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구호기사단 (문단 편집) === 멸망 === 18세기 후반 들어 [[종교개혁]]으로 대륙 지부들은 모두 해체되었으나 일종의 독립 국가로 변한 [[몰타]] 지부는 여전히 건재한 상태였다. 그러나 1798년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의 일환으로 몰타섬을 침공해 점령했고, 기독교도와 싸우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구호 기사단은 항복하면서 기사단 국가는 멸망했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나폴레옹이 자신의 함대를 이끌고 이집트로 가는 길이라서 잠깐 쉬었다 가겠다고 속여서 아무 저항 없이 프랑스 군대가 상륙하게 놔둔 후 뒤를 당해서 정복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다른 기록에 의하면 기사단의 중심인 프랑스 출신 기사들이 나폴레옹을 환영하면서 받아들였고, 그랜드 마스터는 이를 저지할 수가 없어서 정복당했다고도 한다. 다만 기사단에 참여할 정도라면 신앙심은 둘째치고 혈통이 100% 귀족이란 이야긴데, 그런 이들이 혁명 세력인 나폴레옹을 환영했다는 건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귀족 출신 중에서도 혁명에 열광한 인물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고, 기사단이라는 곳이 상속에서 밀린 작은 아들들이 보내지던 곳이었으며, 무엇보다 당시 기사단의 존재 이유였던 튀르크와의 전쟁이 흐지부지된 상태였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즉 몰타에서의 일상에 만족할 수 없었던 일부 기사들에게는 이집트 원정이 모험, 혹은 한몫 잡을 수 있는 기회로 보였을 것이다. 영문 [[위키백과]]에 따르면, 물과 식량을 보급받고 싶다는 나폴레옹의 요청을 받은 기사단장이 "보급은 해주겠지만, 한 번에 2척만 입항할 수 있다."라고 회답하자 나폴레옹이 "그럼 보급이 너무 늦어지고, 그러다가 [[영국 해군]]에 붙잡힐 수 있다."라고 반발하여 병력을 상륙시켜 기사단을 공격했고, 몰타섬 서부를 격전 끝에 점령한 뒤 기사단 본대에 항복을 요구해서 관철했다고 적었다. 전투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라는 듯. 다만 프랑스군의 사상자는 수 명 수준으로 적었으며, 기사단 쪽의 사상자 역시 대부분이 포로였던 것으로 보아 격전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한두시간 정도 저항하다 포기하고 요새안으로 후퇴한 기사단이, 다음날 24시간 휴전협정을 맺은 후, 협상과 내부 토론 끝에 프랑스의 돈을 받고, 대신 요새를 비롯한 기사단의 모든 영토를 프랑스에 넘겨주고 철수하면서 전투가 종료되었다. 한편 2년 후 영국이 몰타섬을 프랑스로부터 빼앗았을 때, 기사단장이 영국에게 몰타의 기사단 본부를 반환해달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고,[* 상술했듯 가톨릭 선박도 해적질하며 몰타 해적단이라 불릴 정도로 고립되었던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영국 입장에서도 해적들에게 굳이 본거지를 주고 싶지 않았던 것.] 이후로도 기사단이 몰타 내의 영토를 회복하는 일은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