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동길 (문단 편집) == 기타 == *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100권이 넘는 책을 출판했지만, 자신의 전공인 역사학 저서나 연구논문은 거의 없었다. 모두 [[수필]]과 신문칼럼을 모은 산문집들. 문장력이 뛰어나고 사람들에게 쉽게 술술 읽히는 수필로 한때는 상당히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 저자였다. 특히 미국 보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할 당시의 연구 주제가 에이브러햄 링컨이었기에 그의 일생을 간략히 요약한 《링컨의 일생》을 펴내기도 했는데 지금도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 [[금융실명제]]가 담긴 [[김영삼]]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 16호를 정식으로 승인하는 국회 표결에서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표결 직후 기자들에게 "금융실명제는 지지하지만, 긴급명령이라는 형식이 문제다"라면서 반대표결의 이유를 밝혔다.[* 당시에도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 그리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라는 헌법이 규정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의 발동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 의견이 나오긴 했다. 김동길의 주장도 이것을 따른 것이다.] * 1980년대에는 "이게 뭡니까~~"라는 유행어를 전파하기도 했는데, 당시 신인 [[개그맨]]이던 [[최병서]]가 김동길 [[코스프레]]를 하며 저 유행어로 인기를 끈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실제로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김동길이 강남에서 당선될 때 '''[[https://imnews.imbc.com/replay/1992/nwdesk/article/1912059_30556.html|"최병서라는 친구 덕분에 지나가는 어린이들도 나를 알아보더라. 그래서 선거운동에 매우 유리했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으며, 1997년에는 [[SBS]]에서 '''동길 대 동길'''이라는 [[콩트]] 프로그램을 진행해서 화제가 되기도. [[최병서]]가 분한 '''최동길 교수'''와 진짜 김동길 교수가 서로 대담을 하는 형식이었다. [youtube(1INWGwTcSFU)] * 평생도록 [[넥타이#s-3.3|나비넥타이]]만 맨 것으로 유명하다. 한창 방송에 많이 나올 때는 이게 김동길의 상징이었다. 방송에서 밝힌 바로는 [[미국]] [[유학]] 시절 학칙이 엄해서 [[학생식당]]에서도 항상 타이를 매라고 해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나비넥타이를 하기 시작했다고. 안경+콧수염+나비넥타이의 조합이 어쩐지 [[학습만화]]에서 볼 법한 박사님들을 연상케 한다(...). * 독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사별하거나 이혼해서가 아니라, '''생전 결혼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자녀도 없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고생시키는 것이 보기 싫어 어릴 때부터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다. 다만 인터뷰에서 김동길 본인과 누나는 결혼하지 않았고, 형은 6.25 전쟁 때 실종되어 결혼했는지 알 수가 없지만, 여동생들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결혼 자체가 싫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 7세 위의 누나인 [[김옥길]](1921 ~ 1990)은 [[1961년]]부터 [[1979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의 제8대 [[총장]]을 역임하였으며, [[1979년]]부터 [[1980년]]까지 [[문교부]] [[장관]]으로 재임했다. 그리고 이 사람도 살아 생전 평생 독신이었다. * [[정주영]]의 통일국민당 실질적 2인자 역할을 했다. 정주영과 그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였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787596|#]] * [[평안도]] 출신이다. 그런데 [[서울 사투리|서울말]] 같은 언어를 쓴다. 단지 서울말에 기반한 언어생활을 오래했기에 그랬을 뿐이다. 스스로 억양에 남아있는 정도라고 평가한다. [[평안도 사투리]]가 서울말과 비슷하다는 주장은 북한이 서울말에 기반한 공용어인 [[문화어]]를 '평양말'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어 나온 주장이다. 이 근방 사람들은 "당추가루 좀 가져 오라!"(고추가루 좀 가져와!)라고 심한 사투리를 썼다. [[https://www.youtube.com/watch?v=jbfDjV0cA-s|북한 사투리에 관한 일화에 대한 반응]] 그의 '이게 뭡니까'라는 유행어는 평안도 사투리를 섞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967090#home|이게 뭡네까]]'로 언급되기도 하였다. * 91세라는 나이로 '김동길TV'라는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고, 이는 국내 최고령 [[유튜브 크리에이터|유튜버]]였다. [[http://issuegate.com/news/view.php?idx=3831|관련기사]] 당연하겠지만 그의 보수적인 정치성향이 강하게 드러났다. 해당 채널은 2021년까지 운영했다. * 지금은 보수인사로 유명하지만, 오래전부터 [[함석헌]]을 몹시 존경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는 함석헌이 발행하던 잡지 "씨알의 소리"에 수차례 기고문을 올리기도 하였고, 2017년 경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저로 펴낸 "이 나라에 이런 사람들이"에서는 함석헌에 대하여 "나의 스승"이라고까지 말하며 존경을 표했다. 김동길이 본래 영문학과에 들어갔다가 사학과로 전과한 것도 함석헌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 [[마광수]] 교수와도 [[https://youtu.be/ReaFkcKXgRw?t=475|친분이 있다.]] [[즐거운 사라 음란물 지정 및 탄압 사건|마 교수가 학계에서 왕따를 당하던 와중에]] 몸까지 아파서 고생하던 시절에 김동길이 보약을 지어 병문안을 간 적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김동길과 마광수 두 사람은 모두 연세대에서 교수를 지낸 이력이 있었고 또한 정치적인 사건에 휘말려 교수 사회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는 등의 동병상련이 있었기에 서로 친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 [[천상병]] 시인과도 안면이 있었다. 김동길은 유투브 영상과 회고록 에세이에서 한결같이 천상병을 남을 미워하지도 않고 원망할 줄도 모르는 순수했던 영혼의 소유자로 회고했다. 명동 거리를 지나다가 천상병과 우연히 마주쳐 인사를 건네고 그에게 술값을 꿔준 것이 첫 인연이었다고 하는데, 주당으로 이름난 천상병에게 값비싼 양주인 조니 워커 한 병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런데 천상병의 아내인 목순옥 여사가 양주는 값이 비싸니 차라리 그걸 팔아서 막걸리를 더 사먹는 것이 이득이 아니겠느냐고 말하자 천상병은 이를 그대로 따라버렸다. 이후 김동길을 만난 천상병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선물받은 양주는 전부 팔아서 막걸리를 마시는 바람에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 [[성신제]]와도 인연이 있어서, 타계 8개월 전에 성신제 부부가 세배를 온 모습이 방송된 바 있다. [youtube(Ui47pRrKVTM)] *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기 위해 기독교 신자인 본인이 크리스마스를 반납할 용의가 있다는 의사를 밝히는 글을 쓰기도 했다. * 과거에 김동길이 [[친일반민족행위자]] [[김활란]]의 남동생이라는 해괴한 루머가 돌았다.[* 비슷하게 전직 국무총리 [[노재봉]]도 아버지가 악질 친일경찰 [[노덕술]]이라는 모함을 당했다.] 애초에 김활란과 김동길은 무려 '''29세'''나 나이차가 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