없어서 굳이 기일에 찾아온다면 후손보는 것만으로 만족할테니 말이다. 물론 보릿고개에 시달리다 죽던 과거에야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는 속담처럼 먹을 것을 그리다 아사하는 등 먹는 것에 한이 맺혔기에 그럴 수도 있다지만, 다이어트에 한이 맺힌 현대사회에는 다소 맞지 않다. 요새 사람들 입맛은 무척 까다로워져 나름 괜찮은 뷔페에서도 입맛에 맞지 않다며 조금만 먹다가 마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들에게 획일적인 제사 음식은 입맛에 맞지 않을 수 있다. '''먹귀 마냥 먹을 것만 보면 환장하던 시대는 지났다.''' 제사에 올리는 음식만 봐도 조선시대때나 맛있는 진수성찬 취급 받을 만큼 철저히 조선에 최적화된 문화인데, [[경로의존성]]으로 인해 대한민국으로 바뀌어도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나마도 현대사회에 맞춰 간소화되는 등 다소의 변화는 존재하고, 피자를 올린다든지 과거 제사문화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정말 고인이 좋아했던 음식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제사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고인이 평소 술을 좋아했다면 술잔 정도는 따라주지만, 고인의 취미와 관련된 것을 선물하거나 손편지를 쓰고 인사 정도 하는 식으로 그렇게 먹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조선처럼 농민들이 굶주리다 봉기 일으키는 등 '''먹는 것에 목숨 걸던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는 고인이든 친구든 서로 먹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어 고인을 추모할 때 먹는 것의 비중이 줄었다. 노숙자들도 무료급식소에서 [[이밥에 고깃국]] 먹으며 잔반 많이 남기는 시대이기에 '먹지못해 죽은 걸신'들도 드물다.] 음식 쓰레기 낭비 문제도 그렇고 향을 어떻게 피워야 한다든지 술잔을 몇번 돌려야 한다든지 하는 것들을 허위의식, 허례허식이라며 무의미하다고 혐오하는 사람들도 있다. 제사로 고인이 만족한다는 증거는 없고 '난 고인에게 이만큼 해줬다'며 '''살아있는 사람들의 자기만족'''일 뿐이라고 폄하하는 이들은, 고인의 기일에 찾아가 꽃다발 정도 바치고 인사하며 고인을 잊지 않고 추모하고 [[추억]]을 회상하고 기억하는데 의미를 둔다. 반면, 제사 안지내면 벌을 받는다며 제사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사람들은 정말 제사 안지내면 큰일 날 것처럼 느껴지기에 제사에 목숨걸다 갈등이 생겨 칼부림까지 나기도 한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4425443|#제사가 뭐라고…추석 전날 매형 살해한 60대 남성 자백]] 이처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일 뿐이나 소설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처럼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똑같은 요시키 티셔츠였을 뿐인데도 맘에 들어 '득템'했다고 생각하며 가져왔을 땐 기분 좋다가, 어느날 문득 눈빛이 무섭다고 의식하기 시작하며 불길한 암시를 받자 '귀신체험'을 하다가, 또 진실을 알고 나니 멀쩡해졌다.[* 정확히는 '괜찮다, 귀신은 없다'라고 마음을 고쳐먹었기 때문이다. [[정신승리]]가 진실 여부에 상관없이 믿음대로 느껴지는 것과 같다. '마지막 잎새'의 주인공은 오히려 거짓 그림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고 살아났는데, 자기가 귀신에 씌어서 고통을 겪고 있다고 굳게 믿는 사람에게 귀신 물리치는 퍼포먼스를 보여줘서 '귀신이 사라졌다'고 마음을 고쳐먹게 만들어 준다면 치료효과는 있다. 노인 화가의 잎새 그림이 소녀를 살렸듯 말이다. 그나마도 주부가 요시키 티셔츠를 고이 묻어놨기에 제작진이 파헤칠 수 있어서 망정이지, 만약 주부가 티셔츠를 소각시켜 버렸다면 정말 영영 미궁으로 빠져서 무서운 미스테리 괴담으로 남았을 수 있었다. 이때는 주부에게 단순 진정제 수준의 정신과 처방은 별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크고, 귀신 물리치는 퍼포먼스를 통해 '귀신이 사라졌다'고 마음을 고쳐먹게 만들어주는 것이 더 치료효과가 좋을 수 있다. 물론 진실은 저 너머에, 그 여자 귀신이 실은 요시키(…)였어도 말이다.] 전부 본인의 '마음가짐'에 따라 널뛰기했던 것이다.[* 실제로 '심신 의학'은 흥분이나 억울함 같은 정신의 동요가 신체의 변화로 어떻게 나타나는가 따위를 대상으로 하는데, 육체적 질병을 정신적 원인과 연관 지어 연구하고 치료하는 학문이다. 위의 요시키 괴담 링크에 당시 그 티셔츠에 프린팅된 요시키의 원본 사진이 있는데, 요시키인걸 알고봐도 눈빛이 다소 무서워보이니, 하물며 프린팅된 인물의 정체를 모르고 티셔츠의 전 소유자가 누구인지도 몰랐다면 주부가 섬찟함을 느꼈을만 하다. 사실 주부가 정신줄을 붙잡은 것도 '정체를 알았기에' 그런 것이니, 정체를 모르는 것에서 공포가 시작됨을 알 수 있다. 저 티셔츠의 원래 주인이 방송을 봤다면 얼마나 황당했겠는가. 싫증나서 무심코 버린 티셔츠를 누가 주워가서 정신줄 놓을 뻔 하다 방송까지 탔으니까 말이다. 정체를 모르고 보면 공포지만, 정체를 알고 보면 쌩쇼일 수도 있는데 과연 이 괴담만 그럴까? 괜히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라고 하는게 아니다. 원래 피해망상에 빠지면 건강이 악화된다.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는데 건강한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실제 신병이나 괴담뿐만 아니라, 사건사고의 생존자들도 트라우마로 인해 이유없이 몸 여기저기 아프고 건강이 악화되는 일은 많다.] 마찬가지로 똑같은 중고제품을 사도 의식하지 않으면 아무렇지 않다가 괜히 불길하다고 의식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 굳이 불길한 일과 연결시킨 자체가 찜찜하게 여기고 있다는 의미이므로, 사람이 일단 '''한번 마음에 두고 의식하게 되면 그 생각에 사로잡혀 확증편향이나 편집증이 생길 수도 있다.''' 마치 주부가 집안의 우환을 전부 티셔츠때문이라고만 생각했듯 말이다. 징크스나 미신도 이런 패턴이며 반대로 부적이나 기도로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 또한 편향의 심리다. 특히 안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은 괴담의 클리셰이나, '동전 던지기'를 떠올려보면 앞뒤가 항상 일정하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앞만 연속으로 나올 수도 있는데, 무한히 앞만 나오는게 아니라서 소설 '[[운수 좋은 날]]'처럼 '[[호사다마]]'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또 무한히 뒤만 나오는 것도 아니라서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아예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도 있다. '''행복과 불행은 변수가 많으므로 예측, 단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사주니 삼재니 별자리니 하는 무수한 운명결정론적 세계관들은 개인적인 사례만 듣다보면 그럴듯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막상 한발짝 떨어져서 전체적인 통계를 내어 분석해보면 표본집단의 크기가 커질수록 '[[큰 수의 법칙]]'이 적용되어 유의미한 인과관계가 잘 발견되지 않는다.[* 개인적인 사례만 놓고 보면, 우연히 [[네잎클로버]]를 줍고나서부터 좋은 일이 연달아 생기더니 급기야 시험에도 합격했다면 그 사람에게는 네잎클로버가 '행운의 상징'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수험생들에게 똑같은 네잎클로버를 동일하게 소지시킨다면 모두 다 합격할까? 어차피 딱 정해진 합격자수만 합격하고 나머지는 전부 불합격해 네잎클로버의 변별력이 사라져버린다. '큰 수의 법칙'처럼 개별사례를 넘어 점차 시행횟수가 많아질수록 원래 확률에 가까워진다. 비슷한 예로 복권이나 로또 당첨자들이 돼지꿈을 꿨다는 사례들만 모아놓고보면 그럴듯해보인다. 하지만 매일 돼지와 씨름하여 돼지꿈을 많이 꿀 양돈업자들이 더 로또당첨 확률이 높다는 근거는 없다. 다만 대중적으로 돼지꿈을 꾸면 재물이 생긴다는 말이 널리 퍼져있기에 평소 로또 안사는 사람들은 돼지꿈을 꿀때 로또를 살텐데, 그 사람들 중 딱 '로또확률'만큼 당첨자가 나오며 '''결과적으로 '로또확률'을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행복과 불행이 칼로 무자르듯 나눠진게 아니고 동전의 양면처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거나 반대로 로또당첨이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하기에 '꿈보다 해몽'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대개 각자 자신이 믿는 세계관으로 해석을 하기 때문에 종교인들은 믿음이 부족해 벌을 받았다거나 신이 나에게 성장하라고 주신 시련이라고 해석하고, '조상신'을 모시는 사람들은 묫자리가 안좋다거나 제사를 안지내서 벌을 받았다고 해석한다. 또 궁합에 빠진 사람은 연이은 불행의 원인을 애인탓으로 돌리며 '[[헤어질 결심]]'을 하는데, 이때 '''주술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괴담'의 모태'''가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