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귀납논증 (문단 편집) === 서양철학사에서 귀납의 문제 === 서양철학사에서 귀납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이를 기점으로 소위 "절대적 진리"에 도달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몰락했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같이 "이성"을 통하여 진리를 밝힐 수 있을 거라는 신념은 서양사에서 2천년을 유지되어 왔다. 우주는 수로 쓰여졌다는 [[피타고라스]]나 수는 신의 언어라는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모두 이성과 절대적 진리에 대한 '맹목적'이란 표현이 과장이 아닌 수준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흄 이전에도 가깝게는 [[데카르트]], 멀게는 중세 프랑스 [[유명론]]에서도 거의 같은 문제의식으로 등장했었다. 다만 흄 이전의 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기독교 신이 보증해주신다." 또는 "신이 우리를 속일 이유가 없다."는 논리로 빠져나가버렸었다. 그런데 [[데이비드 흄]]의 시기가 되면 귀족 지식인 층에서는 전통 신앙에서 벗어나는 추세에 돌입한다. 계몽주의자들이 기독교 신 대신에 [[뉴턴]]의 과학적 성과에 절대적 믿음을 가지며 의존하는 일종의 신앙 갈아타기를 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와중에 '귀납의 문제' 제기가 나타난 것이다. 때문에 계몽주의자들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불가지론]], 즉 인간의 감각적 경험만(과학적 관찰이나 시험 데이타)을 통해서는 절대로 자연을 완전하게 이해하는 경지에 도달 할 수 없다(또는 도달하더라도 우리가 도달했는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 명확해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당시의 서양인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흄 본인이야 "진리따위 모르면 어때?" 하며 만족했겠지만, 기독교인으로서 지난 천년이 넘는 삶을 살아온 대부분의 서양인들에게 세상에 확실하게 의지할 만한 진리가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절망적이었을 것이고, 그래서 어떻게든지 새로운 희망을 필요로 했다. 다행히도 흄과 거의 동시대 사람인 [[임마누엘 칸트|칸트]]가 바로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선험적 종합 판단]]의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것은 이후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셸링]]에 의해서 지적 [[직관]]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이러한 분위기는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그래도 인류가 점진적으로 진리의 근사치를 찾으며 발전하고 있다 주장하며 한동안 이어졌다. 이로 인해 한동안 서양인들은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그런데 [[프리드리히 니체]]가 나타나서 지적 [[직관]]이니, [[선험적 종합 판단]]이니 모두 헛소리라고 단언한다. 온갖 철학 용어와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감추고 있지만 그 본뜻은 "내가 딱 보면 안다."라는 교조적인 주장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은 절대적 진리를 찾는 게 아니라 그저 유용한 해석, 상상물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되기 시작한다. 현대 한국인이 듣기에는 유용한 게 곧 진리인게 아닌가 싶겠지만, 서양인들에게 절대적 진리란 유용성 따위가 아니라 우주적 진리 또는 기독교의 신에 도달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즉 종교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니체는 이 점을 파고들어 절대적 진리는 소위 '이성적 인간'의 바람이 만든 미신에 불과하다고 맹비판한다. 니체 이후로 절대적 진리의 몰락은 가속되고, 오늘날 절대적 진리를 주장하는 것은 소수로 전락했다. [[불가지론]]과 [[상대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다만 순수 상대주의는 문제가 많아서 21세기에는 상대주의를 수정하는 방향으로 잡히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