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찌 (문단 편집) === 침체기 === 1982년 구찌 가족 경영진들의 논의 끝에 로돌포 구찌가 디자인부터 생산, 공급 모든 단계에 관여하는 경영권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1년 뒤 로돌포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마우리치오 구찌가 경영권을 물려 받으면서 브랜드가 풍비박산나버렸다. 이유는 집안싸움. 대표적으로 회장이 동의하지 않았는데 알도 구찌의 아들 파울로 구찌는 '파울로 구찌'라는 이름하에 핸드백, 악세사리, 와인 등을 판매하는 저렴한 브랜드를 만들었다. 라이선스 남발이 이어지면서 구찌의 브랜드 이미지가 싸구려가 되어버렸다. 당연하게도 구찌 내부에서는 난리가 났다. 가족 경영에도 위기가 불어닥쳤으며 회사 이미지와 더불어 재정난도 심화되었다. 구찌에 큰 위기가 닥친 시기였다. [[1987년]] [[바레인]]에 본사를 둔 투자회사 Investcorp가 구찌의 지분을 인수하기 시작하여 90년대 초반에는 결국 구찌의 전체 지분을 차지하였다. 이렇게 [[1994년]] 가족 경영 체제를 탈피한 후 [[톰 포드]]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변호사]] 출신 도미니코 드 솔레가 구찌의 CEO로 임명되었다. 톰 포드는 로고, 홀스빗 등 구찌의 전통적인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큰 성공을 이뤘다. 새로워진 구찌는 대중에게 어필했고 [[1998년]] 유럽언론협회의 올해의 유럽 기업에 선정되기도 한다. 톰 포드 이후 단순히 디자인만 하는 수석 디자이너 개념에서 매장, 광고, 제품 등 회사 이미지 전체를 전두지휘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위가 유행하게 되었다. 한편, [[1995년]] 마우리치오 구찌가 [[밀라노]]의 자택 앞에서 [[마우리치오 구찌 피살 사건|전처였던 파트리시아 레지아니의 사주를 받은 암살자의 권총에 피살되었다.]][* 이 사건은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의 배경이 되었다.] [[1999년]] PPR(Pinault-Printemps-Redoute)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단일 브랜드 회사에서 복수 브랜드 그룹으로 전환되었다. [[2004년]] 톰 포드는 재계약 과정에서 도미니코 드 솔레와 의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결국 구찌를 떠나게 되었고 프리다 지아니니가 [[2006년]] 그 자리를 대체하였다. 프리다 역시 구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4년간 46% 매출 신장을 기록하였으며, [[2007년]] [[닐슨]]의 세계에서 가장 갖고 싶은 명품 브랜드에 선정되었다. 그럭저럭 잘 돌아가는가 싶더니 [[2009년]] 새로운 [[CEO]] 파트리치오 디마르코가 임명된 후 매출이 감소하는 등 점차 뒤쳐지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한다. 실적 부진이 이어지자 [[2014년]] 프리다 지아니니와 파트리치오 디마르코 등 구찌를 이끌던 2명의 수장은 계약이 종료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