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근육소녀대 (문단 편집) == 상세 == 80년대 초반에 결성하여 80년대 후반 메이저 데뷔 이후 ~ 90년대 후반까지 활약했던 [[일본]]의 [[록밴드]]. 8~90년대 서브컬쳐계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상징적인 아이콘이다. 인디즈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과격하고 정신나간 가사로 인기가 있었으며, 상당한 골수팬을 거느린 밴드. 음악적으로는 [[프로그레시브 록]] + [[헤비메탈]] 정도로 볼 수 있으며, 여기에 오오츠키 켄지 특유의 세계가 결합된 사운드를 보여 준다. 어쨌든 밴드 사운드로써의 완성도는 상당히 높은 편. 특이한 밴드명의 유래는 오오츠키 켄지가 밝힌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1. 인디 데뷔 시 명칭은 ‹筋肉少年隊(근육소년대)›로 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2. 하지만 당시 대인기 아이돌 그룹인 ‹少年隊([[소년대]])›가 소속된 [[쟈니스 사무소]]에서 클레임이 들어오자 기각되었다. 3. 당시 오오츠키 켄지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경향도 있었다. 그래서 ‘소년’ → ‘소년소녀’ → ‘소녀’로 변화되었다. 4. 한편 隊(대)라는 한자는 불량소년 이미지가 있어서 맘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이 시기에는 여자 아이돌 그룹인 少女隊(소녀대)도 활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글자도 바꾸었다. ‹筋肉少女隊› → ‹筋肉少女'''帯'''› (같은 발음)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던 1998년. 당시 소속사의 경영난, 정신적 밸런스의 붕괴, 맴버들의 의욕 저하 등이 겹쳐 오켄은 밴드 활동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켄 본인이 훗날 회고하기를 "맴버들의 관계는 엉망이었지만 라이브 퍼포먼스 자체는 물이 올라있었다"고.] 그렇게 동년 8월의 라이브 투어를 마지막으로 활동휴식에 들어간다. 그러던 중 1999년 5월 오켄이 '''오오츠키와 우치다를 제외한 멤버를 전면교체'''하여 활동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하고, 이후 기타의 키츠타카가 탈퇴한다. 팬들은 오켄이 독단적으로 키츠타카를 짤랐다고 판단하여 맹 비난 하였고, 오켄 본인도 홈페이지에 해명의 글을 올렸으나 오히려 화를 더 불러 일으켜 오켄에 대한 인신공격만 격해졌다. 이에 정신적으로 지친 오켄도 6월에 탈퇴를 선언. 근육소녀대에는 우치다와 혼죠 두 명만이 남게 되었다. 우치다와 혼죠는 끝까지 근육소녀대라는 이름을 지키기로 결의하고, 근육소녀대는 해산이 아니라 동결이라는 형태로 휴식 기간에 들어간다. 이후 각자 솔로 활동을 하는 기간에 접어들었으나, 오켄의 밴드 '특촬'에서 서포트 형식으로 함께하던 우치다가 특촬을 나감으로써 사실상 절교 상태가 되어버린다. 10여년지기 불알친구인 둘마저 갈라서 버리자 팬들은 근육소녀대 부활이 절망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씩 서로 간의 활동을 서포트해주는 등 화해로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2006년에 '화해라이브'를 시작으로 근육소녀대가 본격적으로 재결성. 이후 현재까지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다들 나이가 들고 해서 많이 둥글둥글해진 터라 옛날의 앙금은 다 사라진 듯 하다. 대표곡으로는 [[석가(근육소녀대)|석가]], 춤추는 다메인간(踊るダメ人間), 일본 인도화 계획(日本印度化計画), 원조 타카기 부 전설(元祖高木ブー伝説) 등이 꼽힌다. [[베이시스트]]인 우치다 유이치로와 고교시절 함께 만화를 그리던 오오츠키 켄지가 함께 근육소녀대를 결성한 이래, 이 두명만 여지껏 바뀌지 않은 멤버.(대규모 멤버 교체가 5~6회 있었다) 라이브 행사 등에서 가끔씩 예전 멤버가 참여하기도 한다. 2008년 9월, 결성 14년 기념 라이브를 [[무도관]]에서 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