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군복 (문단 편집) === 근대 === [[파일:Russian army nothern war.jpg]] [[대북방전쟁]]시기의 러시아군 [[전열보병]] [[파일:external/78b9e47a653293ee255a1d26ebaf0cbada4aa86eef2c8c4957de8c0aa1f1ab6a.jpg]] [[나폴레옹 전쟁]] 초기의 [[오스트리아군]] 전열보병 군복 비슷한 하나의 [[제복]]으로서의 군복이 나타난 것은 [[육군]]의 경우 [[전열보병]] 시대의 일이다. 이 시대 육군 군복의 역할은 '''멋지고 멀리서도 식별이 잘 되는 튀는 옷'''으로서 현대의 전투복과는 의도가 정반대였다. 당시에는 군인 개개인의 화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엄폐의 필요성이 낮았고[* 아예 엄폐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주력 무기인 [[머스킷]] 총의 연사력이 형편없고 명중률이 떨어졌기 때문에 화력을 넓은 면적에 투사하기 위해 집단대형을 취했으므로 엄폐가 용이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지에서 흩어져서 각개전투를 하다가는 보병 대열의 일제사격 후 착검돌격에 일방적으로 박살나기 때문에 평야에서의 집단전은 거의 100% 대형을 갖추고 취해졌다.], 무연화약 개발 이전에 사용되었던 흑색화약은 폭발 시 연기가 심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화약 연기가 자욱한 전장에서 쉽게 피아구별을 하기 위해 최대한 눈에 잘 띄는 화려한 복장이 필요했으므로 주로 원색이 많이 사용되었다. 또한 화려한 복장으로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 당시 서유럽 군복 중 가장 대표적으로 보이는 코트는 당시 귀족들이나 신사 계층이 입던 사복 [[프록 코트]]에 기반한 물건이었고, 이를 화려한 색상으로 물들이기까지 했다. [[부르봉 왕조]] 때의 [[프랑스]]와 [[에스파냐]], [[신성 로마 제국]] 육군은 흰색을 입었고, 영국 육군은 그 유명한 [[레드 코트]], [[프로이센]] 육군은 [[프러시안 블루]] 색상의 기원이 된 [[군청색]] 군복을 입혔다. 물론 중세시대 부터 유럽 서민들 조차 될 수 있는데로 색상이 들어간 옷을 입는걸 선호하였다고는 하나, 흠없이 깔끔하게 염색된 상류층의 의복은 확실한 메리트로 자리잡을 수 밖에 없었고, 결코 저렴하지 않은 [[금색]] 혹은 [[은색]]의 금속제 단추들이 주렁주렁 달려있기까지했다. 모자도 신사들이 쓰던 [[삼각모]]가 군모로 지급되었다. [[파일:external/members.upnaway.com/n9.jpg]] 이러한 '''멋진 군복'''은 남성들이 군대에 지원하는 동기가 되기도 했다. "군대에 가면 번쩍거리는 칼도 차고 저렇게 멋진 옷도 입을 수 있구나!"는 생각에 지원하는 사람이 의외로 적지 않았던 것이다. 비록 예산 문제 등으로 사복 정장이나 장교들의 맞춤복보다는 질이 떨어지고 겉만 그럴싸한 피복이 지급되곤 했지만, 적어도 하층민들이 걸치는 중고 의류나 누더기보다는 훨씬 나았다. 전장에서 노획한 군복류 등은 [[총알]] 구멍이 나고 피투성이라 할지라도 중고 옷집에 팔면 꽤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었다. 시기는 다르지만 [[나치 독일]] [[슈츠슈타펠]]의 군복도 이러한 이유로 기존의 튜닉을 유지하되 실전에 도움되지 않는 요소들을 부분 재도입 하여 제정되었다. [[파일:external/www.history.army.mil/8-50-77_s.jpg]] 독립전쟁 시기부터 2차대전까지의 [[미합중국 육군|미 육군]] 군복. 왼쪽부터 순서대로 [[제2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 [[미국-스페인 전쟁]], [[남북전쟁]], [[미국-멕시코 전쟁]], [[미영전쟁]], [[미국 독립 전쟁]]. [[파일:external/down.humoruniv.org/hu_1441870843_8048038674.jpg]] 마찬가지로 독립전쟁 시기부터 현대까지의 [[미합중국 육군|미 육군]] 군복. 그러나 시대가 지나갈수록 향상되는 무기들과 너무 많은 인원들을 감당할 재력도 부족해지면서 나중에는 그냥 착용자가 군인이라는 것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간소화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18세기 [[미국 독립전쟁]] 시절의 대륙 육군 제복과 19세기 [[남북전쟁]] 시절의 북군 육군 제복을 비교해보면 퀄리티에 큰 차이가 있다. 이 점은 시대별 복식의 변화로 볼 수도 있는데, 1776년대의 프록코트는 1816년 즈음엔 이미 구시대의 전통복장 취급을 받았다. [[파일:history of the americal soldiers.jpg]] 한눈에 보는 [[미합중국 육군|미 육군]] 복제의 변천사. [youtube(tIdbXI1hZxE)] 근대 부터 현대까지 한국군 육군 전투복 변천사 [[해군]]의 경우는 육군과는 양상이 조금 달랐다. [[유럽]]의 경우 중세 때까지 [[상선]]과 [[선원]]들을 전시 징발해 해군을 편성했다가 전후 소집해제하는 식의 운영이 많았던 점 등으로 군민의 구분이 한동안 불분명했던 점과 육지와는 다른 전장 환경 때문에 해군의 제복은 육상의 군복보다는 상선 선원들의 일상복에서 기원한 경우가 많다. 규격화된 제복의 등장은 당연히 중세 때까진 없다시피했고, [[대항해시대]] 이래 국제적인 교류가 잦아지면서 주로 외국 상선끼리 상호간의 신분과 계급 확인을 위해 [[상선사관]]들 위주로 네이비 블루색 [[코트]]나 소매의 [[금]][[색]] [[수장(장식)|수장]] 등 오늘날 상선사관과 해군 [[장교]]들의 정복에서 볼 수 있는 특색이 조금씩 갖춰진 것을 각 국가들의 해군에서 도입하면서 해군 군복의 표준화가 이뤄졌다. 때문에 이러한 해군 군복은 오랫동안 장교와 [[준사관]]에게만 적용됐고, 굳이 복장 통일의 필요성이 없었던 [[수병]]들은 [[함장]]이 개별적으로 사비를 들여 복장을 맞춰 주지 않는 이상 그냥 사복을 입었고, [[텔냐쉬카|흰색 바탕에 가로 줄무늬 셔츠]]를 입거나 칼라에 수건을 묶어 두르고 다니는 등의 암묵적인 유행 등으로 일반 상선 선원 및 민간인과 구분하는 정도였다. 표준화된 수병 및 [[하사관]]의 군복은 1850년대에 [[영국 해군]]이 [[세일러복]] 형태의 군복을 제정하면서 비로소 등장했다. 특히 세일러 칼라는 실용적인 면도 있어서 시끄러워 잘 들리지 않는 갑판에서 목 뒤에 세일러 깃을 세워 돌려 마치 원시적 청음기처럼 잘 듣는 용도로 쓰였고, 목에 매는 스카프는 삼각건 대용으로 쓸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세계 최강의 해군국이던 영국의 영향력으로 인해 그 복제가 전 세계 해군과 상선단에 퍼지며 오늘날 해군 정복의 뼈대를 만들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