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공내전/대체역사 (문단 편집) == 중화민국의 [[하이난 섬]] 유지 == [[파일:하이난타이완.jpg]] 대륙에서 국공내전이 거의 마무리되는 [[1950년]]까지도 하이난 섬은 중화민국이 통치했다. 대만 섬도 그렇지만 당시 [[인민해방군]]의 빈약한 해공군 전력으로 바다 건너의 섬을 공략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민해방군]]이 1950년 5월 1일에 민간어선 수백척을 동원하여 [[하이난 섬]]에 상륙하여 공세를 벌이고 결국 중화민국군은 철수했다. 이곳을 접수한 다음 최종 목표가 바로 [[대만 섬]] 점령이었는데 미국이 대만 해협에 군함을 파견하고 [[6.25 전쟁]]이 터지면서 대만 진공을 무기한 보류했다. 하이난이 몇 개월만 더 버텼다면 지금 와선 대만과 같이 공산화를 피할 가능성도 있었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중국 본토와 하이난섬을 가르는 충저우 해협은 폭이 약 30km 정도로 타이완 해협에 비해 크게 좁아서, 해군이 거의 없다시피했던 [[인민해방군]]도 민간 어선을 징발해 건너올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난보다 훨씬 작은 진먼 섬을 지켜낸 진먼 전투처럼 국민당군이 분전해서 하이난 섬을 지켜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하이난 섬은 섬이긴 하지만 대만 섬보다 훨씬 대륙과 가깝기에 중공의 공격으로 인한 분쟁 충돌로 지속적인 [[진먼 포격전|하이난 포격전]]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작은 섬인 진먼과 달리 하이난 섬은 중화민국 영토의 절반에 가까우므로 하이난 섬을 공격하는건 사실상 중화민국(+ 미국)과의 전면전 또는 국공내전의 재개를 뜻하므로 진먼만큼 쉽게 공격하진 못했을 것이고 오히려 평화로웠을 수도 있다. 하이난 섬이 중화민국 휘하에 남았다면 대만과 함께 중화민국의 양대 중추지로 남아 있었을 것이고 중화민국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당장 중화민국의 실질 강역만 해도 배로 커진다. 한편 하이난 섬은 당시 [[광둥성]]에 속해 있다가 중공 치하에서 1988년 [[하이난성]]이라는 별개의 성으로 승격되었지만 만약 중화민국 휘하에 남았다면 대만 섬과 함께 양대 중추지가 되므로 1950년대 쯤에 하이난성으로 좀더 일찍 승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중화민국 치하에서 하이난은 광둥에서 분리되어 특별행정구로 있었다. 또한 중국의 경우 화동, 화남 연해 해안가 및 남중국해가 대만-해남의 중화민국에 봉쇄까지는 아니지만[* 당연하지만 대만과 하이난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서 영해 상으로 중국이 두 섬 사이를 통과해서 지나가지 못하는건 아니다.] 중화민국군과 미군이 하이난 섬 일대에서도 활동하게 되므로 해양 진출이나 중화민국, 미국과의 대치에서 중국이 현재보다는 약간 더 불리해졌을 것이다. 다만 중화민국 입장에서도 하이난 섬은 지키기 까다로운 지역이 되는데 대만섬보다 훨씬 중국과 가까운데다가 진먼과는 달리 인구도 대만섬의 절반 정도로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유사시에 쉽게 포기할 수도 없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이난 섬에 대한 안보 위협으로 인해 중화민국, 특히 하이난 섬 지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오히려 커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대만인이라는 의식은 더 엷었을 것이며 중화민국의 정체성이 더욱 강했을 것이다. 현실의 중화민국에서는 대만 이외의 중화민국 실질 영토는 매우 작아서 그 지역들이 거꾸로 대만에 동화되고 있는데[* 예를 들자면 대만인이나 진먼인들이 진먼을 대만의 일부로 인식한다거나, 물론 자신은 절대 대만인이 아니라는 진먼 사람도 있다.], 비대만 영역이 상당히 커진다는 의미이니. 한편 거의 비슷한 크기의 멀리 떨어진 두 섬이 하나의 나라를 구성하는만큼 하이난과 타이완 사이의 지역감정이 커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앙집권을 유지하기는 어려우므로 대만과 하이난의 연방공화국으로 전환할 가능성도 있다. 수도의 경우 인구가 2배 가량 더 많고 면적도 약간이나마 더 넓은데다 중국과 거리가 있어 안보적으로 유리한 대만 지역에 있겠지만 현실의 중화민국과는 달리 타이완-하이난 간 교류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대만섬 북부의 [[타이베이]]가 아닌 하이난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타이난]]이나 [[가오슝]]으로 정해질 수도 있다. 하이난의 경우 지리적으로 중국과 매우 가까운데다 역사적으로도 중국의 귀속된 시기가 대만보다 훨씬 길며 대만처럼 50년간 일본의 식민지로 지내며 중국대륙과 별개의 역사를 가진 시기가 있지도 않았으므로 현실에서의 대만의 [[푸젠성(대만)|푸젠성]]과 유사하게 중국과의 교류를 지지하고 독립에 반대하는 성향이 강했을 것이다. 즉, [[범람연맹]]의 텃밭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대만 독립운동|독립운동]]의 양상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중화 정체성을 부정하는 강경파는 대만-하이난 연방 공화국으로의 '독립'을 주장하는 파와 개별적인 대만 공화국, 하이난 공화국으로 분할 독립을 주장하는 파로 세분화되었을 듯하다. 독립성향은 하이난보다는 대만이 더 강했을 것이다. 하이난 섬을 유지함으로써 중화민국의 영토는 2배, 인구는 1.5배 가량이 되므로 국력이 대만만 차지했을때보다는 더 나았겠지만 결국 중국보다는 훨씬 약한건 매한가지이므로 UN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건 마찬가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하이난의 존재감이 진먼, 마쭈보다 훨씬 크기에 국제적으로 '타이완'이라고 불렸을 가능성은 낮고 유력한 이름은 '타이완-하이난'이다. 한국에서는 '대만-해남'으로 불렸을 것이며 어감 문제로 '타이완-하이난'으로 불렸을 수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