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급식 (문단 편집) == 역사 ==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존재하는 급식 관련 자료들 중 가장 오래된 최초의 급식은 1870년 영국에서 존재하였으며, 오늘날과 같이 체계적으로 제공되는 급식은 1944년 등장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산업 혁명]] 이후 저소득층의 식사 식단이 상당히 부실해지자 성장기 어린이들이 영양 공급이 부실해지니 자연히 성장이나 발육이 정상적으로 될 리가 없었다. 그 결과 [[보어 전쟁]] 당시 [[육군]] 신체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늘어나자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 영국 정부가 아이들의 영양 상태를 개선하고자 급식을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급식의 시초가 된 것이다. 그나마도 초창기 중앙정부에서 통제하던 시절에는 [[우유]] 전면 무료 제공 등의 엄격한 최소기준이 갖추어져 있었고, 영양사를 체계적인 기준 하에 배치하여서 [[영국 요리/악명|영국적이지 않게]] '''영양학적으로도 잘 설계된 급식을 제공했다고 한다.'''[* 참고로 학교당 한명의 영양사를 배정하여 모든 학교들이 각각 영양사를 한명씩 배치하도록 하는것이 의무인 현대 한국의 학교 급식제도와는 달리, 이 시기 영국의 학교 급식제도에서 영양사는 학교당 한명씩이 아닌 '''지역당 한명'''씩 배치되었다. 그러다보니 한명의 영양사가 여러 학교를 동시에 관리해야 했기 때문에 각각의 학교에서 제공되는 급식의 질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후술할 대처 시절에는 그 안좋은 질마저도 아예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나마 영양사라도 있던 이 시절이 상대적으로 더 나았다.] [[윈스턴 처칠]]의 명언으로 유명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투자는 아이들에게 우유를 마시게 하는 것이다.'라는 말도 이때 나왔다. 이때는 저녁식사로 제공되었고 이후 아동들의 학업 시간 관련 규제가 만들어지면서[* 같은 맥락으로 [[미성년자]]들의 방송 활동 시간 제한 등의 규제도 만들어졌다.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제작 속도가 미적지근한건 이 때문이다.] 점심으로 옮겨져 왔다. 그러나 1980년 [[마거릿 대처]] 수상의 집권 시기에, 급식에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급식 제도를 [[지방자치|지방 정부]]의 완전 자율에 맡기기로 결정하면서 [[영국 급식]]은 오늘날 우리가 잘 아는 '''막장 오브 막장'''이 되어버렸다. 영국의 의학 연구 위원회(Medical Research Council)가 1999년에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대처 수상이 집권한 1980년 이후 급식을 제공받은 아이들의 건강 상태가 집권 이전인 1980년 이전 급식을 제공받은 아이들의 건강 상태보다 훨씬 더 나빴다고.[* [[http://www.educationengland.org.uk/articles/22food.html|Food for Thought: child nutrition, the school dinner and the food industry]](영어)] 이 사건의 특이한 점들 중 하나는 다름아닌 이 정책을 펼친 당사자인 대처가 그동안 어떤 비난을 듣더라도 무시하고 자신의 고집을 강행했던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에 걸맞지 않게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던 몇 안되는 정책이라는 점인데, 대처가 이 정책을 밀어붙였을 때 반대파인 진보 진영은 늘 그렇듯 대처를 비난했지만 의외로 대처와 같은 진영인 보수 진영에서도 대처의 결정에 반발하여 [[위 아 더 월드|좌우를 안 가리고 모두가 입을 모아]] 대처를 비난할 정도로 [[마거릿 대처#s-5.2.2|심각한 논란]]을 불어일으킨 정책이였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을 비롯한 유럽인들에게 있어서 우유는 [[소울 푸드|삶의 일부나 다름없는 중요한 음식]]인데, 그래도 어른들의 우유 섭취를 제한하는 거야 그렇다고 쳐도 아이들의 우유 섭취를 제한하는 행위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다 큰 어른이 애들을 상대로 폭력(공권력)을 내세워서 삥뜯는''' 몹시 치사하고 졸렬한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당시 대처에게는 '우유 도둑(Milk snatcher)'이라는 굴욕적인 별명이 붙었으며 대처도 이 일을 후회해서 이후 보수 진영에서 우유 이야기는 한동안 금지어 취급을 받기도 했다. 한편 영국의 문화를 거의 그대로 물려받은 [[미국 급식]] 역시 1900년경부터 급식 시스템이 존재해왔으나, 미국 특유의 '[[자유주의]] 정책' 덕분에 규정은 있으나 잘 안 지켜진 덕분에 영국과 큰 차이가 없는 막장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그나마 [[2009년]]을 기점으로 미국 내 급식 제도에 관한 문제점들을 지적한 연구 결과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국가가 직접 개선한 덕분에 어느 정도 좋게 바뀌긴 했다. 그러나 국가의 간섭을 혐오하는 미국인들의 반발에 부딫혀서 그닥 잘 풀리지는 않는 상황. [[유럽]] 국가들의 경우 사실상 영국에서 __처음에 나왔던__ 급식의 '초심'을 비교적 잘 지키고 있는 편이다. 의무적으로 급식에 과일을 얼마 정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등 비교적 '영양'과 '맛'의 중도를 잘 추구하고 있는 편이다. 이는 [[일본]] 급식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는 6.25 전쟁 직후부터 외국의 원조와 혼분식 정책의 영향으로 국민학교에서 급식을 하기는 했지만 주메뉴는 빵과 우유 등 간식류였기 때문에 본격적인 급식제도라고 보기에는 뭐한 수준이고[*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선호도는 높았다고 한다.] 1980년대에는 남아도는 우유를 초등학교에 싼 가격으로 제공하기도 했다. 전면급식이 도입된 것은 초등학교 1996년 ~1997년, 고등학교 1999년 ~ 2001년, 중학교 2001년 ~ 2003년 이다.[* 물론 중고등학교의 경우 초창기에는 학교마다 천차 만별이였다. 그리고 말이 전면급식이지 실제로는 급식이 실시되지 않는 곳도 많았다.] 그 이전에는 [[도시락]]을 지참해서 먹는 것이 일반적인 풍경이었고, 경제적으로 빈곤층이 많았던 1980년대까지는 부모가 도시락을 싸줄 여력이 안되어서 굶거나 물로 배채우는 애들도 심심치않게 볼 수 있었다. 체계적인 급식 제도가 비교적 늦게 도입된 편이지만 법률에 따라[* '''「학교급식법」 제7조(영양교사의 배치 등)''' ①제6조의 규정에 따라 학교급식을 위한 시설과 설비를 갖춘 학교는 「초ㆍ중등교육법」 제21조제2항의 규정에 따른 [[영양사|영양교사]]와 「식품위생법」 제53조제1항에 따른 조리사를 둔다.] 학교별로 [[영양사]]를 무조건 배치해야 하기 때문에, 맛과는 별개로 '''영양학적인 측면으로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다만 평균적인 한국인의 필요 영양소 통계에 근거를 두어 식단을 짜는 것이라, 당연히 개인별 발육 상태나 운동량 등에 따른 변수는 감안하지 않는다.] 물론 여타 국가에서도 급식 영양사는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학교별로 이렇게 하나하나 영양사가 배치된 경우는 많지 않다고. 보통 한 지역별로 영양사들을 배정해서 해당 지역의 학교들이 심하면 영양사 한 명에게 몰려가 자문을 받는 수준이다. 자세한 건 [[한국 급식]] 문서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