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모노 (문단 편집) === [[에도 시대]] === [[파일:external/noah-tips.com/%E6%B1%9F%E6%88%B8%E6%99%82%E4%BB%A3-270x300.jpg]] 에도 시대는 [[쵸닌]]이 성장하고 새로운 문화 예술이 발달하였다. 특히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복식 문화를 창시했다. 평소에는 하카마를 생략하고 고소데 위에 하오리를 걸쳤으며, 오늘날 일본 남자 전통 복식의 기본 차림인 고소데형 나가기와 재킷형 하오리 차림이 되었다. 복식을 통한 계급 간의 구별이 흐릿해지면서 새로운 유행의 주체가 되었는데, 초기에는 겉멋을 살린 미의식이 발달했지만 에도 막부의 잦은 금령으로 '이키'의 미의식이 발달하게 된다. 이키는 화려함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하며 색상의 절제, 수수함 속에 화려함이 보이도록 하는 착장법을 성행시켰는데 18세기로 가면 이러한 세련미가 멋부림과 희화로 발전하면서 진지한 것을 야보라 멸시하는 성향이 생기게 된다. 에도 시대 왕족과 귀족 계통의 복식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소쿠타이, 이칸, 스이칸이었고 서민과 무가의 복식은 하타타레, 다이몬, 스오우는 물론 가미시모, 하오리, 하카마 등이 생겨난다. 에도 시대 무사의 대표적인 예복은 가미시모였다. 가타기누와 하카마를 같은 천으로 만든 한 벌 옷으로 어깨가 과장되게 확장, 어깨에 주름장식이나 고래수염으로 一자 모양이 되었다. 예복용 가미시모는 옷감의 종류와 색상에 제약이 있었기에, 짙은 색으로 염색한 민무늬 마직물로 만들었으며 가타기누의 등과 양쪽가 슴, 하카마의 뒤 허리에 가몬을 새겼다. 일부 다이묘나 쇼군 중에는 금란과 같은 고급 옷감을 사용하기도 했다. 평상시에는 가몬만을 넣은 단색 고소데로 정식 차림에서는 허리만 다른 색, 줄무늬나 격자무늬를 짜 넣은 고소데인 노시메를 입었다. 하카마는나가바카마(정식예복) , 한바카마(무사와 서민예복, 서민의 혼례복)로 분화되었으며 가타기누와 하카마를 다른 천으로 만든 무사의 약식예복, 근무복인 츠키카미시모가 개발되었다. 하카마가 매우 발달한 시기이기도 했다. 에도 시대 초기에는 무사의 평상복이었지만 고소데 차림이 일반화되면서 예복이 되었다. 초기에는 옷감 네 폭을 연결한 단순한 형태였지만 에도 시대 이후 바지 폭이 길어지고 허리띠는 가늘어지게 된다. 또 요판이 등 뒤에 생기면서 현재의 하카마 형태가 되었다. 허리의 앞과 뒤가 옆선에서 분리, 뒤판이 앞판보다 높으며 착용 후에는 뒷부분이 위로 솟게 된다. 밑이 길고 여유가 많으며, 견직물이나 줄무늬 면직물, 상인용으로는 히라바카마(平袴)가 사용되었다. 히라바카마를 승마에 적합하도록 밑 위를 짧게 변형한 것을 우마노리바카마(馬乘袴)라 불렀으며 히라바카마 형태, 바짓부리에 검정 벨벳 선장식, 여행이나 위급한 상황에 착용한 노바카마(野袴)도 있었다. 위는 넉넉하고 아래는 좁은 형태로 눈이 많은 지방에서 방한 및 작업용 바지로 사용하던 카루상(軽衫)이라는 옷도 있었다. 남만풍의 영향으로 포르투갈 사람들이 입던 칼쏜을 차용했는데, 활동성과 편리함 때문에 무사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새로운 예복으로는 하오리가 생겼다. 하오리는 고소데 위에 오비 없이 덧입는 재킷형의 짧은 상의로 도우부쿠에서 유래한 것으로, 초기에는 무사들의 간편한 덧옷이었지만 쵸닌이 즐겨 입게 되면서 시민 계급의 남자 예복으로 변했다. 하오리 · 하카마 차림은 점차 가미시모 다음가는 통상예복으로 사용되었으며, 하오리의 길이가 짧아졌다 길어졌다를 반복하며 유행하였다. 중기 이후에는 가몬을 새기는 풍습이 생겨 정식으로 5개, 중류이하 신분은 뒤 중심 위쪽에 1개씩 달았고 초기에 색상과 형태 다양, 화려한 장식이었지만, 점차 예복이 되면서 색과 무늬가 수수하게 변해 18세기 전반부터 검정 바탕에 흰색 가몬이 정식 예복이 되었다. 기타로 무늬 없는 단색, 섬세한 잔무늬, 줄무늬는 약식예복으로도 사용되었다. • 하오리히모 : 하오리 좌우 깃을 연결하는 장식적인 매듭 끈 • 진바오리 : 전쟁시 입은 소매없는 야외행사용 무사들의 예장 • 붓사키바오리 : 칼을 차거나 말을 탈태 적합하도록 허리부터 등솔기에 트임. 약식으로 착용 • 카자이바오리 : 붓사키바오리 일종. 뒤중심에 트임. 잘 타지 않는 가죽이나 라사를 소재 실용성을 겸비한 겉옷이 발전하였다. 먼저 가빠는 [[스페인어]] 카파(capa)에서 유래된 것으로, 근세 초기 스페인 선교사들의 망토를 모방해서 만든 것이다. 망토형, 재킷형으로 스탠드 형태의 깃에 갈고리 단추의 일종인 고하제나 고리단추로 실용성과 장식성을 띄었다. 하급 무사는 종이에 기름먹인 붉은색 가빠였고 일반인은 여행용으로 견이나 무명으로 짠 가스리로 만든 가빠를 썼다. 여기서 직조 전에 원하는 무늬에 맞게 방염한후 실로 무늬를 짠 직물인 가스리가 개발되었다. 넓은 소매가 달린 품이 넉넉한 겉옷으로, 가빠와 하오리를 혼합한 형태인 히후가 나타났다. 18세기 초, 예능에 종사하는 특수한 계층에 사용되었는데, 19세기 초엽에 검정벨벳으로 깃을 만들고 금사 매듭장식을 한 면 지지미로 만든 히후가 쵸닌계급 사이에 유행한 것이 후에는 지방 세력가나 무사의 후실, 출가한 부녀자도 착용하게 된다. [[메이지 유신]] 시대, 면지지미나 비단의 긴소매 히후는 부녀자의 예복, 조끼형태는 아동용이 되었고 오늘날, 여자들의 방한용 외투로 사용되고 있다. 홑으로 만든 실용적 외투. 무가의 고용인이나 가마꾼, 상점의 종업원이나 직인들이 착용하는 핫피도 있었다. 방한용 외투로는 도테라와 탄젠이 생겼다. 도테라(褞袍)는 평상시에 방한용으로 덧입는 외투의 일종으로 고소데와 비슷하다. 크고 여유가 있으며 넓은 소매폭이 특징이다. 안쪽에 솜을 넣고. 간감과 수구, 깃 부분에 검은 색의 배색인데, 간혹 가빠 대신 착용했다. 매 사냥꾼이나 장인의 우두머리들은 유카다 위에 도테라만 입고 외출하기도 했다. 탄젠(丹前)은 도테라와 비슷한 것으로, 솜을 넣고, 군데군데 징거서 만든 외투의 일종이다. 탄젠저택 앞 온천 여관에서 유래되었는데, 화려한 줄무늬 천을 성글게 누빈 풍성한 외투를 넓은 허리띠로 느슨하게 묶은 차림을 탄젠풍이라고 했다. 평상복인 고소데는 남자와 여자가 달랐다. 남자 고소데는 좁은소매의 긴 포 형태로 나가기라 불렀으며, 일반 서민의 평상복이었다. 무가 남자는 사적인 경우에만 고소데 착용했고, 외출이나 예복차림엔 하카마를 덧입었다. 쵸닌 문화가 발달하면서 무사들의 평상복으로 고소데 위에 하오리 차림이 되었다. 겨드랑이 트임이 없고 소매 안쪽도 막힌 형태였으며, 소박한 색과 잔잔한 무늬를 선호했다. 반면에 여자 고소데는 소매와 오비 형태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화려함을 선호했다. 헤어스타일도 다양하게 나온다. 먼저 간무리시타(冠下)는 이마를 밀지 않고 그대로 묶은 머리형으로, 관이나 에보시를 착용하던 공가 복식에서 유래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특수 계층만 즐기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촌마게]](下髷)를 많이 했는데, 무사, 서민들은 정수리와 이마를 반달모양으로 밀고, 남은 머리를 위로 묶는 일본 고유의 상투머리로 반달모양으로 밀어준 부분 때문에 사카야키(月代)라고도 했다. 관을 쓸 때 머리카락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앞머리를 밀어준 풍습에서 시작되었는데, 전국시대 무사들 사이에 유행하였으며 이 시대 남성의 일반적인 머리형에서 에도 시대에는 상투를 감거나 올리는 다양한 방식이 개발된다. [[에도 시대]] 여자 복식의 기본은 고소데였다. 무가의 신분 상승으로 서민과 차별화된 차림새를 추구했는데, 귀족 공가의 전통적인 가사네기 방법인 고소데를 여러 벌 겹쳐있는 차림새가 등장하였다. 이 옷들은 우치카케, 아이기, 시타기 등으로 발전했다. 신분에 따른 규제로 쵸닌과 서민의 예복으로 세벌의 고소데를 겹쳐입는 삼마이가사네가 나타났다. 에도 시대 여성복은 중기 이후 더욱 장식적으로 발전하면서 화려한 복식을 선호하게 된다. 본래 고소데는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남녀 모두 비슷했지만, 에도 시대부터 남녀 복식에 차이가 생긴다. 여자 고소데가 변화한 탓인데, 소매길이와 옷길이가 길어져 옷자락은 발등을 덮고 외출시엔 넓은 허리때로 고정하는 가카에오비가 생겼다.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몸통이 넓고 소매는 짧아 활동이 불편했던 것에서 개정 후 몸에 잘 맞는 형태로 변했다. 소매통은 넓어지고 진동은 줄어 소매에 후리가 있는 현대 고소데와 비슷해졌다. [[에도 시대]] 초기 소매는 짧은 소매길이와 넓은 소매너비에 둥근배래의 ‘나기소데’였고, 겐로쿠 말경에 오늘날의 사각형의 넓고 긴 모양이 일반화되었다. 미혼 여자들은 긴 [[후리소데]]를 입었고 기혼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짧은 [[토메소데]]를 입었는데, 이게 현대 내려오는 여성용 기모노다. 여자 기모노의 겨드랑이 아래쪽과 소매 안쪽에 트임이 생긴 게 여자 고소데의 특징으로, 미혼 여성과 신부는 넓은소매의 후리소데, 기혼은 소매의 늘어진 부분이 짧은 고소데르 입었다. 결혼 후엔 미혼의 상징인 후리소데의 긴 소매를 자르는 수류(袖留), 즉 소데토메 의식을 했으며 오늘날 기혼 여성의 짧은 소매 기모노를 ‘도메소데’ 라 부르는것은 과거 혼인 풍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비(帶)는 여밈을 단정하게 고정할 때 사용하던 것으로, 초기엔 끈 형태였다.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는 조선의 끈목기술로 실을 엮어 짠 나고야오비를 사용했다. 특히 여성의 오비는 좁은 끈 형태에서 장식성이 강화되면서 넓은 오비가 유행했다. 옷감의 종류도 비단에서 벨벳까지 다양, 자수나 홀치기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초기에는 앞에서 묶었으나, 점차 옆이나 뒤로 묶는 방법 선호하게 되었다. 형태는 분코무스비(리본 모양), 오타이코무스비(현재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나누어진다. 오비도메라고 해서 넓어진 오비를 고정하기 위해 다른 끈을 착용하기도 했다. [[오오쿠]]는 무가와 귀족풍이 어우러져 독자적인 양식을 띄었다. 오오쿠는 신분, 장소, 계절에 따라 엄격한 규정이 있었는다. 기본적으로 우치카케와 고소데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고소데는 장식이 많고 겉옷으로 사용되는 아이기와 같으나 밑받침 옷 역할의 시타기로 나누어졌다. 같은 형태의 옷을 여러 벌 겹쳐입는 무가 여성의 예복은 공가의 가사네기 전통에서 유래되었다. 이 중 가장 위에 덧입던 장식적인 고소데가 발전한 게 우치카케였다. 우치카케는 에도 시대 중기 고소데보다 길게 하고 밑단에 솜을 넣어 퍼지도록 만들어 장중함과 무게감을 표현했다. 옷의 특성상 여밈이 없어 걸 을때 옷의 아랫단을 잡아야 하므로 가이도리라고도 했다. 우치카케는 도메소데와 후리소데(미혼여성의 예장)로 나누어졌다. 본래는 무가 상류층 여성 예복이었지만 공가 귀부인의 평상복, 외출복이 되었고 후대에는 쵸닌 가문의 혼례복, 유녀의 외출복이 되면서 신분을 상징하는 의미가 사라지게 된다. 아이기는 우치카케의 받침옷 또는 우치카케 대신의 겉옷으로 다양한 색과 무늬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겨울엔 시타기 위에 우아기를 입고 우치카케를 걸쳤으며 여름엔 아이기와 시타기를 입고 얇은 우치카게를 끌리도록 허리에 감아입어 고시마키라고 했다. 이 예장의 구성인 우치카케, 아이기, 시타기는 모두 고소데에서 분화, 발전된 것이었다. 에도 시대 후기 쵸닌 가문 여성의 혼례복은 우치카케의 색상에 따라 시로무쿠와 이로우치카케로 나누어졌다. 시로무쿠는 겉옷, 속옷, 기타 부속품 모두 흰색 착용했지만 우치카케의 안감은 길사를 상징하는 붉은색이었다. 혼인 후 사흘째에는 다시 화려하게 장식된 고소데와 함께 붉은색의 이로우치카케로 갈아입는 ‘오이로나오시’라는 행사를 치렀는데, 성스러운 식을 마치고 세속의 생활로 돌아가 보통의 생활을 시작한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붉은색은 행복과 행운을 상징했다. [[유카타]]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시대이기도 했다. 유카타는 본래 ‘유가타비라’, 목욕시 홑겹의 포를 입었던 공가와 궁중의 풍습에서 유래된 옷이다. 전국시대에서 에도 시대 초기, 밤새도록 가무를 즐기는 본오도리 축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화려하게 염색한 유가타를 입기 시작하면서부터 민간에 유행하게 되었다. 겐로쿠(1688~1704)무렵 온천지역을 중심으로 면, 마, 지지미 등으로 만든 간편한 유가타를 선호하게 되었는데, 홑겹의 유가타는 세탁이 쉽고 입기 편한 장점으로 비 올 때는 ‘가빠’ 대신 사용했다. 에도 시대 말기로 가면 고소데 대신 서민들의 여름철 평상복이 되었다. 원래 흰색 면, 마를 사용했으나 점차 여름철 평상복이나 외출복이 되면서 염색이나 무늬를 짠 옷감이 선호되었다. 헤어스타일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에도 시대 이전의 여자 머리는 끈으로 묶어나 머리다발로 고리를 만든 후 나머지를 늘어뜨린 것이었다. 에도 시대로 가면 다양하게 틀어올린 머리가 유행했다. – 가라와 : 둥근 고리를 2~4개 만들고 여분의 머리를 뿌리부분에 감아 고정 – 효고마게 : 가라와를 변형 – 시마다마게 : 에도시대를 대표하는 여자의 머리모양 ≫ 남성의 분킨마게에서 유래 또는 시마다지방의 유녀들이 고안 ≫ 분킨시마다 : 신부의 머리형으로 시마다마게의 일종 • 상류 무가계급이나 왕실에서는 최고 의례복을 착용시 머리를 풀어 길게 늘어뜨림. • 금령에도 불구하고 에도말 메이지초기에는 300여종류의 머리형태 – 토로빈처럼 크게 올린 머리가 유행하면서 머리장신구도 거대 – 쿠시(장식용 빗)와 고가이(비녀의 일종)는 중요 장식품 여성용 모자도 유행했다. 여성의 모자를 쓰는 풍습은 [[무로마치 막부]] 시대부터 등장했는데, 나이 든 여자들의 방한용에서 점차 젊은 여자 사이에도 다양한 모자가 유행하게 되었다. 외출 시 정장 차림에 또는 실내에서도 면모자, 양모자, 연모자 등을 착용했다. • 쯔노카쿠시 : 신부용 쓰개, 양모자의 일종으로 장방형 천을 머리에 두른 간단한 형태 • 와타보우시 : 신부용 모자로 명주솜을 넣어 만듬. • 와리보우시 : 정련된 흰색의 부드러운 비단으로 만든 것으로, 안감은 주술적 의미의 붉은색 에도 시대 화장법은 매우 다양하고 계급, 직업, 연령, 지방, 계절, 장소에 따라 복잡했다. 소박한 에도 고유의 화장법과 궁궐이 있는 교토에서 비롯된 농염한 화장법으로 나누어졌다. • 기와(際) 풍습 – 얼굴 가장자리의 머리카락이나 눈썹을 뽑거나 다듬는 풍습 – 얼굴이 작은 경우 이마를 면도하고, 얼굴이 큰 경우 묵을 사용 – 눈썹과 머리카락을 제거하고 백분으로 짙은 화장을 한 후 윤곽선과 눈썹을 그림 – 눈썹을 그리는 풍습은 중국 당의 화장을 모방 – 대형미 · 안입미(10~14세의 굵은 눈썹), 청미(결혼직후나 임신후), 당미(중년의 작은눈썹), 사미(노년의 가는눈썹) – 미작어면 : 공경중 나이들면 눈썹손질을 하지 않음. 이외에도 [[오하구로]](お歯黒)라고 하여 철장(철조각으로 만든 액체)으로 이빨을 검게 물들이는 심미적, 실용적 풍습이 생겨났다. 이 풍습은 [[쇼켄 황후]]가 서양풍을 받아들이고 그만둔 것을 기점으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