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경기 (문단 편집) == 미스터 인천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portsku&logNo=110123289371&proxyReferer=&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jp%2F|인천야구의 적자 김경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0887&PAGE_CD=N0550|김경기, 그와 함께해 인천은 행복했네]] [[삼미 슈퍼스타즈]] 2대 감독이자 ''''인천야구의 대부''''로 불리는 [[김진영(야구)|김진영]] 감독의 아들이었기에 학창시절부터 인천야구의 미래를 이끌어 갈 대들보로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고려대학교]] 졸업 후 1990년 [[태평양 돌핀스]]에서 데뷔한 후 인천 연고 팀에서만 뛰며 인천야구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선수였기에 별명 또한 그 명성에 걸맞는 '''미스터 인천'''[* [[마구마구]]에 있는 김경기의 잠재력 중 하나이기도 하며, 한때 '''가장 쓸모없는 잠재력'''으로 악명이 자자했다. '''구장 랜덤'''으로 [[문학구장]]에서 플레이 시 파워 +3, 컨택 +6(…). 이후 도원구장이 추가되면서 쥐씨알만큼이나마 좋아졌고, 2013년 선수카드 업데이트와 동시에 팀연도 세트덱, '팀 올스타 세트덱으로 플레이 시 파워+1와 컨택트+2'로 변경되었는데, 오히려 13 김선빈의 무등메시 잠재력 부여에 정당성이 모자라니까 물타기할 목적으로(…) 상향시켜줬다는 의심을 하는 유저들만 잔뜩 생겨났다. 이사만루2018에서도 선수 고유 스킬인데 발동 조건이 넥센 팀덱 적용(...)이다.]이 됐다. [[SK 와이번스]] 팬은 물론이요, 과거 [[현대 유니콘스]] 팬들 역시 굉장히 좋아하는 선수다. 과거의 현대 팬덤을 기반으로 하는 현재의 넥센 팬과 현대에게 버림받은 후 응원팀을 옮긴 인천 지역 SK 팬들 사이에선 항상 [[삼청태]]를 둘러싸고 대립이나 갈등을 빚고 있지만, 김경기란 선수 하나로 공통 분모를 삼는 이들이 꽤 된다. 그만큼 그가 가진 상징적인 의미가 단순한 선수를 넘어서는 무언가였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태평양을 응원하던 [[인천 도원구장 연고팀의 사건사고|도원전사]]들에게 김경기가 어떤 존재였냐면,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 그 [[선동렬]]보다 사천 표나 더 표를 많이 얻었을 정도였다. '''김경기는 인천야구의 희망이자 모든 것이었다.''' 21세기에 야구를 접한 야구팬들은 김경기의 통산스탯을 보고 "예상보다는 그렇게 성적이 뛰어나진 않았는데?"라는 의문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태평양 돌핀스]] 시절이나 그 이전부터 인천야구를 지켜본 골수팬들은 김경기의 존재감은 엄청났다고 인정한다. 애초에 태평양 돌핀스의 타선이 지독한 물방망이여서 김경기의 활약은 천금과도 같았으며, 그럼에도 누적스탯이 좋지 못한 것은 상대팀 투수들도 김경기를 집중견제하다보니 피로와 부상이 누적되며 많은 경기에 출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방망이 물방망이라고만 해서 잘 이해가 안간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1992년경에서 1993년도 당시의 [[태평양 돌핀스]] 타선을 기준으로 1번부터 9번까지, 윤덕규 안타-[[염경엽|염감독]] 병살-[[김성갑|유이아빠]] 삼진-'''김경기 홈런'''-김동기(홈런or안타)- 뭐 그 뒤론 삼진삼진볼넷병살삼진범타삼진 그러다가 김경기 안타 이런 식 이었다. 그러다 보니 상대편의 견제가 엄청났다. ~~사실 뭐 [[김성갑|유이아빠]]나 [[염경엽|염감독]]은 당대에도 답이 안 나올정도로 유명한 [[멘도사 라인]]이니 그렇다 쳐도 다른 선수들은.....~~ 그리고 주장으로서 부상 투혼을 펼쳤던 탓에 선수생명이 짧아진 탓도 있어 요즘 기준으로는 매우 짧은 12시즌만 활동한 것도 누적스탯에 영향을 주었다.[* 데뷔년도가 90년이다보니 80년대 야구 문화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한 탓도 있다. 90년대 중반만 해도 프로 10년이면 은퇴할 나이로 여겻으니까... ] [* 12시즌간의 활동 중 제대로 활동을 한 것은 90~92, 94년, 96년, 98년 6시즌에 불과하다.93,95,97, 99는 부상 (홀수해 징크스...) , 00~01년은 팀의 리빌딩 진행으로 후보로 분류되었으니 90년대 플레이어로 분류가 가능할 것이다.] 이 글을 보면 아니 뭐 이런 막장타선이 다 있나 하겠지만 다행히 인천연고팜이 투수력이 쩔어줬다. ~~고등학생 시절 류현진을 그저그런 투수로 만드는 미친 동네가 인천이다~~ 김경기가 홈런이라도 치는 날에는 [[김홍집(야구)|김홍집]], [[정명원]], [[정민태]], [[최창호]], [[박정현(투수)|박정현]], [[조웅천]], [[안병원]] 같은 수준급 투수란 투수는 총동원,[* 흔히 투수왕국을 말하면 대부분 해태를 말하지만, 90년대부터 야구를 본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태평양'''을 먼저 말한다. 해태의 경우 80년대에는 최강급 선발과 핵타선, 그리고 중간급의 불펜--과 [[선동열|끝판왕 마무리]]--이였고, 90년대에 들어 이강철과 조계현이 등장했으나 여전히 불팬 투수진은 필승조 1~2명과 마무리 빼면 빈약한 편이였고 타자들도 이종범 홍현우만 믿고 가는 야구를했다. --물론 둘이 사기여서 그렇지-- 그에 비해 태평양은 '''선발투수부터 중간, 마무리까지 당대 최고의 투수들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후술하듯 이 미친 전략으로 '''한국시리즈까지 갔다.'''] '우오와앙 1점이다'를 외치며 미친듯이 틀어막았다. '''그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전술로 [[1994년 한국시리즈]]까지 갔다.'''[* 1994년 당시 태평양 돌핀스의 [[정동진]] 감독은 미국에서 코치연수를 받고 돌아와서 메이저리그식 자율야구, 빅볼 성향이었지만, 당췌 선수들이 점수를 내질 못하니... 이런 투수력 위주의 지키는 야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부상자 관리는 철저히 하면서 최대한 혹사를 피한건 정동진 감독의 공.] 비록 신바람 야구의 [[LG 트윈스]]에게 밀리긴 했지만[* 삼청태현 계열의 팀들이 유독 LG 트윈스에게는 약했다. ~~지금도 그렇다는건 안자랑~~] 그래도 타자는 김경기 하나만 믿는 전술(...)이란 걸 생각해 보면 당시 태평양의 투수력이 얼마나 셌는지 알 수 있다. 진짜 태평양 바닷물처럼 상대팀에게 점수를 짜게 주는 팀이었다. ~~그리고 타자들은 자기네팀 점수도 짜게 냈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