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품관인법 (문단 편집) == 특징 == * '''벼슬의 단계를 1품에서 9품까지 9단계로 나눈다.''' 따라서 한나라 시절에 녹봉의 차이 정도로 구분이 불명확하던 관직을 위계와 품등으로 명백히 구분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관직에 따른 권한 및 위계질서가 성립하게 된다. 중국내에서 오랫동안 사용되면서 18반으로 세분화하거나 정과 종을 도입해서 세분화하는 과정을 거치지만 원래 제도의 뜻대로 사용되었으며, 동북아문명의 영향을 받은 한국과 일본, 월남에도 영향을 주었다. 심지어 한국의 공무원제도에도 9급 공무원 하는 식으로 흔적이 남았다. * 기존에 벼슬하던 사람들 중 명망이 높은 사람을 선정해서 각자의 출신지인 군국에 따라 각각 군국의 '''중정(中正)'''이라는 관직에 임명, '''해당 지역에서 인재를 찾아 추천하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각 중정은 자신이 맡은 지역에서의 향론을 듣고, 타지역까지 흘러간 사람들까지 명단을 작성해서 향품(鄕品)이라는 품등을 매기고, 장(狀)이라는 상신서를 붙여서 중앙정부에 보낸다. 이렇게 한 이유는 전란에 많은 인재들이 고향을 벗어나 타향에서 살게 되었으므로 중앙정부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기에 고향 사람을 시켜 찾아내게 한 것이다. * 중앙정부는 중정의 상신서를 받아 해당 인재를 등용할지 여부를 결정한 후, 등용한다면 향품보다 4단계 낮은 품계를 준다. 그리고 해당 인재가 벼슬살이를 지속한다면 중정이 준 향품까지 승진이 가능하다. 일단 추천이 들어와도 한 번 시험적으로 낮은 관직을 주어 성실하게 근무해서 실적을 쌓으면 승진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향론도 무시하지 않아서 너무 낮은 향품을 받은 사람이 중앙정부에 들어와 안면을 바꾸고 높은 직위로 올라가지 못 하도록 하는 장치도 만들었다. 즉, 실력만 있고 인품이 비천한 사람은 고위급 관료가 못 된다는 이야기. 일단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 이론상으로는 중앙정부의 생각과 각 지역의 여론을 종합해서 융화시킬 수 있으며, 실제로도 어느 정도 위나라의 조정내의 관료기구와 각 지방 사족이나, 호족들의 여론을 달래는 데 일조했다. 그리고 구품관인법을 시행하면서 초기에는 전란으로 흩어진 사족을 재규합하고 묻혀버린 인재들을 발굴하는 등 긍정적인 작용을 했다. 조위의 황제들은 전통적인 사대부 출신은 아니었다.[* 조조의 양할아버지만 해도 환관이었다.] 그들이 전통적인 사대부 사회의 일원이 아니었다는 점은 건국 시에 사대부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편 전통적인 사대부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 않았기에 이들은 오히려 강력한 황제 지배 체제 건설이라는 목표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사회적으로 사대부들이 그들만의 정치적 세계를 만들었기에 진, 한초와 같은 강력한 황제 지배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결국 조위의 초대 황제인 문제는 구품중 정제라는 타협안을 통해 자신을 지지했던 사대부들에게 인사권을 보장해주며 사대부들을 국가 체제 안으로 포섭하였다. 그렇다고 구품중정제의 실시가 전적으로 황제권력의 패퇴라고 볼 수만은 없는 것이, 사대부들은 구품중정제에 의해 정치적 지위를 획득하고 권력을 보장받는 대신 국가 공권력에 의해 서열화됨을 감내해야 했기 때문이다.[* 홍승현, 사대부와 중국 고대 사회:사대부의 등장과 정치적 각성에 대한 연구.] 사대부들의 상호 추천이라는 점에서는 [[향거리선제]]의 연장이기도 하지만 결국 사대부들이 국가=중앙권력이 규정하는 서열과 체제 아래 포섭된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런 장치가 없게 되면 사대부들은 중앙에서 건질 것이 없으니 각자의 고향에서 지방 호족화 될 것이고 이게 진행이 되면 특별히 중앙정부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어진다. 이와 관련하여 좀 극단적인 예시를 들자면 프랑스 [[카페 왕조]]의 시조인 [[위그 카페]]는 [[카롤루스 왕조]]가 단절된 후 귀족들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는데 이 사례에서 보듯 프랑스 아니, 당시 유럽은 귀족들의 힘이 강하게 왕의 힘이 약했으며 귀족들의 힘의 원천은 지방에 있는 영지, 즉 영주라는 것에서 나왔다. 이러다 보니 위그 카페는 한 백작과 말다툼이 벌어져서 "누가 네놈을 백작으로 만들어 줬더냐!" 라고 호통을 쳤지만 그 백작은 되려 "그렇다면 누가 당신을 왕위에 앉혔소?" 라고 말했다. 이는 중국 같으면 왕조 말엽 황제가 꼭두각시가 되고 실권을 쥔 사람은 따로 있는 상태에서 그 사람이 개망나니 수준이 아닌 이상은 보기도 어려운 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