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민신당(대한민국) (문단 편집) == 상세 == [[이인제]] [[경기도지사]]는 [[신한국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결선에 진출하였으나 패배한 후, 아들 병역 의혹을 계기로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자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독자 출마를 선언하면서 국민신당을 창당했다. 신한국당의 [[서석재]], [[황명수]] 등을 포함한 민주계[* [[1990년]]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민주자유당]]으로 통합되고 나서의 구 통일민주당 출신 정치인을 말한다.] 일부와 [[박범진]] 등 민정계 일부 정치인들이 합류하였다. 창당대회에서 [[이만섭]] 전 [[대한민국 국회의장|국회의장]]을 [[총재]], [[이인제]]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당명을 [[PC통신]] 등을 통하여 공모하였다. 공모된 이름은 '새시대국민연합', '참여민주당', '[[국민참여당]]' 등의 이름이 있었지만 모두 진부하거나 당시 [[김대중]]이 총재로 있던 정당인 [[새정치국민회의]]와 유사하다고 판단하여 '국민정당'과 '21세기 국민연합'을 놓고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결정된 건 국민신당. 일본에서 한때 돌풍을 일으켰던 [[일본신당]]에서 힌트를 얻은듯 하다.[* 한때 'XX신당' 류의 이름이 여러 곳에서 쓰였다. [[자유민주연합]]을 탈당한 [[김용환(1932)|김용환]] 의원이 세운 [[희망의한국신당]]이라든지. 몇 년 후 민주당계 정당 중 하나인 [[대통합민주신당]]도 신당 명칭을 사용했다.] 창당 시점에는 한때 지지도에서 [[이회창]] 후보를 앞지르고, [[김대중]] 후보를 바짝 추격할 정도로 기세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창당 과정에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측근들의 지지가 있었다는 의혹이 이회창, 김대중 모두로부터 제기되었고, 그 해 초 국정 비리로 구속되었던 [[김현철(1959)|김현철]]까지 거론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국민신당과 이인제 후보의 지지율은 허무하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인제는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 이회창([[한나라당]])에 이어 3위(492만표, 19.2%)로 낙선하였다.[* 이 기록은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699만표, 21.4%)를 얻기 전까지는 제3지대 정당 최고득표율 이었다.(이인제가 갱신하기 전까지 제3지대 정당 최고득표율은 전 선거인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통일국민당]]의 [[정주영]] 후보(388만표, 16.3%)).] [[1998년]] 6월 4일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새정치국민회의|DJP]][[자유민주연합|연합]] 대 한나라당의 구도 속에 [[전일순]] 후보가 [[충청남도]] [[논산시|논산시장]]에 당선되는 데 그쳤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논산시]]는 이인제의 고향으로, 그의 4선(전체경력은 6선) 텃밭이었다. 그나마도 전일순은 [[2000년]]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형.][* 이때 국민신당 소속으로 출마한 사람 중 추후 당선된 사람은 [[이훈국]] 인천 서구청장, [[김동식(1961)|김동식]] 김포시장, [[오세창(정치인)|오세창]] 동두천시장, [[임창선]] 여주군수가 있다.] 그리고 그 해 7월의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는 1명의 당선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결국 [[1998년]] 9월 28일 [[이만섭]] 총재[* 이후 차기 국회에서 국회의장을 다시 한 번 역임하였다.]와 [[이인제]] 전 대통령 후보를 비롯한 6명의 소속 국회의원[* [[김운환]], [[박범진]], [[서석재]], [[원유철]], [[이용삼]], [[장을병]].]과 전일순 논산시장 등 [[이인제계]]와 대다수 당원은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고, [[김학원(1947)|김학원]] 의원, [[송광호]] 전 의원은 탈당 후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했으며, [[한이헌]] 의원은 탈당 후 무소속으로 남으면서 소멸되었다.[* 그나마도 한이헌은 이후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해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다.] 이들 중 [[원유철]] 등 대부분은 그 후 다시 친정인 [[한나라당]]에 복당하였고[* 민주당에 그대로 눌러앉은 일부 인사로는 [[홍재형]], [[이용삼]], [[박수현(정치인)|박수현]] 등이 있다.], 이인제도 여러 차례의 당적 변경 끝에 [[2012년]] [[새누리당]]으로 돌아왔다. 사실상 [[피닉제]] 전설의 시작. 국민신당을 창당하기 전의 이인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빼닮은 외모로 중장년층에서의 인기가 높았으며 노동부장관을 지내며 쌓은 소신있고 능력있는 이미지로 젊은 층에서도 환영받았다. 하지만 실제 대선에서는 중장년층 지지율이 이회창으로 쏠리면서 선거를 말아먹기는 했지만 젊은층 사이에서 지지는 남아있었기 때문에 19%라는 득표율을 올렸던 것이었다. 요새 이미지와는 천지차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