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군경 (문단 편집) == 갈등 == 서로 같은 태생을 타고난 탓인지 군경은 [[갈등]]이 심한 사례가 많다. [[민주주의]] [[국가]]의 경우 군은 [[문민통제]]하고 경찰은 철저하게 경력에 입각한 [[시스템]]을 적용해 서로 충돌할 일이 없지만[* 단 [[미국의 법 집행|미국 경찰]]은 경찰노조의 힘이 강해 경찰이 통제 밖이다.] [[정치]]에서 무력이 중시되는 나라들에선 군경들의 갈등이 [[유혈사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해방공간 시절 [[건군기]]의 군과 경찰은 갈등이 심했다. 당시 경찰의 상당수는 [[조선총독부]] 경무과에서 근무하던 하급 경찰들이 그대로 흡수된 상태였고 군은 [[장교단]]에는 [[만주군]]이나 [[일본군]]에서 적극 복무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있긴 했지만 [[사병]]의 상당수는 [[징병령]]으로 끌려간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조선경비대]]나 [[조선해안경비대]] 같은 경우엔 [[미군정]]에서 [[소련]]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군이 아니라 경찰의 예비병력이란 식으로 창설된 탓에 무장 상태가 경찰보다도 빈약했다. 이런 과정에서 [[우익]]이 절대다수였던 경찰과 [[숙군]] 전에 [[좌익]]이 꽤 있던 군은 [[이념]]문제로 갈등을 겪었고 이념 문제 외에도 경찰이 군을 무시하는 일 등이 벌어져 사이가 안 좋았다. 대표적으로 [[영암사건]]이 있는데 당시 경찰은 [[기관총]]으로 군과 싸웠다. 이런 대립은 [[6.25 전쟁]] 이후에도 잔재가 남아 있어서, [[4.19 혁명]] 당시 계엄군이 [[중립]]을 지키며 시위대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취한 이유 중 하나로 보기도 한다.[* 사실 가장 주된 이유는 [[대한민국 제1공화국|이승만 정권]]에 등을 돌린 [[미국]]의 동향을 살핀 것이었다.] [[일본 제국 경찰]]과 [[일본군]]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일본 제국|일본]]에선 한동안 [[일본 제국 육군]] [[일본 제국 육군/헌병|헌병]]들이 [[치안]]의 일부를 담당했고 경찰은 군에게 눌린 채로 살았다. [[오사카 고스톱 사건]]으로 군은 우세승을 확정지었고 [[육군성]]과 [[해군성]]은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일본을 패망으로 몰아넣었다.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점령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경찰을 지원하는 방침을 취했고 [[육상자위대]]의 경우 수뇌부를 [[내무성]] 출신의 경찰들이 초기에 장악했다. 이들은 [[내무군벌]](內務軍閥)이라 불렸다. 구육군 출신들로 [[장교단]]에 편입된 간부들은 내무군벌과 자위대 내에서 갈등을 벌였다. 이런 갈등은 자위대 내부 뿐만 아니라 새롭게 세워진 [[일본 경찰]]과 [[자위대]] 사이에도 나타났는데 [[1976년]]에 [[소련]] 방공군 [[중위]]가 [[미그기]]를 타고 [[망명]]했을 때 일본 경찰은 [[공항]]을 봉쇄하고 자위대의 출입을 막았다. 그리고 자위대는 [[텔레비전]]으로 상황을 지켜봐야했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