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동수(프로게이머) (문단 편집) === 프로게이머 시절 === || [[파일:attachment/김동수.jpg|width=100%]] || 원래 하드코어 질럿 러시를 주로 사용하면서 저그전의 강자로 유명했다. 전략적 승부보다는 강력한 힘싸움으로 대표되는 우직한 스타일이었으나 나중엔 전략적 성향으로 탈바꿈 하였다. SBS PKO를 통해서 먼저 유명[* [[임요환]]도 김동수 못지 않게 이 대회에서 512강에서 시작을 하여 우승을 했었다. 상대는 김일제 라는 게이머였다.]해졌다. 이 대회는 512강부터 결승까지 앉은자리에서 잠도 안자고 끝까지 연속으로 진행하는 극악의 대회였으며 결승 이전까지 모두 단판승부였다. 512강부터 결승까지 전승으로 올라왔다는 말. 결승만 SBS를 통해서 방송으로 중계되었는데 원래 결승도 단판승부로 하기로 했으나 방송에 1경기만 나가면 분량이 짧아지니까 3판 2선승제로 갑자기 룰이 바뀌었다. 결승도 첫판은 김동수가 이겼으나 남은 2~3경기를 패하면서 준우승을 하였다. 원래 정해진 룰대로 했으면 김동수가 우승자였다. 결승상대는 강도경이었는데 강도경은 시드를 받고 올라왔고 김동수는 512강을 처음부터 끝까지 했다. 이 스토리가 알려지면서 김동수가 유명해졌다. 밑에서 설명할 온게임넷 스타리그 우승보다 이게 더 [[망가져서 유명해진 것들|유명했다]]. 온게임넷 2000 프리챌배 스타리그 결승에서 [[봉준구]]를 3:0으로 꺾고 최초의 [[가을의 전설(e스포츠 용어)|가을의 전설]]과 [[로얄로드]]의 길을 밟았다.(1기) 그러나, 다음 대회인 2000 온게임넷 스타리그 왕중왕전[* 이 당시 왕중왕전은 정식 리그 및 공식전 그리고 승패에 대한 전적이 모두 인정되었으며, 우승자와 준우승자에게는 시드 자격이 주어졌다. 참고로, 이 대회의 우승자는 [[기욤 패트리]], 준우승자는 [[국기봉]]]에서는 2승 3패의 기록으로 부진을 겪었으며, 2001 한빛소프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예선전에서도 탈락을 맞이하여 전 대회 리그의 우승자임에도 불구하고 출전조차 하지 못하였다. 이후 한빛 스타즈 (현 웅진 스타즈)의 창단 멤버로 활동하였으나, 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예선에서 박경태라는 신예에게 완파당하며 또 다시 탈락의 고배를 삼키게 되었다.[* 2001 SKY배 스타리그 우승자 소감에서 이때 은퇴를 고려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고백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저런 사건으로 팬들에게 비난을 받아 마음고생이 심한 시기였고, 또한 이 때 김동수를 이긴 박경태는 정작 16강전에서는 임성춘, 이근택, 정유석에게 내리 3패를 당하여 16강에서 떨어졌기 때문. 특히 정유석과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다소 무성의한 (또는 멘탈이 나간 듯한) 플레이를 보여서 경기 이후 방송에서 프로답지 못하다며 [[엄재경]]과 [[정일훈(방송인)|정일훈]]에게 까이기도 했다. 이 시절 프로게이머는 프로라는 말을 붙이기에는 조금 머쓱하긴 하지만...] 그 후 방송국을 전전하며 게임 해설가 등을 하면서 경험을 쌓은 뒤 돌아온 2001 SKY배 스타리그에서는 기존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여러가지 독특하고 실험적인 전략을 들고 나와서 많은 이들을 놀라게 만들었으며, 중요한 경기에서는 기존의 투박하고 우직했던 전술들을 그대로 살리거나 도박수를 감행하기도 하는 등, 상대방이 종잡기 힘들게 만드는 승부사적인 면모를 보여줬다. 결국 이러한 그의 발전으로 인하여, 결승에서 그 누구도 막기 힘들 것 같았던 임요환의 3회 연속 우승을 저지하고 빼앗겼던 왕좌의 자리를 1년만에 다시 탈환하였다.(2기) 이러한 그의 업적은 그의 제자 [[박정석]]과 수많은 프로토스 유저들에 의해 이어지게 된다. 실제로 박정석은 이때 김동수를 보며 꿈을 키워왔다고 하며, 강민과의 합방에서 역대 프로토스 순위를 묻는 질문에 3등 강민, 2등 김택용, 1등 김동수를 꼽으며 자기에게만큼은 최고의 프로토스 유저라고 이야기한 바가 있다. 그러나 2002년에는 뚜렷한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모든 대회에서 초반 탈락하고, 파나소닉배 온게임넷 스타리그를 마지막으로 해설자로 전환하며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게 된다. MSL 성적의 경우는 전신인 펩시 트위스트(Pepsi Twist)배 KPGA 투어 3차 리그에 출전한 것이 전부였으며, MEGA MATCH에서 7전 2승 5패의 부진한 성적으로 8강격인 준 플레이 오프에 오르지 못하고 탈락했다. 테란'전 지상 맵에서 막 멀티 후에 질럿,아칸을 찍어낸 뒤에 무한 어택 땅을 시키는 전술과 반 섬맵 테란'전에서 아비터를 통한 기습 / 저그전에서 러커 조이기 라인에 대응하는 아비터 후방 리콜, 전진 건물, 몰래 건물 등 다른 프로토스 유저들이 쓰지 않았던 여러가지 전략을 제시했지만 그것이 어디까지나 '''1회용'''에 그쳤다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승부사로써는 탁월했으나 장기적인 운영 능력에 있어서는 가능성에 멈추었다는 소리. 어디까지나 그는 힘에 기반을 둔 느린 손을 가진 고전적인 프로토스였다. 실제로 그는 독특한 발상을 보여주던 [[강민]]보다는 뛰어난 피지컬을 자랑했던 [[박정석]]을 차세대 프로토스로 생각하기도 했고. 때문에 온게임넷 스타리그 2회 우승만으로 선구자로 대접받는다는 거품 소리를 듣기도 한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온게임넷 스타리그]]는 그렇게 높은 위상을 가진 대회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온게임넷 스타리그]] 2회 우승을 이룬 그의 업적을 마냥 깎아내릴수도 없는 일이다. '''당장 김동수를 제외한 [[온게임넷 스타리그]]와 [[MSL]]에서 2회 이상 우승한 프로토스는 강민, 김택용, 허영무뿐이다.''' 애시당초 커리어는 운이니 거품이니 해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는게 가장 객관적이다.] 당시에는 쓰이지 않았던 여러가지 유닛들의 활용과 웹, 헐루시네이션, 리콜같은 특수 능력의 활용, 참신한 전략[* 1.07시절때는 [[웹드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유저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하였고, 지상 맵에서의 [[커세어 리버]] 전략을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이는 나중에 저프전에서 한 때 유행했었다.]으로 시청자들의 보는 재미와 놀라움을 주던 선수였지만, 사실 종족의 장기적인 운영에 있어서는 [[임성춘]]이 정립한 것이 더 많다는 평을 받았다. PGR21과 포모스에서 활동하는 네임드 쥬다스페인(=pain)의 평에 의하면 '''"임성춘은 프로토스의 잊혀진 왕, 김동수는 프로토스의 사라진 선지자"''' 게이머 시절, 성격이 직설적이고 과격한걸로 유명했는데, 경기가 마음대로 안 풀리면 화풀이로 키보드를 때려 부수곤 했다고. 같이 동세대에서 같이 생활을 해본 [[김정민(게임 해설가)|김정민]], [[강민]]은 "하지만 사람한테 그러는거 아니니까 괜찮아"라고 웃어넘긴다.[* 키보드를 때려부순 것보다 자기가 부순 키보드에서 빠진 자판을 주섬주섬 줍는 모습 때문에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