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교수형 (문단 편집) ==== 스페인 ==== [[프란시스코 프랑코]] 사망 이전까지 사형이 활발하게 집행된 국가로, 다른 국가가 대부분 수하식 혹은 현수식 교수형을 집행한 반면, 스페인은 16세기 즈음부터 가로테(Garrote)라는 교수형 집행용 도구를 따로 개발했는데, 올가미와 달리 죽기 전까지 의식이 남아 고통을 느끼는 대단히 잔인한 집행 도구로, 잉카를 비롯하여 식민지 주민들의 저항을 진압하고 고통스러운 사형을 받는다는 것을 알려줘 저항 의지를 꺾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초기의 가로테는 사형수를 앉히고 결박한 뒤 중국의 교형과 유사한 방식으로 사형을 집행하며 말 그대로 질식사시키는 방식이라 집행도 오래 걸리고 실패하는 일도 많았다. 그 뒤 19세기 이후 나사조임식[* 나사를 돌려 사형수의 목뼈를 부러뜨려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형 방법이었는데, 사형집행 수요가 급증하면서도 잔혹한 사형을 배격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19세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으로 바뀌면서 실패율은 줄었으나 잔혹성은 여전하였다. 특히 프랑코 정권 수립 초기 공화파들을 무더기로 처형할 때 가장 많이 쓰인 게 바로 가로테였다.[* 이 방식 처형은 스페인 식민지배가 이뤄진 필리핀에서도 시행되었다.] 게다가 숙청이 한창일 당시에는 그냥 처형도 아니고 공개처형이었다. 가로테는 1959년 5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호세 마리아 하라보의 집행을 끝으로 형법상 집행은 더는 없었으나, 1974년 민권운동 탄압 과정에서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본보기로 대규모 처형 재개를 검토할 당시 당시 반파시스트 애국혁명전선(ERAP) 단원인 살바도르 푸이그 안티호[* 반정부 활동 체포에 투입된 경찰에 대한 살해죄로 처형당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당시 사망한 경찰이 살바도르에게 죽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어 스페인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다. 국제사회에서도 사형집행을 하지 말라는 요청이 들어왔으나 결국 사형이 집행되었는데, 반파시스트 세력에 대한 본보기라는 설이 유력하다.] 등 2명에 대한 사형을 군법에 의거하여 먼저 갈로테로 집행하면서 다시 사용되기 시작했다. 다만 프랑코가 사망한 뒤에는 더 이상의 민간인에 대한 사형 집행이 없었고, 군법에 사형이 남아있어(스페인도 군법에는 총살형이 규정되어 있었다.) 시설이 1990년대까지 유지됐으나 군법에 의해서도 실제 집행된 사례는 없다. 1995년 사형이 완전히 폐지된 뒤에는 프랑스의 단두대와 마찬가지로 박물관에 들어가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