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귀천상혼 (문단 편집) === [[프랑스]] === 프랑스의 경우는 법적으로 귀천상혼이 엄격하게 규정되지는 않았지만 관습적으로 귀천상혼을 피했다. 프랑스 귀족들은 결혼하기 전에 프랑스의 군주나 자기가 모시는 영주의 허가를 받았어야 했기 때문에 귀천상혼이 알아서 걸러졌다. 군주의 경우에는, 훗날 [[앙리 2세]]로 즉위하는 오를레앙 공작과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결혼이 있었다. 다만 이 때는 형인 프랑수아 왕세자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 카트린이 왕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후 앙리 2세가 즉위할 때 카트린의 신분이 문제가 되긴 했으나, 정해진 규정은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결혼으로 인정되었다. 사실 카트린 드 메디시스는 부계로는 상인의 후손이라 천대받은 메디치 가문이었지만 모계로는 엄연한 프랑스 왕족의 피를 이어받았다.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외할머니 잔느는 왕가의 방계인 [[부르봉 가문]]의 딸이었으며, 그녀의 딸 마들렌은 그당시 이탈리아에 눈독을 들이던 프랑스 왕의 뜻에 따라 교황의 조카였던 로렌초 메디치에게 시집을 갔다. 그들 사이의 딸이 바로 카트린 드 메디시스. 로렌초 메디치 또한 삼촌에게 '우르비노의 공작' 작위를 받았으며, 로렌초가 죽은 이후 우르비노는 다른 가문에게 넘어갔으나 우르비노 작위는 명목상으로 카트린에게 물려졌고 카트린은 '우르비노의 여공작' 으로써 앙리에게 시집갔다. 즉, 부계 혈통으론 귀천상혼일지 몰라도 모계 혈통으로는 모양은 어느정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앙리 3세]]의 경우 [[로렌 공국|로렌]]의 루이즈 공녀와 결혼했는데, 루이즈는 격이 낮다는 말이 간혹 나왔을 뿐이고 역시 동등결혼으로 여겨졌다. 정확히 말해 루이즈 왕비가 격이 낮다고 여겨진 건 가문과는 관계가 없었다. 통치권과 거리가 먼 로렌 공작의 차남의 딸에다가, 아버지가 두 번이나 재혼한지라 3살 많은 두 번째 새엄마 아래에서 [[신데렐라]]마냥 구박받고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감상적이고 즉흥적인 걸로 유명했던 앙리 3세가 연인 콩데 공작부인[* 직함에서 알 수 있겠지만 유부녀였다.]과의 결혼에 실패하고 결별한 후 [[폴란드-리투아니아]] [[대관식]]을 치르러 가는 길에, 가족 여행 중이던 루이즈와 잠깐 만난 후에 갑작스레 청혼한지라 원래의 신부후보들 측에서 투덜대면서 했던 말들이었다. 로렌의 경우 엄연한 통치가문으로 로렌 가문 일원들은 '''다른 나라의 왕족들과 결혼이 가능하다'''.[* 뒤에 나오지만 훗날 로렌 가문은 [[프란츠 1세]]가 [[마리아 테레지아]]와 결혼 후 [[신성 로마 제국 황제]]가 되고 [[합스부르크 가문]]의 데릴사위로 들어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숙적이자 프란츠 1세의 외가인 프랑스 왕실[* 프란츠 1세의 어머니 엘리자베트 샤를로트 도를레앙은 루이 14세의 동생인 [[필리프 1세(오를레앙)|필리프 도를레앙]]의 딸이였다. 즉, 프란츠의 외가는 프랑스의 제 2왕족이던 부르봉-오를레앙 가문이었고, 로렌 가문은 프란츠의 부모님의 결혼으로 인해 부르봉 가문과 오를레앙 가문이 단절되었을 경우 프랑스의 왕위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는 로렌을 프랑스에 할양하면서 취소되었다.]을 달래기 위해 본거지인 그 로렌을 프랑스에게 할양했지만. 격이 낮은 가문이었으면 이런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실제로 '격이 낮은' 가문은 로렌 가문이 아니라 그 분가인 기즈 가문으로, 통치가문보다 반 단계 정도 낮은 [[프린스(작위)#s-3.2.1.4|Foreign Prince]][* 왕실과 타국 통치가문보다는 낮지만 오등작보다 높고 통치가문과 결혼시에 귀천상혼 취급을 받지 않는다.] 대우를 받았다. 일례로 로렌 공작 샤를 5세[* [[얀 3세 소비에스키]]와 함께 [[제2차 빈 공방전]] 당시 [[빈(오스트리아)|빈]]을 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로렌은 신성 로마 제국의 구성국으로 로트링겐 공국으로 불리기도 했으므로 카를 5세 폰 로트링겐으로도 알려져 있다.]는 절친한 벗인 [[레오폴트 1세]]의 이복 여동생 오스트리아의 엘레오노르와 결혼했고 그 아들인 레오폴드 드 로렌 공작은 [[루이 14세]]의 조카딸 엘리자베트 샤를로트 도를레앙[* [[루이 13세]]의 차남 [[필리프 1세(오를레앙)|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1세]]의 3녀.]과, 손자인 [[프란츠 1세|프랑수아 에티앵 드 로렌]]은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와 결혼해 훗날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란츠 1세가 되었다. 이외에도 프란츠 1세의 여동생 엘리자베트 테레즈는 [[루이 15세]]나 본인의 외사촌 오를레앙 공작 루이[* 1703~1752. [[필리프 2세(오를레앙)|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2세]]의 외아들로, 고모 엘리자베트 샤를로트 도를레앙이 엘리자베트 테레즈의 어머니였다. 참고로 루이의 어머니 프랑수아즈 마리 드 부르봉은 [[루이 14세]]와 [[몽테스팡 후작부인]]의 사생아딸이다. 프랑스 [[부르봉 왕조]]계의 마지막 왕 [[루이필리프]]의 증조부이기도 하다.]와 혼담이 오갔지만, 프랑스 수상인 콩데 공작에 의해 무산된 후 [[사르데냐 왕국]]의 [[카를로 에마누엘레 3세]]와 결혼했다. 훗날 [[루이 14세]]의 경우 마담 드 맹트농과 비밀결혼을 했고, [[서자]](정확히는 [[사생아]])들에게 계승권을 주려고 시도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건 [[앙리 4세]]도 그랬다.] 귀천상혼을 '''뭔가 피해야 할 금기이긴 한데 법적으로 규정이 안 되어 있는 관습'''으로 여겼던 것 같다.[* 루이 14세와 마담 맹트농은 비밀리에 결혼했지만 공표되지 못했다. 따라서 맹트농 부인은 사적으로는 왕의 부인이었지만, 공적으로는 왕비가 아니고 그저 후작부인일 뿐이었다. 루이 14세의 아들인 왕세자 루이도 낮은 신분의 슈앵양과 비밀결혼을 했고 슈앵양도 결코 왕세자빈이 된적이 없다. 이러한 비밀결혼은 이름만 다를 뿐이지 귀천상혼과 상당히 유사한 면을 보인다.(이러한 유사성때문에 종종 마담 맹트농이 루이 14세의 귀천상혼한 부인이라고 오기되기도 한다) 즉 프랑스라고 귀천상혼에서 자유로울순 없었단 얘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