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품관인법 (문단 편집) === 구품관제와 구반선제 === 그런데 상서이부의 인사권 장악도 특별히 동진이 개국하면서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위, 진 시기 동안에 서서히 발달하였던 것이다. 특히 서진 말기부터 9품관제의 운용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이 나타난다. 승진의 순서가 반드시 관품의 상하와 일치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9품관제 이외에 하나의 인사 진퇴에 대한 기준이 서진 말 무렵 성립한 듯 보이는 것이 있다.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이것을 바로 [[유송]](劉頌)의 9반제로 알려진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유송의 9반제에서 반은 궁중 석차의 의미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자리의 문제는 아니다. 이 새로운 반차를 정한 것이 이부상서 유송이었던 점 및 석계룡 재기가 9반제를 9반선제로 바꾸어 부르고 있는 점에서 생각하면, 이것은 궁중 석차를 다시 정하는 동시에 다시 관료 승진의 순서까지도 규정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9품관제는 그 상층, 대략 5품 이상 정도의 부분은 단계를 세밀하게 나누고 있지만, 대략 그 6품 이하 부분은 매우 조잡하다. 상당히 나뉘어 있어야 할 많은 관직을 같은 품 안으로 넣어서 섞어 놓은 것이다. 따라서 오랫동안 인사를 행하면 같은 품의 관직 사이에 상하의 차별이 자연히 생긴다. 9품관제를 처음 만들었을 때에는 관직에 청탁의 구별이 생기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귀족주의의 발달에 따라 같은 품의 관직에 청관과 탁관이 생겨버렸다. 따라서 인사 이동을 할 때 탁관에서 청관으로 옮기는 것은 상관없지만, 청관에서 탁관으로 옮겨갈 때 당사자가 실망하지 않도록 준비가 필요하게 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9품관제를 인사의 진퇴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는데는 불충분하였기 때문에 더욱 정밀한 인사 진퇴표가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아마 사실상 이미 서진 무렵부터 그러한 필요성이 느껴졌던 것을 유송이 이부상서가 되었을 때 종합적으로 하나의 체계로서 만들어낸 것이 9반선제일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