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동인 (문단 편집) == 인성 문제 == 그가 높이 산 인간상은 〈광염소나타〉에 등장하는 예술을 위해 세상 도덕 윤리조차 무시하고 한 몸 불사르는 예술가나, 〈대수양〉에 등장하는 초인적 지도자뿐이었다. 이외의 인간들은 고려할 바가 아니었고, 깔아뭉개고 비웃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횡보 [[염상섭]]과는 염상섭이 데뷔하기 전부터 견해 차이로 사이가 무척 나빴는데, 그의 대표적인 단편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는 염상섭의 행실을 비꼰 소설이라는 소문이 당대에 널리 퍼졌다. 염상섭이 발끈하자 김동인은 "염상섭을 모델로 한 건 아니다"라고 해명하면서 사과하긴 했지만, 사과하면서도 소설의 내용은 실화라는 뉘앙스를 은근히 풍겼을 정도. 자기 사생활도 깨끗한 편이 아니었던 김동인이 별다른 원한 관계도 없는 염상섭을 저격한 데는 좀 더 복잡한 내막이 있는데, 염상섭이 먼저 [[김억]]의 실화를 바탕으로 이를 비꼬는 소설을 쓰자 시인인 김억이 친구인 김동인을 찾아와서 "시인인 나는 소설을 못 쓰니, 자네가 대신 좀 써달라"고 부탁해서 나온 소설이었다고 한다. 소설의 모티브가 염상섭이라는 소문이 난 것도, 다름 아닌 김억이 술자리에서 실언을 해버려서라고 한다. 한편으로 이 소설 제목 자체가 염상섭의 작품 세계나 작가관을 비판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한국 최초의 자연주의적 소설'로 평가되는데, 김동인은 그 소설이 [[에밀 졸라]] 등 서구 자연주의 소설에 비하면 영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 소설에 나오는 실패자의 모델이 김동인 자신이었다는 것은 덤.~~ 그래서 '''"서구 작가들 자연주의 소설이랑 비교하니 발가락 정도는 닮았던데?"'''라고 비꼬기 위한 의도도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이다. 춘원 [[이광수(소설가)|이광수]]와도 사이가 나빴다. 이는 심한 라이벌 의식에 기반한 것이었다. 김동인의 문인 활동 자체가 이광수의 성공을 지켜보고 "내가 이광수보다 못할 게 없다"는 우월의식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한국 현대문학의 선구자를 꼽으라면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이광수고 그 다음을 김동인을 꼽는데, 김동인은 이에 대해 심한 경쟁의식을 느끼고 이광수를 적대했다. 이광수가 수양 동우회 사건 이후 친일로 돌아서자 김동인은 춘원을 찾아가 은근히 [[자살]]을 권유하기도 했을 정도. 이광수가 소설 〈[[단종애사]]〉를 쓰면서 [[세조(조선)|수양대군]]을 비판하자, 그에 반론하듯이 <대수양>이란 소설을 써 수양대군을 찬양하기도 했다. 이광수는 '내가 쓰면 반대로 생각하길 좋아하나?' 하며 그의 행동을 비꼬았다고 한다. '''[[도찐개찐|친일은 똑같이 사이좋게 했지만.]]''' 여성 작가들과도 척을 졌는데, 작품에서 [[여성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1939년부터 연재한 〈김연실전〉이 대표적이다. <김연실전>은 [[기생]] 출신의 어머니를 둔 김연실이라는 주인공이 어머니의 '나쁜 피'가 끓은 나머지, 어릴 때부터 일본어 개인교사와 아주 깊은 관계를 맺고 거기에 어른이 돼서도 수많은 남성들과 육체관계를 맺으면서 그것을 자유연애라고 주장하다가 결국 파멸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관점으로는 하도 표현 수위가 너무 높아서, 당시 사람들은 '김동인이 [[야설]] 쓰나요?' 하고 민망해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21세기 시점에서 보더라도 (노골적인 [[야설|성애문학]]을 제외하면) 상당히 수위가 높은 편으로, 일본에 유학하여 당대의 이른바 "신여성"이 되는 것을 바라지만, 종래는 겉멋만 들려 성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타락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대놓고 다룬 소설이다. 인성과 별개로 예술적 의의가 있는 김동인의 다른 작품과 달리,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물론, 단편적으로 묘사되는 시대상 이외에는 얻을 것이 없는 작품. 문제는 이 <김연실전>이 타깃으로 한 사람이 당대의 저명한 여성 소설가 [[김명순]]이었다는 것이다.[* 김명순의 아명이자 필명이 탄실(彈實)이었고, 어머니가 [[기생]] 출신 [[첩]]이었다. 노골적으로 노린 설정이다.] 김명순은 실로 어마어마한 악성 루머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남자와 이야기만 해도 며칠 후에 그 남자와 연애를 했니 깊은 사이니 소문이 부풀려졌을 정도였다.], 김동인은 이런 김명순에 대한 악성 루머를 '''마치 사실인 양 그대로 소설화했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실제로 <김연실전>을 읽어 보면, 이게 소설인지 연예 찌라시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실제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일[*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다. [[디스패치]] 등의 연예지나 증권가 찌라시에서 연예인들의 루머를 퍼뜨릴 때 사용하는 묘사와 비슷하다.]을 묘하게 비틀어 풀어 놓는 서술방식을 줄곧 사용하고 있어, 누구라고 말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실제로 누구를 가리켜 창작했는가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작품 발표 이후 김동인은 "소설 〈김연실전〉의 모델이 김명순이라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으나, 염상섭에게 수그릴 때와 마찬가지로 사실인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오늘날에도 악성 루머는 [[명예훼손]]으로 법적대응을 해도 피해자에게 꼬리표가 남는 마당에, 그 당시 이러한 악성 루머는 사회적 사망 선고나 다름없었다. 결국 김명순은 한국땅을 떠나 [[일본]]으로 간 뒤 어렵게 살다가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으니 가장 피해자라 할 만하다. 김동인은 평소에도 "여자에겐 영혼이 없다."라면서 여성 비하를 서슴치 않던 인물이었다. 그런 김동인이었으니, '연애 대장'이니 뭐니 하면서 오만 악성 루머에 시달리던 김명순은 좋은 먹잇감이 되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성 작가 [[김일엽]]도 일방적으로 무척 증오했다. 이외에도 단편 〈정희〉에서 '여자는 그저 결혼해서 남편 수발이나 들어야 한다'는 노골적인 결론과 함께,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신여성들을 대놓고 비판하기도 했다. 당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 차별 의식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김동인이 혼자 중국인을 차별한 게 아니라, 일본의 식민지하에 있으면서도 '우리가 저 중국인들보단 낫다'는 우월 의식으로 자위하는 게 당대 조선인들에게 있었다. 이런 상황은 [[중일전쟁]]기 일제의 기조를 반영한 것인 동시에, 19세기 말 [[임오군란]] 시 [[원세개]] 및 [[청나라]] 군대와 함께 조선에 들어온 동순태호 등 [[화교]]상인들의 부가 조선인 평균수준을 능가하게 된 상황에 대한 반감 등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1931년 평양화교 학살]] 당시 방어책으로 맞서던 [[화교]]들을 비난하고 이 분위기를 타고 쓴 작품이 〈붉은 산〉이다. '삵' 정익호가 중국인 지주에게 대들다가 죽은 것을 미화한 내용인데, 요즘 기준으로는 [[레이시즘]] 문학이지만 과거에는 교과서에도 실렸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