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급차 (문단 편집) === 대한민국에서의 역사 === 한국에선 [[1938년]] [[일제강점기]]부터 최초의 구급차가 [[일본제국 경찰|경찰]] 소방대에 배치됐으며 위급한 환자를 이송하는 역할을 했다. 물론 조선인들은 대게 혜택을 못 봤고 대부분 조선 거주 [[일본인]]들이 혜택을 봤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모든 기반시설이 다 날아가고 난 뒤 재해구호 등의 개념이 사라져서 [[1950년대]] 및 [[1960년대]]에 구급차는 서울 등 대도시의 대학병원/ 종합병원들이나 군용 구급차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민간용 구급차 이송 개념 자체가 사라진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화재 및 사고현장에서 환자 후송 및 봉사활동인 야간 통금시간 응급환자 이송용으로 [[1972년]]에는 전주소방서, [[1974년]]에는 서울/부산소방본부 및 대전소방서[* [[1986년]] 대전직할시 승격 전까지 대전은 충청남도 대전시였다. 대전소방본부도 뒤늦게 생겼고 원래 충남소방본부 관할이었다. 1974년 당시 대한민국에 직할시는 [[부산직할시]]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서울을 제외하고 소방'본부' 단위로 있는 곳도 부산직할시밖에 없었다.] 등에 일본 [[ODA]]의 경제적 원조를 통해서 최초로 제대로 된 민간용 구급차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이때부터 시골이나 지방도시 등에는 응급환자를 자체적으로 이송하던 민간 구조대도 있었다.[* [[SBS]]에서 방영하던 토요미스테리극장에 이 민간 구조대 관련 괴담이 나온다. 말은 구조대지만 실은 야간 통행금지 때 응급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역할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이들은 [[1981년]] 소방서에서 [[119구급대]]를 발족해서 구급업무를 실시하게 되자 구급업무를 소방본부에 넘기고 자진 해체했다.] 그러나 그당시는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전국단위로 지정된 구급차의 호출번호가 없어서 서울이나 부산 등 전국 대도시의 대형 종합병원에나 가야만 구급차를 호출할 수가 있었다. 그나마 '구급차는 통금시간에나 부르는 것'이라고 면박을 듣기 일쑤였다(...) 결국 [[택시]]를 타고 병원에 직접 가야만 하는 등 불편하기가 일쑤였다. 특히 도시도 아닌 농촌지역에선 더욱 상황이 열악하여 뜻하지 않은 사고 등이 닥쳤을 때 제대로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없었다. 교통사고 나서 택시 타고 병원에 가다 죽거나 불구가 된 사람도 많았다. 이에 [[1980년]] 전국 대도시들을 시작으로 구급업무를 시범적으로 전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고 시는 물론 전반적인 야간 통금시간 응급환자의 긴급이송 목적으로 구급차를 이용하는 야간 응급환자 이송센터를 운영한다. 그리고 [[1981년]]부터 시범발대한 119 구급대가 사용하는 소방서용 구급차가 [[왜건]]형 승용차를 이용하여 도입된 후 [[1982년]]부터는 조직 전면발족 후에도 이어지다가 이후 [[1983년]] 1월 소방법 개정으로 구급업무가 정식으로 소방업무에 추가되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특전사]] [[의무병]]과 [[대한민국 해군]] 의무부사관[* 해군 의무병과 의무부사관은 [[대한민국 해병대]]에서도 근무한다.] 및 [[간호장교]] 전역자들을 대거 소방공무원으로 특채하면서 119 구급대가 형성되었다. 초창기에는 구급차 운전수와 구급대원의 2인 1조로 구성되었다. 여성 소방공무원들은 전원 간호장교 전역자들이었으며 이들은 군부대에서 풍부한 임상례를 겪어본 베테랑이었다. 이후 [[1981년]] [[서독]]의 바덴바덴에서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1988 서울 올림픽]] 유치가 확정되자 조직을 정식으로 발족, [[1982년]]부터 1월 1일을 가해 전국적으로 조직을 발대했다. 그리고 1983년에는 소방법 개정으로 구급환자 이송을 정식 업무에 추가했으며 이때 조직이 더 확대되어 소방파출소[* [[2000년대]]부터 명칭이 지금의 [[119안전센터]]로 바뀌었다. ]에도 구급차를 사용하게 되었다.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고 화재와 긴급구조 및 응급환자 이송 번호는 [[119]]로, 범죄신고 번호는 [[112]]로, 그리고 [[113]]은 간첩신고 번호로 정비하여 지금까지 사용했다. 그러면서 기존에 깔아놓은 112번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 2002년까지 형사순찰차(이스타나 형사순찰차 도입부터 범죄신고 112 미표기.)와 112 순찰차에 범죄신고 112를 써 놓기도 했다.] 그리고 [[1995년]] 이후 잇다른 대형참사로 안전에 대한 의식이 재고되고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개최를 확정하자 119구급대를 증편했으며 특히 [[응급구조사]] 제도 실시로 응급구조학과 졸업생들이 구급대원으로 입직하고 임상 경험이 풍부한 간호사[* 간호조무사는 119구급대 특채 해당이 안된다. 무조건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경력이 있는 정식 간호사여야 한다.]들이 구급대원으로 소방공무원 특채 대상이 되면서 여성 구급대원+ 남성 [[응급구조사]] 구조대원[* 119 구조대는 그 특성상 응급구조사 보유자가 많으며 대게 군 특수부대나 해병대 출신들이라서 구급법 등 야전의무를 배워본 경험도 있다.]+ 운전 전담 기관원[* 기관원은 화재진압을 담당하는 일반대원이지만 구급 교육을 이수해 아주 문외한이 아니다. 구급 교육제도가 생기기 전인 [[1990년대]]에는 3인1조 구급대의 경우 운전 전담 기관원은 구급업무를 하지 않고 운전만 담당해 실질적으로는 2인1조가 많았다.] 위주의 3인1조 시스템의 현 119 구급대 체계가 완성되었다. [* 사실 2010년대 후반까지 인원이 확충되지 않아 2인 1조로 구급대를 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8~19년 소방공무원을 대규모로 채용하면서 이 문제는 거의 해결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지금의 한국형 민간용 구급차의 원조는 [[인요한]] 박사가 고안한 구급차로 이 구급차는 인 박사가 오래 활동한 전라도, 특히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 일대 소방본부에 보급되었으며 지금도 인 박사에게 전남 지역 소방관들이 크게 고마워하고 있다. [[긴급구조 119]]에도 인 박사의 사연이 나온 바 있었다. 한국 실정에 안 맞는 왜건형 승용차에 비해 공간이 넓어 의료장비를 넣기 쉬웠으며 내구성도 좋은지라 [[1986년]] 이후부터 한국형 구급차가 대거 일선 소방관서에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대한민국에도 [[포드 트랜짓]], [[벤츠 스프린터]] 등 대형 외제 구급차량이 도입되었으나[* 전형적인 [[1990년대]]식 미국 따라하기 [[탁상행정]](...)인데 미국식 구급차를 들여오면 선진소방구현이 된다고 생각하고 한국 실정에 안 맞는 대형차량을 억지로 들여왔다.] 골목이 많고 일방통행이 잦은 대한민국 특성에 맞지 않아서[* 특히 골목길에 주로 밀집한 주택가 화재 시 진입이 불가능해진다.] 결국 퇴출되어 [[현대 스타렉스]]로 일괄 교체되었다. 특히 하필 가장 도로사정이 열악한 [[부산광역시]]에 포드 구급차가 대거 들어와 원성이 잦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