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나라 (문단 편집) == 발흥과 군사 == [include(틀:역대 중국/대만의 군사조직)] [[여진족]]은 [[발해]] 멸망(926년) 후로 한동안 만주 지역을 떠돌며 [[거란족]]에게 숨 죽인 채 지내야 했지만 거란([[요나라]])에 망조가 들자 세력을 키우기 시작하여 [[12세기]] 초 '''"1109년 [[고려의 여진 정벌]]"''' 후 부족 통일을 매듭짓게 된다. 이후 [[태종(금)|금태종]]은 [[거란]]에게 착취당하던 [[송나라]]에 러브콜을 보내 힘을 합쳐 요나라를 쓰러트릴 것을 제안했다. 송나라는 그간 자신을 괴롭혔던 요나라를 제거할 기회라고 생각해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다음 목표는 송나라될 것이라고 반대한 신하들도 있었지만 요나라를 향한 증오가 크다보니 묵살당했다. 1125년에 금은 송과 연합해 요나라를 멸망시켰다.[* 본래의 요나라는 이때 멸망했지만 요나라의 황실 일부는 서쪽으로 넘어가 [[서요]]를 세워 명맥을 이어간다.] 문제는 이후 [[북송]]의 [[휘종(송)|송휘종]]이 딴 마음을 먹고 요의 잔당들과 힘을 합쳐 배신을 한 것이었다. 이에 격노한 금이 송나라를 공격해 1년 만에 북송의 수도 [[카이펑시|개봉]]을 함락시키고 화북 일대를 정복한 [[정강의 변]]이 일어났다. 이때 송은 [[황제]]를 비롯해 상황·황후·황자·황녀가 금에 포로로 끌려갔고 송나라는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렸다. 그나마 남쪽으로 패주한 잔당들이 [[임안]](현재의 [[항저우]])을 수도로 하는 [[남송]]을 유지해 중원의 절반을 사수하게 된다. '''건국으로부터 [[화북]]을 점령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불과 12년'''으로 '''중원의 [[다크호스]]'''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태조(금)|아골타]]의 형이 [[동북 9성]]을 돌려달라고 [[고려]]에게 애원했던 때가 1109년인데, 이때부터 따져도 2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에 당시 동아시아의 두 거대 제국을 무너뜨렸다. [[고려]] 입장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공을 바치던 야인들이 순식간에 대제국을 이루었으니 매우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dfcf8f8b8c92b5da41b8569078c0c8c7.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괴자마.jpg|width=100%]]}}} || ||<-2> 금나라 철기병 복원도. || [[맹안모극제|맹안모극(猛安謀克, Miŋgan Moumugə)]]이라는 유목 민족 특유의 군사 조직이 힘을 발휘했고 두꺼운 갑옷을 입은 금나라의 [[카타프락토이|철기병]]은 매우 막강했기 때문에 20년도 안 지난 기간에 [[요나라]]와 [[북송]]을 무너뜨리고 화북을 얻을 수 있었다.[* [[만주]]에 철이 풍부해서 생산량이 많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고구려]]가 다른 2개 국가([[신라]],[[백제]])보다 영토 확장을 더 많이 할 수 있었던 것도, 비록 3번째에선 멸망했지만 동아시아 강국인 [[당나라]]를 상대로 2차례나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만주의 철광 때문이다. 현재도 선양 인근 안산-번시 일대의 철광은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다.] 특히 금나라의 초중장기병대인 '괴자마' 같은 경우 말에 2~3겹의 갑옷을 입히고 자기 자신도 갑옷을 덮었으며, 군마 3마리를 쇠사슬로 연결했다.[* 말을 쇠사슬로 연결하는 이유는 한 명이 도망치려고 해도 도망을 못치게 하겠다는 전의의 표현이었다고 한다. 실제로는 느려터진 중장기병이 투사무기에 타격당해 대열이 흐트러지는 것을 방지하려는 시도였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이렇게 할 거면 애초에 전차를 만드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오히려 저정도로 중무장시킨 말로 전차를 끌게 만들면 속도가 더욱 안나왔을 것이다. 지형 문제도 있고 속도가 느려 전차 특유의 충격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백병전에서도 위력을 장담할 수 없다. 일부 학자들은 실제로 말을 쇠사슬로 연결했을 경우 3마리 중 1마리가 전사하면 다른 2마리도 죽은 말의 시체 때문에 행동불능에 빠진다는 점을 들어, "쇠사슬로 연결했다"라는 문구는 실제로 쇠사슬로 연결한 게 아니라 단지 말 세 마리가 한 조를 이루어 일사불란하게 행동한다는 점을 비유한 문구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중세 기사들의 경우에도 돌진할 때 기수들의 무릎과 무릎이 닿을 정도류 밀집하여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는데 이 정도면 사슬로 연결했다는 비유가 나올만하다.] 1126년, 송나라의 지방관이 전공을 세울 목적으로 금나라 사신 일행을 공격했는데 '''사신을 호위하던 17명의 기병과 궁기병들에게 송나라 보병 2,000명이 패배했다는 기록'''[* 송사 三朝北盟會編 卷36, 靖康 원년 2월 조.][* [[기관총]]이 등장하는 19세기 중엽 이전까지 대부분의 전투에서 기병은 보병보다 우위를 차지했다. 예를 들어 젬블루 전투(1578년)에서는 대포와 화약을 지닌 네덜란드 독립군 2만 5천 명이 불과 1200명의 스페인 기병대의 돌격에 놀라 도망치다 무려 8천~1만 명이 전사하여 어처구니없이 패배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Gembloux_(1578)|#]]]이 있을 정도니 얼마나 용맹하고 전투에 능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거기에 [[북송]]을 공격하면서 얻은 공성 무기들과 초기 형태의 [[화약]]을 노략하고 그것을 응용하여 기상천외한 신무기들을 개발했는데 대표적으로 '''[[로켓]]의 시초'''라 할만 한 비화창(飛火槍)과 화약 작렬탄인 진천뢰(震天雷)가 금나라 때 나온 무기들이다. 그 밖에 금나라의 전쟁 관련 기록들을 알고 싶다면 아래의 링크들을 참조. [[https://cafe.naver.com/booheong/85824|여진군의 전투 방식]] [[https://cafe.naver.com/booheong/87535|무슨 여진족이 용, 호랑이, 물개, 원숭이냐?]] [[https://cafe.naver.com/booheong/88903|여진군을 창과 활로 죽이는 것은 불가하다]] [[https://cafe.naver.com/booheong/88904|철부도에는 도끼가 딱이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