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립세무대학 (문단 편집) == 입학성적 == 입결 점수는 82년도 기준, 내국세과는 [[학력고사]](인문계) 250점이상에 [[내신]] 1등급, 관세과는 260점 이상에 내신 2등급.(이 당시 내신은 10등급으로 매겨졌다.) 병역필인 자의 경우 학력고사 성적의 5%를 가산해주었다. 250~260점 이상에 내신이 1등급인 학생이 지원 가능했으니 더 높은 점수의 학생들이 지원했음을 감안한다면, [[연세대]] 또는 [[고려대]] 아무 학과를 골라갈 수 있었음은 물론, [[서울대]]도 [[서울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대]] 등 일부 학과를 제외하면 모두 합격 가능했다. 이는 [[SKY(대학교)|SKY]]를 위시한 최상위권 명문대학을 갈 수 있는 성적의 학생이 집안 형편이 어려워 당시 학비가 무료였던 세무대와 같은 특수목적대학([[경찰대학|경찰대]], [[한국교통대학교/학부/철도대학|철도대학]], [[한국해양대학교|해사대학]], [[농협대학교]] 등)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또한 경찰청 소속 [[경찰대학|경찰대]][* 국립세무대와 같은 년도에 개교]와 [[육군사관학교|육사]], [[해군사관학교|해사]], [[공군사관학교|공사]]가 국방부 소속 특수대학인 것과 같이 세무대도 국립 기관인 재경부 (현 [[기획재정부]]) 소속 특수대학이었으므로 교복, 기숙사, 식비 등이 제공되었고, 이 후 [[세무사]]라는 전문직이 될 수 있었기에 매우 높은 입학점수대를 가지게 되었다. 여담으로 당시에는 학비와 졸업 후 바로 임용되는 특혜의 이유로 [[국립대]]의 [[사범대학]]의 입결도 높았다. (예: [[경북대]], [[부산대]] [[국어교육과]]와 [[영어교육과]]) (밑의 86학번 배치표 참조) 참고자료. (82학번 배치표) || [[파일:6. 1981.12.30. 조선일보 82학년도 학력고사 배치표.png|width=80%]] [br] ,,1982학년도 첫 회 학력고사 배치표([[조선일보]] 1981년 12월 30일자 기사),, || [[https://orbi.kr/00014895769|85년 12월 경향신문 기사 배치표 (86학번)]] [[https://www.google.co.kr/amp/mnews.joins.com/amparticle/1803831| 84년 11월 29일자 중앙일보 기사 (85학번)]] 이후 [[수능]]으로 전환되고 [[IMF 사태]]가 터짐에 따라 안정적인 직업, 그리고 의무 복무(재무부 장관이 임명한 근무지에서 4년 근무) 후 전공을 살린 [[전문직]]([[세무사]]와 [[회계사]])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음에 따라 입결 점수도 점점 높아졌고, 폐교 전 99학번 때에는 [[서울대]] 중~상위 학과와 입결이 완전히 겹쳤다. 98학번의 예를 들면, 문과 기준 수능 상위 1% 내외가 합격권이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공무원]]들이 천대받았다고 하지만 세무직, 관세직 공무원은 예외였다. 과거 [[대한민국]]에서 공무원의 청렴은 낮은 편이었기 때문에 세무에 걸리는 기업체 및 자산가 측에서 [[뇌물]]을 많이 건넸고, 공무원 생활 동안 쌓은 [[인맥]] 덕분에 공무원 생활을 정리해도 사기업에 쉽게 취업되었기 때문이다. 세무사 및 관세사 자격 취득은 보너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