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길창덕 (문단 편집) == 표절 논란 == 70-80년대 연재 당시엔 일본 문화의 수입이 전면 금지되어 있었기에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꺼벙이나-- 순악질 여사 중 --많은-- 일부 작품의 에피소드 내용이 일본 것을 표절한 것이었다. 물론 당시는 한국이 베른협약 및 세계저작권협약(UCC) 가입국이 아닌 데다 저작권 의식조차 전혀 없었고, 출판사/잡지사에서 그렇게 일본 것을 베껴 그리도록 강요한 일도 많았기에 시대상의 한계라고 볼 수 있는 일이긴 하다. 뭐, 만화만 이런게 아니라. 무수한 생활정보에서 글.온갖 대중 매체에서 이렇게 베끼는 게 너무나도 많았다. 오히려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선진 외국의 문물을 베낀다는 방법을 써서라도 국내에 소개한다는 일종의 문화 전파자라는 자부심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는 번안이라는 이름으로 외국 곡을 무단으로 표절 또는 개사해 국내에 들여왔던 가요, 특히 초창기 포크 쪽에서 특히 더했다. 덕분에 이런 것 무수한 것들이 지금은 표절로 얽히니 묻혀져버린 게 한가득이다. 하지만 이런 표절은 먼 이야기도 아닌 90년대까지도 당당하게 벌어진 일이다. 당시 [[일간스포츠]]로 연재하던 작품 투가리는 [[우에다 마사시]]가 그린 일본 만화 [[카리아게군]]에서 이거저거 줄거리를 베끼고 심지어 장면까지 트레이싱한 수준으로 [[표절]]했는데, 98년에 [[서울문화사]]를 통해 카리아게군이 정발되었음에도 투가리를 2001년까지 10년동안 꾹 연재를 했었다. 더 엽기적인 건 해당 만화가 이해광은 연재 끝나고 얼마 안돼 [[청주대학교]] [[교수]]를 역임했고 이후로도 [[상명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2021년에는 한국만화웹툰학회 초대 회장이 되었다! 카리아게군이 한국에서 인지도가 없기에 이런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길창덕도 말년에 이를 후회하는 의미에서 가족들에게 순악질 여사 단행본은 재출간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고[* 이미 저작권법이 발효된 후라서 문제가 생길 수 있었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가족들도 그의 유지를 받들어 이행하였다. 하지만, 작가의 양심으로는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었는데도 본인이 생전에 그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한 마디도 말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쉬운 일이라는 이들도 있다. 실은 그 당시 만화가들의 의식은 그 정도였다. [[이두호]] 항목 참조. 예외로 2세대인 [[황미나(만화가)|황미나]]는 생계, 강압 때문이었지만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말을 한 적이 있고, [[김수정]]은 한동안 만화를 때려치운 적이 있다. 김수정 항목에 나오지만 길창덕은 생전에 이에 대한 죄책감은 있어서 김수정의 그림이 일본 것을 베낀 게 아니냐고 떠보았고, 아니라고 하자 잘했다며 격려해 주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