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제연맹 (문단 편집) === 붕괴과정 === 대공황의 여파로 국제연맹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물론 이 와중에 멕시코([[1931년]]), 터키와 이라크 왕국([[1932년]])이 가입하긴 했지만, [[나치]]와 [[파시스트]]가 등장하고 [[일본 제국]]은 만몽과 화북 지역의 이권이 일본의 생명선이라 주장하며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을 수립했고 성동격서를 위해 1932년 [[제1차 상하이 사변]]을 일으켰다. 이어 1933년 [[열하사변]]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이에 [[중화민국]]의 국제연맹 제소가 있었지만 일본의 탈퇴 협박과 실질적인 제재 수단 부재 때문에 국제연맹의 대응은 지리멸렬했다. 게다가 이 와중에도 소련은 계속 거부되었고, 미국은 끝까지 가입하지 않았다(...). 그래도 국제연맹을 구성한 기존 열강들은 평화의 가능성을 신뢰하고 있었다. 일본에는 경제 제재를 경고하고 실제로 [[만주]]까지 조사단(그들이 쓴 보고서는 Lytton report)[* 하지만 이 조사단이라는 것도 만주까지 파견되기까지 회원국간 합의가 이뤄지고 승인이 나기까지 3달, 1931년 12월 파견이 승인 되었음에도 '''배'''로 만주로 향해서 1932년 봄이 다 되어서야 도착하고 6주간 조사하여 사변이 일어나고 10달이 돼서야 보고서가 올라왔다]을 파견하고 [[만주국]]의 승인을 거부하고 일본군 철수를 권고했다. 또 같은 회원국끼리의 전쟁인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1935년]])과 [[스페인 내전]]([[1936년]])에도 훈수를 두고 다른 회원국의 참전을 막았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깡패가 약한 애를 패고 있는데 동네 싸움으로 번질 것을 걱정하면서 폭력 사태를 말리는 게 아니라 다른 애들한테 끼어들지 말라고 한 다음 내버려둔 격이다.''' 더구나 '''소련이랑 나치 독일은 회원국이 아니어서 잘만 이탈리아를 후원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일본과 이탈리아는 그런 말을 듣느니 탈퇴가 더 빨랐다.''' 독일 역시 [[아돌프 히틀러]]가 베르사유 체제의 폐기를 선언하면서 [[1933년]]에는 일본과 독일이, 뒤이은 [[1937년]]에는 이탈리아가 탈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