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획재정부 (문단 편집) == 역사 == ||<-4> {{{#fff '''기획재정부 상징의 변천사'''}}} || ||<-1> [[파일:재정경제부 MI(1998-2006)_상하.svg|width=100%]] ||<-1> [[파일:재정경제부 MI(2006-2008).svg|width=100%]] ||<-1> [[파일:기획재정부 MI(2008-2016).svg|width=100%]] ||<-1> [[파일:기획재정부 MI_상하.svg|width=100%]] || || '''1998.02 ~ [br]2006.07''' || '''2006.07 ~ [br]2008.02''' || '''2008.02 ~ [br]2016.03'''[* [[모두의마블 온라인]]에 있는 경제야 놀자의 기획재정부 로고가 여기서 멈춰있다.] || '''2016.03 ~ [br]현재''' || ||<-5> {{{#fff '''기획예산처 상징의 변천사'''}}} || ||<-2> [[파일:기획예산처 MI(1999-2005).svg|width=100%]] ||<-2> [[파일:기획예산처 MI_좌우.svg|width=100%]] || ||<-2> '''1999.05 ~ 2005.06''' ||<-2> '''2005.06 ~ 2008.02'''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2> {{{#black 재무부}}} || ||<-2> {{{#fff ↓}}} || || {{{#black 재무부}}} || [[경제기획원|{{{#black 경제기획원}}}]] || ||<-2> {{{#fff ↓}}} || ||<-2> {{{#black 재정경제원}}} || || {{{#fff ↓}}} || {{{#fff ↓}}} || ||<|3> {{{#black 재정경제부}}}[* 1998년 2월부터 1999년 5월까지 무려 5개의 외청(예산청, 국세청, 관세청, 조달청, 통계청)을 두기도 했는데, 정부 수립 이후 현재까지 5개 외청을 둔 경우는 이 사례 외에는 전무하다. 당시에는 복수차관제(2005년 도입)가 없던 시기였음까지 감안하면 재정경제부의 위엄을 알 수 있다. 다만, 당시에는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81&aid=0000052692|통계청장이]] [[http://www.dtnews24.com/news/article.html?no=243197|차관급이 아닌 1급]]이었고, 예산청 외에도 장관급 위원장이 지휘하는 [[http://news.joins.com/article/3604121|대통령 직속의 기획예산위원회]]라는 기관이 따로 있었다.] || {{{#black 예산청}}} || || {{{#fff ↓}}} || || {{{#black 기획예산처}}} || ||<-2> {{{#fff ↓}}} || ||<-2> '''{{{#black 기획재정부}}}''' ||}}}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성립된 군사정부가 [[경제기획원]]을 설립하였고 이후 [[노태우 정부]]까지 경제기획원이 중앙예산기관을 맡고 재무부가 국고수지총괄기관을 담당하였다. [[1994년]] [[문민정부]]는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을 재정경제원으로 통합하였다.[* 하지만 한동안 부처 내 재무부 출신 관료와 경제기획원 출신 관료 간 갈등이 있었다. 이는 舊 재무부의 업무 스타일과 舊 경제기획원의 업무 스타일이 달랐던 데에 기인한다. 재무부는 주어진 일처리를 숫자 하나 틀리지 않고 척척 해내야 하는 재무행정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분위기였던 반면, 경제기획원은 경제정책을 기획하는 일을 맡았고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업무 특성상 상대적으로 개방적, 혁신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https://m.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118031008|#]] 합쳐진 지 20년 가까이 되어가는 [[2010년대]]에 와서는 적응이 되었다.][* [[강만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의 회고록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을 인용하자면 재무부는 돈을 버는 부서(세입 담당)이고 경제기획원은 돈을 쓰는 부서(세출 담당)인데 이를 합쳐 놓으니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는 재정경제원을 다시 기획예산처(중앙예산기관)와 재정경제부(국고수지총괄기관)로 분리시켜 기획예산처를 대통령 소속으로 하려 했으나 야당의 반대로 국무총리 소속으로 기획예산처를 운용하였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정부조직법 개편으로 그 이전의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의 재정 부분을 통합하여 '''기획재정부'''가 설립되었다. 재정경제부의 무역 관련 부문은 산업자원부와 합쳐서 [[지식경제부]]가 되었다가 [[2013년]] [[산업통상자원부]]로 이름이 바뀌었고, 금융 부문은 [[금융감독위원회]]와 합쳐서 [[금융위원회]]가 되었다. 2013년 1월 [[박근혜]]의 [[정부조직법]] 개편안으로 인해 기획재정부 장관이 부총리를 다시금 겸임하고 있다.[* 1963년 경제기획원 장관이 부총리를 겸임하기 시작한 이후 이명박 정권기(2008년~2013년)에만 유일하게 부총리제를 적용하지 않았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남덕우]], [[김만제]] 등 경제학자 출신들이 관료 출신 이상으로 경제기획원 등 경제 부처 수장에 다수 임명되었으나, 민주화 이후에는 절대 다수가 관료 출신이고 대부분이 행정고등고시 출신이다. 1986년 이전까지는 광화문 광장의 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청사로 활용했다. 광화문에 위치한 재무부/경제기획원 전(前)청사는 1961년 국가재건위원회 본회가 있었던 건물로 국가재건위원회가 해체한 후에 앞에 서술한 대로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본청사로 쓰였다가 1986년부터 문화부가 들어오게 되면서 2010년까지 문체부 독립청사로 사용되었다. 또한 이 청사와 나란히 지어진 [[주한미국대사관]] 건물 두 동 모두 미국대외원조기관 USOM/USAID(미국 국제개발청)의 자금지원을 통해 미국의 태평양 건축 엔지니어(PA&E)와 빈넬(Vinnel)사가 주체가 되어 지은 것이며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맡은 인물은 당시 빈넬사의 주임기사였던 [[이용재]](李龍在·1897년~1974년)이다.[* 미국 회사인 빈넬社에 소속돼있던 이용재가 중책을 맡았다는 의미이며, 출처3에서 중책이라는 사실을 다소 부정하여 약간의 논란이 있지만 빈넬사 소속의 이용재가 시공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28&aid=0002065993|출처]][[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2/18/2009121801142.html|출처2]][[http://www.chpri.org/board/content.asp?bCat=%B1%D9%B4%EB%B9%AE%C8%AD%C0%AF%BB%EA&bCode=8725|출처3]]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