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경기 (문단 편집) == 여담 == * 집안 전체가 야구집안이기도 한데, 아버지는 전 [[삼미 슈퍼스타즈]] 감독인 [[김진영(야구)|김진영]]이다. 또한 한국야구위원회 심판으로 활동 중인 [[김풍기]]는 그의 사촌 형이다. 프로 데뷔 당시에는 배번으로 37번을 달았으나, 1993년부터 마음을 비운다는 뜻으로 등번호 00번을 달아 그 이후부터 00번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의 프로스포츠 사상 00번을 등번호로 달았던 선수는 김경기가 처음이다[* 0번은 많았으나, 0이 두번 들어간 00번은 김경기가 최초다.]. 또 [[태평양 돌핀스|태평양]]과 현대의 백업 내야수이자[* 백업으로 활동한 건 [[현대 유니콘스]] 시절. [[태평양 돌핀스]] 시절에는 주전급이었다.] 그와 [[고려대학교|고려대]], [[태평양 돌핀스|태평양]]-[[현대 유니콘스|현대]] 시절을 함께했고 [[SK 와이번스]] 감독인 [[염경엽]]과는 매제사이라고.[* [[염경엽]] 감독의 아내는 김경기의 사촌동생, 김풍기 심판위원의 친동생이다.] * [[김진영(야구)|아버지]]를 이어 인천을 대표하는 야구선수로 성장한 '''인천야구의 적자'''라는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야구를 시작할 때에는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이유는 [[김진영(야구)|김진영]] 감독 본인이 김경기가 야구 때문에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을까 걱정해서라고. 결국 김경기에게 야구를 하도록 허락했지만 조건이 붙었다. 반에서 10등 밑으로 떨어지면 바로 야구를 접는 것으로. 김경기는 오로지 야구를 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연습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공부에도 매진했다. 그 결과 고등학교 3학년 때 본 학력고사에서 담임이 진지하게 체육특기자가 아닌 일반전형으로 고려대 체육교육과에 지원할 것을 권할 정도의 성적을 받았다고 한다. * 여담으로 현역 시절 굉장한 노력파 선수였다. 기자들도 인정하던 연습벌레였다고. 어느 기자에게는 '''자기는 스스로 생각해도 죽기 살기로 운동하는데 이 정도밖에 못 한다'''고 말한 적도 있디고 한다. 발언의 자세한 출처는 [[추가바람]]. 또한 아버지가 야구선수였으니 만큼 어릴때 김경기를 위한 조그마한 야구장을 만들어줬는데, 어린시절 밤을 새면서 야구를 연습했다고 한다. 떡잎부터 남달랐던 것. * 그는 항상 안타를 칠 때나 홈런을 칠 때 십자 성호를 긋는 세레모니를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십자 성호 세레모니는 평소 그가 다니던 인천의 한 천주교 성당의 신부가 제안했다고 한다. 김경기를 비롯한 그의 가족들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며, 그의 부인이 매 경기가 열리는 날마다 새벽기도를 하면서 김경기의 선전을 기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 [[흑역사]]로는, 선수협시절에 선수협 5적을 주도했던 적이 있었다는 거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전준호]]와의 갈등도 이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김태형(1967)|두산 베어스의 감독이자 과거 등번호 23번을 달던 포수]]와 마찬가지로 묻힌 감이 없지 않아 있다. 2000년 시즌 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창설되기 시작할 무렵 [[전준호]]가 선수협 참여를 독려하였는데, 당시 선수협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의견을 표하던 현대가 친구단파인 김경기를 통해 이를 저지하면서 둘의 갈등이 생겼다고 한다. 소문에 의하면 전지훈련지에서 둘은 주먹다짐까지 했다고.[* 다짜고짜 먼저 주먹을 날린 쪽이 김경기다.] 아무래도 김경기 쪽이 체구가 좋다 보니, 상처를 많이 입은 쪽은 전준호. 갈비뼈와 손가락이 부러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준호의 성적을 보면 2000년도 출장경기수가 유독 적다.[* 전후 4~5년간은 꾸준히 100경기 이상을 출전했지만, 2000년대에는 87경기만 출전.] 하지만 친구단파로 선수협 5적을 주도했던 것과는 별개로 구단 및 코칭스태프와의 마찰, 무엇보다 본인의 요청으로 인해 선수협 5적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신생팀 SK로 트레이드, 구단을 일찍 떠나고 말았다. * 선수 시절부터 투수 [[정명원]]과 함께 '큰형님'같은 역할을 해왔었고 카리스마가 강했다. 한 가지 일화로, [[2007년]] [[SK 와이번스|SK]] vs. [[현대 유니콘스|현대]] [[수원구장]] 경기를 치렀던 때였다. 당시 양 팀 팬덤은 말 그대로 서로를 원수 보듯 했으며, [[수원구장]]에서는 서로 언성을 높이면서 욕까지 하던 수준이었다. 그러나 김경기가 1루 코치로 나올 때면 1루 관중석에 있던 [[현대 유니콘스|현대]] 팬들은 김경기가 [[SK 와이번스|SK]] 코치임에도 다들 '김경기! 김경기!!' 연호를 하였고 김경기는 [[1루수]] [[이숭용]]하고 같이 기분좋게 웃어주고 농담도 건네받고, 쇼맨쉽 보여주고 파울볼이 김경기 쪽으로 날라오면 1루 팬들에게 기분 좋게 공을 던져주고 이랬을 정도. 이 정도면 그가 태평양 돌핀스 때부터 인천 팬뿐만이 아닌 비 인천지역 연고 팬들에게도 얼마나 사랑받았던 선수였는지를 알 수 있다. * 2007년 4월 10일 문학 홈 개막전으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 시작 전 스포테인먼트의 일환으로 개막전 시타를 했다. 이날 시구는 [[투수]] 출신 [[김성근]] 감독, 시포는 [[포수]] 출신인 [[이만수]] 수석코치가 했다. * 2007 시즌에는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760a&articleno=11952667|강도를 잡다]] [[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003&aid=0000423084|중상을 당한]] 적이 있다. [[5월 17일]] 잠실 경기를 마치고 귀가하던 도중 여성의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가 강도와 격투를 벌인 끝에 주변을 지나던 택시기사와 경찰의 도움으로 강도를 붙잡는데엔 성공했으나 자신도 왼손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고 말았다. 결국 강도에게는 구속영장이 발부됐고 이러한 사실을 감추고 경기장에 나왔던 김경기는 상태가 심해져 결국 병원에 입원한 뒤 퇴원 후에는 [[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109&aid=0000074146|붕대를 감고 등장했다.]] ||[[파일:external/www.sksports.net/20080506210726_1.jpg|width=100%]]|| || 2008년 태평양데이 당시 [[조웅천]]과 함께[* 1994~1995년 당시 두 사람은 나란히 선수였고 태평양데이가 진행되던 시점에는 조웅천만 현역 선수였다.] || * 2008년 SK 구단이 태평양데이 행사를 했을 때 팬들에게 똑같은 유니폼을 판매했는데 이 당시 과거 태평양 시절에 뛰었던 주요 선수들의 배번과 이름을 마킹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당시 가장 많은 마킹 유니폼이 00번 김경기였다.[* 실제로 이 유니폼을 입고 뛰던 시절이 김경기에게는 최고의 전성기였고 이 시절 초등학교에 다녔던 20대 후반~30대 중반의 팬들은 자연스럽게 김경기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인천야구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을 다시 한 번 보여준 사례. 태평양데이 당시 김경기는 이 유니폼을 입고 경기 전 시타를 했다. * 2009년 9월 6일 문학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때 CJ 인터넷 [[마구마구]]가 선정한 제4대 프로야구 레전드 스타로 선정되어, 경기 전 레전드 동영상 상영 후 시구를 했다. [[파일:0B5Ts-LIkcVMRYTBrU2d6dVlnclU.gif|width=100%]] * 2014년 10월 7일 문학 [[NC 다이노스]]와의 경기 시작 전 레전드 데이의 일환으로 동영상 상영 후 ~~사구(死球)~~시구를 실시했다. 그리고 그만 시타자로 나선 자신의 골수팬을 맞추고 말았다. --안티팬으로 전환?-- [[파일:external/file.mk.co.kr/image_readtop_2015_10122_14204245201707959.jpg|width=100%]] * 충공깽스럽게도 코치시절부터 진행되어온 탓인지 탈모가 매우 심하다. * 인천 출신 힙합그룹 [[리듬파워]]의 노래 중 <만루홈런 인천 remix>[* 원곡은 [[다이나믹 듀오]]의 <만루홈런>. 원곡에선 'I'm feelin' like [[이대호]]'로 언급된다.]에서는 'I'm feelin' like 김경기'로 언급된다. * 현역 시절 선수단 내에서 불리던 별명은 몸집이 크다는 이유로 '''고릴라'''였다고 한다. * 생각보다 짧은 활동기간과 짝수 징크스, 말년의 저조한 성적에도 통산 OPS가 .791 로 준수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