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군 (문단 편집) === [[한나라]] === 한나라때 금군은 우림군(羽林軍)/호분군(虎賁軍)이라는 명칭으로 중앙군을 겸했었다. 동시에 이들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은 [[대장군]], [[지휘관]]으로는 [[삼국지/관직#s-2.5|위장군(衛將軍)]]이 최고통수를 맡았고 그 예하로 [[사령관]]인 5명의 중랑장(中郞將)이 존재했다. 소위 5중랑장이라고 하여 [[삼국지/관직#s-3.2|호분중랑장(虎賁中郞將) / 우림중랑장(羽林中郞將) / 오관중랑장(五官中郎将) / 좌중랑장(左中郎将)/ 우중랑장(右中郎将)]]이 그들이다. 원래 전한때는 오관중랑장(五官中郎将) / 좌중랑장(左中郎将)/ 우중랑장(右中郎将)으로 3중랑장이었으나 증설되었다. [[후한]] 말 [[십상시]]가 [[환관]] 세력을 보위하기 위해 [[서원팔교위]]를 설치했다.[* [[삼국지]]에서는 금군의 지휘관이 대장군인 [[하진]]이었는데, 하진이 [[십상시]]에 의해 척살당한 이후 지휘체계가 붕떠버렸다. 이후 [[동탁]]이 [[낙양]]에 입성하자 [[가후]]가 동탁에게 진언하여 동탁의 병력 3,000명을 800명씩 3개조로 나눠 2400명으로 만들어 새벽에 몰래 내보낸 후 나머지 600명만으로 주둔하도록 한 뒤 아침에 1개조, 점심에 1개조, 저녁에 1개조를 각각 북을 울리며 낙양성에 입성하도록 했고, 이 3개 조는 또다시 야밤에 몰래 성 밖으로 나간 뒤 다시 입성하는 방식을 몇날 며칠동안 반복한 끝에 하진이 지휘하던 금군들을 동탁에게 항복하게 했다. 금군은 [[서량]]에서 동탁을 도와주기 위해서 계속 병력을 보내는 줄 알고 동탁에게 귀부했다. 그 금군 장수 중 한 명이 [[조조]]도 무찌르고 [[손견]]도 무찌른 [[서영(삼국지)|서영]]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