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길영아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부산 출신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배드민턴에 입문해 [[데레사여자고등학교]] 출신으로 고교생 시절 떠오르는 스타로 주목받아 일찍부터 국가대표가 되었다. 국가대표로 초년 시절 활약했는데, 아무래도 대표팀의 에이스보다는 그 뒤를 받치는 백업에 더 가까웠다. 실제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여자 복식의 주력은 선배인 [[정소영(배드민턴)|정소영]]-[[황혜영(배드민턴)|황혜영]]조였고, 길영아도 이 대회 여자 복식에 심은정과 짝을 이뤄 출전했지만, 4강전에서 패하며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황혜영의 은퇴 후에는 정소영과 짝을 이뤄 여자 복식에서 세계적인 강호로 맹위를 떨쳤지만, 종합 대회 첫 금메달이 눈 앞에 있던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파트너이자 대선배인 정소영이 후배인 [[장혜옥]]-심은정 조에게 금메달을 양보하기 위해 결승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기로 말하면서 결국 팀 동료인 장혜옥-심은정 조가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실제로 여자복식 결승전은 고작 30분 밖에 안 걸렸다. 정소영도 은퇴한 후에는 이제 장혜옥과 호흡을 맞추게 되었는데, 장혜옥과 호흡을 맞춰서도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며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세계 여자 배드민턴 복식 계에서 강호로서 군림했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 직전에 유력한 배드민턴 금메달 후보 중 한 사람으로 꼽혔을 정도였다. 그러나 올림픽에서는 결승 전까지는 괜찮았지만, 결승전에서는 허망할 정도의 0-2 완패를 당하며, 중국 조에게 금메달을 내주게 된다. 그냥 패한 것이 아니라 두 세트 모두 겨우 5점 밖에 못 뽑는 말 그대로 완패. 긴장한 탓에 그만 전날 밤에 한 숨도 못 자면서 컨디션을 망친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이대로 불운의 아이콘으로 끝나는가 싶었는데, 다행히 원래 서브로 출전한 혼합복식에서 선전했다. [[김동문(배드민턴)|김동문]]과 짝을 이룬 혼합복식은 원래 길영아의 여자 복식 전념을 위해 1회전에서 대충 하고 떨어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박주봉]]의 컴백[* 이 컴백이 얼마나 임팩트가 컸냐면, 당시 세계랭킹에 들던 덴마크 혼합복식 팀이 충격을 먹고, 남자와 여자 모두 혼합복식 출전을 포기하고, 남자 복식과 여자 복식으로 전향했다.]으로 졸지에 제 2 조로 밀린 상실감이 컸던 김동문을 달래기 위해 1회전만 열심히 뛰겠다고 코치진에 간청했고, 차마 이를 거절할 수 없던 코치진이 이를 승낙하면서 어어 하다가 8강까지 진출했다.[* 복식경기는 단식보다 체력 손실이 적을뿐더러, 복식 상대 남성의 피지컬에 대응하는 부분또한 연습적인거라 열심히 한부분도 있다. 장혜옥과 출전한 여자복식 또한 은메달을 땄기때문에 결론적으로 최고의 커리어를 쌓은 셈이다.] 원래 계획대로면 8강에서 탈락해야 했는데, 그만 '''8강전이 한국 TV 생중계가 잡혔다.''' 덕분에 지는 경기를 보여줄 수 없던 코치진은 열심히 하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고, 또 승리. 그리고 4강전은 상대 중국 조가 자멸하면서 승리. 그래서 결승전에서 [[박주봉]]-[[라경민]] 조와 만나게 되었는데, 누구나 질 줄 알았던 승부에서 길영아는 이겼다. 그리고 그렇게 마지막 국가대표 무대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환하게 웃으며 은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