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길수 (문단 편집) === 선거 결과, 그리고 그 후 === 결과적으로 김길수 후보는 고작 51,104표(0.2%)를 득표해 전체 5위에 그쳤다. 그래도 흔히 '거품후보'라고 조롱당하는 군소후보들의 평균적인 득표를 생각한다면 5만 표 이상의 득표는 생각보다 훨씬 선전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당장 20대 대선에서 [[옥은호]] 후보는 대선인데도 5천 표조차 받지 못했다. 그 외로 같은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김영규(1946)|김영규]] 후보는 당세야 어찌됐건 일단 역사만은 199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정당인 [[사회당(1998년)|사회당]] 후보로써 약간의 조직력[* [[대한민국의 진보정당]] 내에서도 [[민주노동당]]에 크게 밀린 사회당이었지만, 어쨌건 당을 13년간 유지할 정도의 조직력은 있었다.]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22,000여 표 득표에 그쳤고, '''[[대한민국 국무총리|국무총리]]&[[자유민주연합]] 총재&6선 의원'''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가졌던 [[이한동]] 후보마저 김길수의 1.5배 정도인 74,027표(0.3%)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하물며 특정 종교 집단의 정치세력화에 반감이 매우 큰 [[대한민국]]에서, 기독교인 표는 싸그리 포기하고 시작한 상태로 50,000표 이상 득표했다는 것은 쾌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기대 이상의 고득표다. 다음 17대 대선에서 [[허경영]]이 98,000여 표 이상 득표하여 0.4%라는 군소후보로써는 경이적인 득표율을 보인 것까지 생각하면, 제대로 된 노선과 정책, 정치적 기반 세력도 없이 출마에만 의의를 둔 군소후보는 차라리 엽기코드로 사람들을 웃겨주는 쪽이 가장 효과적인 선거운동 전략인 듯 하다. [[2003년]] [[8월 20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0438751|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되었다. 요약하자면 '''"[[부처님]] 뜻으로 대통령 100% 된다."'''라고 대선 출마/당선을 미끼로 총리 시켜주겠다며 주변인을 상대로 6억 원, 이전에도 복지 사업한다며 세계법왕청 건립 명목으로 74억 원을 뜯어낸 것을 포함해서 모두 '''88억 원''' 상당의 돈을 챙기는 등 사기 행각을 벌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55&aid=0000008017|기사 바로가기]]. 선술했듯이, 불교계에서까지도 철저히 외면받고 있었으니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를 챘어야 했다. 결국 구속 후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03122388758|판결을 받았는데]],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그가 대표로 있던 [[국태민안호국당]]도 이후로는 별다른 활약이 없다가, 최종적으로 2004년 9월 13일을 기해 해산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 무렵에 [[지구당]] 제도가 시도당 제도로 개편되면서 일정한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데, 이를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일한 사유로 해체된 대표적인 정당은 [[개혁국민정당]], [[국민통합21]] 등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