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금화 (문단 편집) === [[고대]]부터 [[근대]]까지 === 고대부터 [[금]]은 귀한 광물로 인식되었기에 자연히 금이 통화가 되었다. 금은 균질(均質)로 세분이 가능하고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으며, 또한 그 아름다움 때문에 고대로부터 모든 사람의 소유욕을 자극하였다는 등의 이유에서 화폐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금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화폐로서의 금은 이미 기원전 20세기 경에 [[고대 이집트]]·[[바빌로니아]]에서 사용되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img.khan.co.kr/20091118.01100126000001.01M.jpg|width=100%]]}}} || || 현재까지 발굴된 가장 오래된 금화인 "[[리디아 금화|리디아의 사자]]" || 그러나 주조화폐로서의 금화는 기원전 7세기 경에 [[소아시아]] [[리디아]]에서 처음으로 주조된 것. 그 후 [[고대 그리스]]의 각 도시, 남(南) [[이탈리아]], 소(小) 아시아 방면으로 전파되어 갔으며, 이 시기에 유행한 금화가 탈렌트([[달란트]])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res.heraldm.com/20140928000172_0.jpg]]}}} || || [[아우구스투스]]의 초상화가 새겨진 [[고대 로마]]의 금화. || 이후 [[로마 제국]]에서도 4세기에 들어서 [[콘스탄티누스 1세]] 때 주조된 [[솔리두스]](solidus)는 질이 좋아 넓은 지역에 걸쳐 사용되었고, 1,000년 이상이나 유통되었다. [[이슬람]]권에서도 솔리두스에 상응하는 금화 [[디나르]]를 널리 사용하였다. 유럽에서는 13세기 이후 [[피렌체]]에서 주조된 [[피오리노]](영어로는 [[플로린]](florin)), [[베네치아]]의 [[두카트]](ducat), 1489년 [[영국]] [[헨리 7세]] 때 만들어진 1파운드 금화인 [[소브린]](sovereign) 등, 금화는 이탈리아·영국·[[프랑스]] 등 유럽 각지에서 근대적인 통화로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119699864_1476235476006_title0h.jpg|width=100%]]}}} || || [[폐제(전한)|해혼후]]의 무덤에서 출토된 [[전한]]의 금화. || [[중국]]에서는 기원전 5세기 무렵 [[춘추시대]] 말기부터 금화가 등장하였데 현존하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조금화는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에서 쓰던 영원(郢爰)금화이다. [[폐제(전한)|해혼후]]의 무덤에서 [[전한]]시기에 만들어진 수백 kg이 넘는 4가지 종류의 금화가 발견되기도 하였는데 이중 가장 흔한 형태는 금병(金餠)이라 불리우는 동그란 형태의 금화였고 기린의 발을 본뜬 인지금과 말발굽을 본뜬 마제금, 금판 등도 발견되었다. 오랫동안 중국에서 화폐의 주역은 동전이었고[* 소액권인 동전이 널리 보급 되어 중국은 유럽과 비교하여 농민들의 시장참여가 활발하였다.] 금화는 주택의 매매등 고액거래에 이용되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japan.antique-coin.info/643640-300x248.jpg|width=100%]]}}} || || 오반(大判) || 한편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 즈음에 코반(小判)이나 오반(大判)이라는 금화를 만들었는데 이 금화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길쭉한 타원 모양이다.[* [[포켓몬스터]]의 [[나옹]]의 이마에 붙어있는 금화가 한국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금화의 모양과 달리 무슨 길쭉한 번데기처럼 생겼는데, 이는 일본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금화의 모습이 이렇기 때문.] 코반은 1[[냥]](당시에는 15g 전후), 오반은 10냥에 해당한다. 그 외에도 1/2냥의 니부반(二分判), 1/4냥의 이치부반(一分判), 1/8냥의 니슈반(二朱判), 1/16냥의 잇슈반(一分判) 등도 있었다. 니부반 이하는 에도 시대 후기로 가면 은화로 나오기도 했다. 한국에서 [[오방떡]]으로 불리는 오반야키(大判焼き) 이름의 유래이기도 한데, 정작 오방떡/오반야키는 그냥 동그란 원형이고 오히려 한국의 [[계란빵]]이 오반 형태에 가깝다. 19세기에 들어서 각국이 [[금본위제도]]를 채용한 결과 금화는 유일한 본위화폐로서의 위치를 확립하였다. 한국의 경우에도 금화가 주조되었는데, 1882년([[고종(대한제국)|고종]] 19) 금화와 은화의 통용이 결정되어 1888년 주조·유통을 시도한 바 있다. 그 뒤, 이러한 금화의 전성시대는 세계적으로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종말을 고하였다. 모든 나라가 금본위제를 지양하여 금화를 정부가 흡수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대전 종료 후의 금본위제 복귀도 사실은 금지금본위제의 채용으로 볼 수 있으며, 금화는 사실상 통화로서의 유통이 중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