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품관인법 (문단 편집) === 관료 피라미드 구조의 변천 === 위대에 시작된 9품관제는 [[송(육조)|송]], [[제(육조)|제]] 무렵이 되면 현저한 변질을 보이고, 따라서 관료 피라미드의 내부 구조도도 완전히 새롭게 고쳐야 할 필요가 생겼다. 특히 송대 [[송효무제]], [[명제(유송)|송명제]]의 시대는 남조의 관제상 각 방면에서 큰 변혁이 일어난 시대였다. 주의할 점이 이 시기 9품관제가 거의 원형을 남기지 않을 정도로 개변되어 있는 것이다. 원래 관료제였던 9품관제는 관품의 상하를 구별하는 수평선이 중요했다. 그것이 귀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비스듬한 단계를 이루는 사회 계급선이 강화되자 그것에 반비례해서 그림자가 엷어지고 귀족의 기호대로 구부러져 갔던 것이다. 중정의 신분에 대해서도 진나라에서 송나라로 이행할 때 큰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곧 중정은 중앙 정부의 인사에 거의 관계하지 않고 독자적인 입장에서 향품을 주는 것마저 하지 않으며, 다만 주의 인사에 대해서 주로 문지의 입장에서 발언을 했던 듯하다. 중앙의 인사는 모두 상서에게 일임하고 중정은 간섭하지 않음과 동시에 지방의 인사는 중정의 권한 안에 있고 중앙에서 간섭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구품관인법에 포함된 수재, 효렴제도는 송나라 이후도 위, 진의 격식을 지켜서 계속 시행되었다. [[동진]] 말기에 유명무실해졌던 수재, 효렴의 책시제도가 [[무제(유송)|유유]]에 의해서 부활되었던 것이다. 관료 피라미드의 구조가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화해 온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너무 지나치게 선례에 의거하고 또 그 선례가 너무 쌓여 그 근본인 9품관제를 잃고 출발점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 되어버렸다. 정치는 원칙에 너무 구애되어도 안 되지만 너무 적당히 짜맞추어도 불편하다. 어느 제도가 변화하는 데에는 변화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 이유를 검토하여 어느 시기가 되면 선례를 정리하고 새로운 체계를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 [[양무제|양나라 무제]]야 말로 그러한 임무를 띠고 등장한 인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